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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 아침 그림을 그리다가 문득 그림이 되고 싶었다 적당히 붉은색, 푸른색, 또 그럭저럭 섞여 채도도 명도도 모호해진 조합의 색감 서로 살아남겠다고 縱線과 橫線에 엉켜붙는 인생들 멈추어 지는 욕심들이 고 만큼씩만 지켜도 되는 캔바스 위의 세상 다그닥 다그닥 말발굽 소리 옥양목 가장자리..
아버지가 웃으셨다 아버지가 남보듯 웃는다 아버지의 해마에서 내가 지워진 모양이다 처음 본 사람에게 어슬프게 길을 터듯 아버지는 내게, 그렇게 웃었다. 뼈와 피부사이가 증발해버린 손 감각이 이탈한 오른 손을 주물러 본다 다시 웃었다 그 웃음이 낯설어 코끝이 확 시어온다 등판전체가 혈관이 ..
산수유 그늘 아래 세상 풍파 모두 짊어지고 허리 굽고 살이 튼 나무 아래 하늘 담은 함지박 우물 하나 있었다 간간히 들리는 아재 기침 소리 아지매의 눈빛 흔들림 따라 바람없는 날에도 출렁이는 우물 그 안에 담긴 구름을 보고 있으면 뜻 모를 어지럼증에 흔들리곤 했다 아재 대신 세상으로 걸어 나..
아버지와 물소 dementia 몇 달째 매직으로 휘갈긴 글씨는 침대에 걸린체 빛도 바래지 않았다 무엇 하나 변화없는 당신의 병실 오늘도 그때처럼, 그때처럼 이빨을 있는 대로 드러내 웃는 당신 절반의 슬픔이 또 다른 절반의 기쁨보다 깊은 상처를 가슴에 아로새긴다 내가 누구냐 물어도 웃기만 하던 그 우..
복사꽃 아래서 도홧빛으로 온통 물들던 그런 때가 내게 있었지 흩날려 뿌려진 채 삭아가는 벚꽃잎처럼 작은 바람에도 마구 일렁대는 그늘에 지금 누웠네 하늘이 저리도 깊었던가 저 언저리 어디쯤 내팽개친 내 꿈들이 조각나 저리도 빛이 나는가 닿을 수 없는 것이 더 빛나는 것처럼 저리도 반짝반짝 ..
산수유 피던 날 세상 풍파 모두 짊어지고 허리 굽고 살이 튼 나무 아래 하늘 담는 함지박 우물 하나 있었다 간간히 들리는 아재 기침소리 아지매의 눈빛이 흔들리듯 바람없는 날에도 출렁이는 우물 그 안에 담긴 구름을 보고 있으면 뜻 모를 어지럼증에 흔들리곤 했다 아재 대신 세상으로 걸어나와 요..
실상사 김 대 근 여기 저기 발에 채이는 아무렇게나 제멋대로 뒹구는 작은 돌 그런 작은 돌에서도 지리산의 전음(傳音)을 들었네 천년 세월을 승천하지 못한 그대로 보광전 댓돌에 하늘을 받친 석탑에 세월을 밝히는 석등에 연못에 비치는 나무에 늘러 붙은 돌이끼들이 깨친 세월의 득음(得音)을 실상..
사불산에서 김대근 문경 사불산 정상에 한 조각 남은 겨울 마지막 결계(結界) 山 봉우리 두어 개 쯤 온통 흔들고 마는 심후한 내공 두견이 울음은 결계 여는 열쇠인데 아직 마저 익히지 못한 비전절학(秘傳絶學)에라도 빠졌는지 도무지 소식도 없고 수펄들이 결계 깨버린 중턱에선 진달래가 육탐(肉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