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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비 오던 날 주말에 본가에 다녀왔다. 부친과 모친, 장모님... 이렇게 세 어른이 모두 노환에 시달리고 있다. 멀리 있다는 핑계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왔지만 이렇게 한 번 다녀오면 그래도 위안이 된다. 앞으로만 가게되어 있는 삶의 여정에 종점이 가깝다는 것은 탈색된 풍경화 속으로 들어가 ..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법 『패션 피쉬 (Passion Fish,1992) 』 김 대 근 자신에게 닥친 불행에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만 그 불행으로 인한 깜깜한 절망을 어떻게 딛고 일어서느냐가 관건이다. 이 영화는 그 방법으로 사람끼리 기대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절망을 맞서는 방업도 사람에 따라 다르..
그늘 속의 도박 전철을 타면 2시간 거리임에도 수업이 있는 날 아침에는 항상 바빠서 KTX로 이동하게 된다. 새벽에 일어나 허덕대야 하는 면에서 보면 가깝거나 멀거나 촌에서 사는 설움을 톡톡히 치룬다. 갈수록 서울 편중이 심해져서 교육, 문화, 금융 같은 필수적 인프라가 서울을 제외한 모든 지역..
개망초 이야기 회사 경비실 옆에 작은 살구나무가 한 그루 있다. 사람의 손에 개량된 나무가 아니고 회사 뒷편 산에서 옮겨다 심은 개살구 나무다. 살구는 따는 때를 잘 가늠해야 한다. 충분히 익지 않은 살구는 씨방 부근에 독이 있어서 오히려 해롭다. 주말을 보내고 출근해보니 가지마다 말끔하다. ..
아버지의 밭 (삼행시와 수필 하나) 물 냄새 골 넘어와 흐드러진 언덕 안개가 훑어간 산 그림자 가생이 개개비 휘젓는 하늘 얇게 저며지다 물푸레 길게 누워 키 늘린 하오(下午)의 끝 안간힘 버텨보지만 그럭 가고만 하루 개꽃은 밭둑에 서서 귀를 열었다 물지게 걸음마다 넌출대던 아버지 안쓰런 풍경..
떠나지 못하는 도시 덥다. 시내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에 폐기되었으나 걷어내지 않은 철길 건널목을 건너는데 철로에 바짝 붙여 심어놓은 보리를 걷어 타작을 하고 있다. 허리가 거의 90도로 굽은 노인이 혼자서 한 발 쯤 되는 막대기로 토닥 대고 있다. 아직 베지 않은 보리가 여기도 한 무더기 저기도..
달빛 스민 보퉁이 오늘 잠깐의 외출에서 두번이나 영구차를 지나쳤다. 운전을 하면서도 습관적으로 왼발을 구르며 "나무지장보살"을 염했다. 사람이 죽으면 망자라 하고 그 망자의 새로운 영역을 관장하는 이는 불교에서 지장보살이다. 물론 세상의 모든 종교가 인간의 눈으로 재단되고 바느질되어 ..
모내기 하는 날 누구집 부엌 숫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로 부락중심 농경에서 벗어 나지 못한 때가 있었다. 부락중심 농경 사회에서 개발붐을 붐을 타고 산업사회로 말을 갈아타던 시기였던 60년대 말에 나는 유년을 보내고 있었다. 4마지기 논은 근동에서는 소문 난 상답이었다. 골짜기를 타고 흐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