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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에 은행잎은 남자의 욕망 같은 것이지 한줄기 연기로 사라지지 않은 행운 부여잡고 우는 남자의 폐부에서 깊이 짜내는 슬픈 오열같은 비가 육신을 두들기고 노랗게 피멍을 들이고 갖가지 기능을 퇴화시키지 퇴행을 거듭하는 남자들의 꿈 떨어진 은행잎 같은 것이지 어디론가 흘러가야할 의..
낡은 이발사 /김대근 어제는 이발소에 들러 머리를 손질 했습니다 작년에 쓰던 함석 연통은 군데군데 낡은 티를 내고 잠시 궁둥이 붙인 긴 의자는 귀퉁이 속을 드러내 닦아도 낡아가는 제 속살을 보입니다 이발사보다 더 늙어 보이는 가위가 아날로그 음으로 좁은 이발소를 채웠다 사라지자 비아그라 ..
야반삼경夜半三更 /김대근 상갓집 문턱을 넘으며 나를 위해 넘어 줄 사람들과 눈도장 찍습니다 태어나 찾아 헤매던 보물찾기 마침내 꼬깃꼬깃 접혀진 세월에서 죽음을 찾았고 그 증거로 숨을 놓았습니다 아직 헤매는 사람은 향을 꽂고, 국화를 놓고 껍데기를 바닥에 엎드려 성공을 축하합니다 아니 ..
대파꽃 김대근 고등학생 둘째 방 창문은 한사코 닫아 두자고 한다 열어두면 온갖 도회 뒷골목 낡은 빛깔들 차고 넘치게 몰려들어서 도저히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서이다 일 년에 한번 4월 27일은 탈각하는 우윳빛 창틀에 다섯 식구 턱을 괸다, 그날 만은...... 이순신 장군은 수군장水軍將인데 그가 태어..
부산역 광장의 그녀 김대근 수수 베어낸 자리 바람 한줌으로도 출렁대는 뜨거움, 동그란 태 수수깡 안경을 만들어 보았는가 부산역 광장 나무그늘 사금파리처럼 깨어져 내려 까맣게 물들이는 아스팔트 비워버린 만큼 다시 채워진 휘발성 바람들 몸부림치는 소주병과 직각으로 뉘여진 그녀의 얇은 시..
모텔 낙원장 김대근 아옹- 쏟아지는 별빛 디딤질 하는 발정 난 들고양이 울음이거니 했는데 얇은 벽을 타고 와 모란꽃 송이마다 맺히는 어떤 여자가 어떤 남자를 죽이는 소리 꼬끼오- 오랜만에 들어보는 수탉 소리 암탉 등을 타는 멀미에 공연히 새벽잠 깨어 모란꽃 천정에 그림을 보태다가 암소처럼 ..
각화사 문 살에 핀 꽃 김대근 각화사 지을 때 보시가 많이도 왔다네요 나랏님도, 현감님도, 아랫동네 천석꾼 영감도 비루먹은 나귀 등에 바리바리 실어와 기둥도 세우고 기와도 올리고 서까레도 올렸다지요 다 지어놓고 부처님 설법을 하시는데 앞니 빠진 개호지처럼 자꾸 법문이 흘러 춘향목 껍질에 ..
고등어, 노려보다 김대근 바다를 등에 지고 유빙처럼 뭍을 떠돌다 제 냄새를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고등어 진공 포장된 안장 위에 얇게 올라타고 다그닥 다그닥 달리는 얼음조각들 한기를 전달받지 못해 채워넣은 소금기 반으로 갈라진 속을 비우고 또 비운 모양 허전해진 등줄기 그가 마지막으로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