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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미디어작가회 2013년간집 수록작품 포푸라나무 아래 달리다 끈적한 점액질로 채운 안개 속 유영游泳하듯 갈짓자로 달리는 아침 흐릿하게 보이는 푯대들 살갗 모나게 벗겨진 기둥아래 흉하게 떨어지는 손바닥들 그 흐릿한 잔상 사이로 자꾸만 손을 겹쳐 흔드는 아버지, 외조부 참 이..
누군가의 눈물처럼 내가 살아온 날 중에 능소화 흘리는 진액처럼 그렇게 진한 눈물 흘려본 적 있었던가? 봄 산 계곡 뿌옇게 흐려놓는 밤나무 꽃처럼 농염한 몸부림쳐본 적 있었던가? 뒷걸음으로 달려 삶의 分岐点마다 잠시 멈추고 숨을 골라보면 나는 참 못나게도 살았구나 지치도록 해..
風浴 프라이팬에 코를 대고 있다가 누릇누릇 단내가 나면 아하! 잘 달구어 졌구나 이미 숨을 멈춘 간고등어 줄무늬 바닥에 대가리 누르고 휘어진 등짝 힘주어 펴면 치지직~ 함성으로 다시 숨 쉬는 등 푸른 바다 그 바다 아래 누워 고등어처럼 잔디에 머리 대고 척추를 조금씩 밀착하면 가..
아버지의 숫돌 이태 만에 물을 뭍인 그의 숫돌은 여전히 빛이 났다 녹슨 낫 세 자루와 함께 수돗가에 앉아 그처럼 쪼그려 보기도 하고 그처럼 물을 수굿이 손에 담아 보기도 한다 그가 밀 때 힘을 주었던가 그가 당길 때 힘을 주었던가를 생각해보며 낫의 이마를 숫돌에 태워본다 그의 낫..
삼포(蔘圃) 삼포(蔘圃)는 하늘의 몸내림을 받는 곳이다 이곳에 몸 베풀어 세상에 하늘의 씨앗 뿌리는 곳이다 몸 내리고 받는 일은 그늘 속에서 해야 하는 일 삼포(蔘圃) 하늘은 늘 비탈져 빛이 미끄러진다 빛이 미끄러져 빈 공간에 생긴 그늘에 하늘의 몸내림 받는 땅이 진저리 친..
엄마는 작두 꿈을 꾸지 만주 벌판 시린 바람이 부는 날 마적의 죽창에 잿간의 재가 휘날릴 때 외할매 맏딸과 사위 잿간에 묻고 외할배 두 아들 오뉴월 논두렁에 호미 두 짝 남기고 징병차 실려 신작로 끝으로 가고 그 길로 우체부 가방에 종이 한 장으로 실려 돌아와 씨 강냉이 같..
욕심세탁慾心洗濯 육장이나 칠장 쯤 키보다 귓밥이 더 커 보이는 부처님 금빛 옷 출렁이며 후광을 툴툴 털어 밟고 휘적휘적 걸어와 툭- 손가락을 퉁기자 아아아-, 풍경이 거문고가 됩니다 기와 끝 위태하게 매달린 구름 우우- 새털처럼 흩어져 햇살공양 넉넉히 나눕니다 풍경의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