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시- 산수유 피던 날 /김대근
    작은詩集 2010. 4. 10. 22:26

    산수유 피던 날


    세상 풍파 모두 짊어지고
    허리 굽고 살이 튼 나무 아래
    하늘 담는 함지박 우물 하나 있었다
    간간히 들리는 아재 기침소리
    아지매의 눈빛이 흔들리듯
    바람없는  날에도 출렁이는 우물
    그 안에 담긴 구름을 보고 있으면
    뜻 모를 어지럼증에 흔들리곤 했다
    아재 대신 세상으로 걸어나와
    요모조모 사는 일 훑어가던 아지매
    아재가 나를 보고 싶다했지만
    결핵은 옮는거니라, 우째 아를 보내노
    외조부 한 마디에 그렁 맺히던 이슬
    산수유 꽃에 달린 빗방울 같았다
    알록달록 종이꽃잎을 타고
    뎅그랑 뎅그랑 풍경처럼 부딪는
    소리꾼 위로를 받으며
    뒷산 외가 감나무밭 제일 외진 곳 가던날
    우물에는 하늘 대신 산수유 가득했다
    아재 탄 상여처럼
    흔들흔들 거리며 우물은 노랗게 물이 들었다
    해가 바뀔때마다 아지매는
    나를 보면 울고 또 울어서
    생전에 아재 한 번 보지 못한 후회가
    오늘처럼 이리 맑은 하늘에
    점묘화처럼 산수유 피는 날은
    아슴하게 가슴 채우곤 한다


    --------------------------------------------------------

     

     

     


    외조부는 질곡의 인생을 사셨다. 해방전 첫 딸은 사위와 함께 만주에서 공산주의자들에게 무참하게 주검을 맞았다. 그 참상을 해방후 돌아온 지인에게 듣고 큰 상심에 빠졌다. 세 아들중 두명은 6월 논 매러 갔다가 논에서 바로 징집당해 갔다가 전사하고 말았다. 막내 아들은 대를 잇기 위해 검지손가락을 스스로 작두로 잘라냈다. 그 날을 견디기 힘들었던 외조부는 오랫동안 노름으로 세월을 탕진했다.


    외조부에게 있어서 나는 첫 손자였다. 허허로운 마음속으로 나를 밀어 넣은 외조부는 나에게 특별한 정을 베푸셨다. 초등학교때는 거의 방학에는 외가에서 살았다. 며칠이라도 늦으면 단박에 "대근래외가조부학수고대"라는 전보가 외삼촌으로 부터 날아 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면 외조부는 사랑방 튓마루에 서서 밀양읍내에서 부산으로 가는 버스가 넘어오는 고갯마루에 눈을 고정하고 계셨다. "아배요. 아직 차시간 남았심더! 나가서 조금 기다리면 됩니더." 외삼촌의 말에 외조부는 " 아, 춥다!" 한마디면 되었다.


    한번은 구슬치기를 했다가 모두 잃고 시무룩 해있었더니 외조부는 비료포대를 가위로 잘라서 화로에 넣어 누글누글해지면 손으로 비벼 구슬을 만들어 주셨다. 그 생각이 나서 아이들에게 해주려고 시도했다가 손바닥에 화상을 입을뻔 했다. 외가에 도착하던 날은 예외없이 비닐봉지에 고무줄로 친친 동여맨 박하사탕 봉지를 받고는 했다. 집성촌의 가장 웃어른인 외조부는 동네의 대소사가 있을때마다 한 상씩 차려오는데 빠지지 않던 것이 박하사탕이었다. 그 박하사탕을 모두 모아서 비닐 봉지에 꼭꼭 싸서는 앉은뱅이 책상 서랍뒤로 넘겨 넣으셨던 것이다.


    외가와 두 집 건너에는 외삼촌과 같은 항렬의 친척이 살았다. 그냥 아재와 아지매로 불렀다. 아재는 결핵을 앓고 있었다. 그다지 좋은 약이 없던 당시 아재의 병은 점점 깊어만 갔고 아지매는 좋다는 것이라면 모두 거두어 먹이기에 늘 분주했다. 둘 사이에 아이가 없었던 탓에 일년에 두 번 방학 때나 보는 나를 무척 좋아 해 주었다. 한번은 가을걷이가 끝나고 초가를 새로 얻는데 몇 년에 한 번 정도는 지붕 전체를 걷어내고 새로 잇는데 매미의 애벌레들이 많이 나왔다. 고단백으로 폐병환자의 보양에 좋다는 소문이 있어서 아지매는 함지막 하나를 들고 밑에서 기다렸다. 당연히 굼벵이라 부르는 매미의 애벌레는 아재의 병구완을 위해 아지매의 함지박으로 들어가리라는 예상했었다. 그러나 변수가 생겼다. 외조부와 같은 항렬의 할배가 자기가 먹어야 겠다고 나선 것이다. 당연히 병자가 우선이라는 외삼촌과 나이가 우선이라는 할배와 고성이 오가게 되었다. 그때 사랑방 문이 벌컥 열리면서 터져나온 외조부의 일갈로 사태는 정리되었다. "아픈 사람이 우선아이가? 젊은 사람이 빨리 나아야지... ". 그리고는 다시 문이 닫혔다. 그때만큼 외조부가 멋있던 적이 없었다.


    아지매 집에는 우물이 있었다. 근방의 일가붙이들이 모두들 아지매 집 우물을 이용했다. 우물가에는 산수유 한 그루가 있었다. 산수유 꽃이 피면 우물은 온 통 노랗게 물이 들고는 했다. 여름과 겨울 방학에만 외가 나들이를 해서 산수유 꽃을 볼 기회가 그다지 없었지만 아재가 세상을 뜨게 되어 부모님의 문상 나들이에 따라 나서 아재의 부재보다 우물가에 피었던 산수유에 더 눈이 갔다. 아재는 산수유꽃이 화르락 피던 그날 그렇게 아지매를 혼자 둔 채 가셨다.


    땅 한 평 가지지 못한 아재는 외조부의 배려로 외가의 감나무 밭 언저리에 묻혔다.  볕도 잘 들고 바람도 제법 선선히 부는데다가 풍광도 제법 좋은 곳이었다. 아지매는 가끔 아재가 나를 보고싶어 한다고 했으나 외조부는 폐병은 옮기는 것이니 절대로 안된다며 아지매에게 면박을 주었다. 그럴때마다 아지매의 눈망울은 사슴의 그것처럼 처연해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외조부가 좀 야속했던 것 같다.


    외가에 갈 때는 항상 아지매 집을 지나쳐야 한다. 아지매 집은 담이 없었다. 아마도 동네 사람들이 우물을 쉽게 이용하게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항상 아지매가 가장 먼저 반겨주었다. 산수유는 아지매의 갈라지고 헤어진 마음처럼 줄기가 온통 너덜 거렸다.


    내가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면서 외가는 부산으로 이사를 했다. 그 이후 외가가 있던 곳과는 인연이 멀어졌다. 외조부와 외조모, 그리고 아재가 잠들어 있는 감나무 밭에 햇살 조붓하게 비치던 그 곳이 그립다. 아지매 우물가 산수유도 지금쯤 꽃을 피웠으리라.

    '작은詩集'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 아버지와 물소 (한국불교문학 23호 수록)  (0) 2011.03.08
    시- 복사꽃 아래서 /김대근  (0) 2010.04.25
    시- 실상사 /김대근  (0) 2010.02.25
    시- 사불산에서 /김대근  (0) 2010.02.25
    시- 개족보 /김대근  (0) 2010.02.18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