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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족보 김 대 근 할매는 주름 골마다 끼인 저승꽃 거름처럼 늘 '강생아! 내 강생아!'하고 불렀다 석 달 가뭄에 말라 버린 탱자나무 뿌리같은 다리로 삼십리 산길 나뭇짐 이고 온 엄마도 '아이고 내 강아지 잘 있었드나' 울컥 쏟고는 했다 달거리처럼 한 달에 한번 간줏날* 어깨에 밀가루 한 포대 마루에 ..
도금공장 최씨 콧구멍 김 대 근 여름에도 겨울에도 최씨 코에서는 바람소리가 난다 30년 도금공장 노무자 사장이 타는 그렌저 도아 손잡이 반짝이는 크롬도금 하느라 그의 비강鼻腔에 녹여낸 크롬이 동전만한 구멍을 뚫어 놓았다 아들 딸 더 크게 찢어 발긴 구멍 길 따라 허릿병 십년 마누라 약값도 흘..
동백꽃 이야기 김 대 근 30리 산길 비척대며 지겟질로 보낸 당신의 유년, 큐슈 어디쯤 석탄 굴에 묻은 할배 목숨값 품고 재가했다 온 할매 탓이라며 모질게 다 잡아 용서하지 못하던 아버지 그 눈길 에둘러 엄마가 쥐여준 동백기름 두 홉 친친 동여맨 고무줄이 소주병 목을 죄어 제자리 아님을 알아채린 ..
가을 그림자 김 대 근 가을에는 길게 늘어진 내 그림자에 뿔이 생기고 찢어진 눈이 막히고 어깨위로 망토가 덮인다 내 속을 일렁거리던 욕망이 여분의 다리를 휘저으며 앞서 걷는 여인 치마 밑을 탐하다가 마주와 출렁이는 젓퉁이를 주무르다가 그녀들 뾰족구두에 마구 짓밟힌다 이상도 하지, 감각을 ..
빨래를 밟으며 김 대 근 지난밤 생사대전生死對戰에서 통렬히 패배한 벌로 빨래를 밟으라고 한다 처음에는 어물쩍 웃음으로 거부하다가 방패를 내세워 막아보다가 시간의 목을 함께 조인 공범이라는 말에 우윳빛 살결 마블 욕조를 마구 힘주어 밟아댄다 밟혀도 달 겨 붙는 것들 그런 것들도 삶의 재미..
流星雨 내린 날 오늘은 어디쯤에 물 찬 두개골 눕힐까 새까만 어둠을 타고 도는 눈동자 마주오는 밝음에 꺾여 갑자기 하루의 人生도 꺾이고 만다 혼자 잔다고 굳이 말해도 심충굳게 생긴 주인는 에누리가 없다 치솔도 2개, 콘돔도 하나 줄 건 다 주어야 한단다 침대에 누워 이중창에 돌아서 있는 그녀..
실체와 실증 문득 살아있다는 증거로 한숨을 길게 뿜어야 할 때가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의 믿음을 얻어야 비로소 산다는 구속의 평안을 얻는다 누군가의 믿음을 얻는다는 것은 때론 나를 구속해야 하는 것 누군가를 믿어야 한다는 것은 상처마저 보듬어 핥아 주는것 누구는 나를 믿고 있는 걸까 나는 ..
보살의 卍行 김대근 얼른 묵어라 한 개 뿐이라… 할매는 안묵나 내는 아까 묵었다 니나 빨리 묵어라 우리 할매는 죽어서 뒷산 돈마물 뜯던 바위에 외로이 홀로 새겨진 돌 보살님이 되었다 달 뜨는 밤이면 할매 대신 부엉이가 감 익는다, 감 익어… 밤새 알려 주었다 그때마다 떫은 감 먹은듯 가슴이 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