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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 아버지가 웃으셨다 (문학미디어 2011 봄호 수록)
    작은詩集 2011. 3. 8. 10:25

    아버지가 웃으셨다

     

    아버지가 남보듯 웃는다

    아버지의 해마에서 내가 지워진 모양이다

    처음 본 사람에게 어슬프게 길을 터듯

    아버지는 내게, 그렇게 웃었다.

     

    뼈와 피부사이가 증발해버린 손

    감각이 이탈한 오른 손을 주물러 본다

    다시 웃었다

    그 웃음이 낯설어 코끝이 확 시어온다

    등판전체가 혈관이 되어버린

    시퍼런 호수가 생긴 왼손을 주물러 본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옅은 안개처럼

    힘이 피었다 지기를 반복한다

    - · · - - - · · ,

    아버지가 보내는 모르스 부호인듯 싶어

    날선 신경에 칼 끝 세워 보지만

    해독할 수 없는 신호다

    공허한 아버지의 눈동자가 나를 훑는다

    살아남은 오른쪽 뇌피질의 어딘가를

    헤매고 계시는듯 내 눈의 길에 배를 띄우다가

    새벽이 찾아온 호수처럼 잠이 들었다.

     

    침대끝에 주련처럼 매달린 진단표

    거슬리게 또렸한 정자체

    사람의 정성이 싫어보기도 처음이다

    demantia

    아버지가 새로 얻은 병명이다

    외어지지 않던 단어가 치매라는 번역까지 붙어

    제법 격하게 뇌리에 새겨진다

    HT는 아마 심장병을 말하는 것일거다

    19살 아들이 어느날 말없이 사라지지 않았더라면

    그 시간이 없었더라면 저 단어도 없었을까

    웃으면 생긴다는 눈가 주름은 없고

    노해서 생긴 가슴 주름만 잔뜩하다는 게지

    DM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그와 내가 공유한 무었의 일부일까

    osteoporosis, 이건 골다공증이다

    오남매가 두더쥐처럼 파먹고

    패인 구멍 끝내 채우지 못해

    그 세월 절뚝여 걸어 오셨구나.

     

    오늘이 동지였던가, 팥죽이 나왔다

    70년 전으로 되 돌아간 아버지

    환자 스스로 하게 하라는 간호사 눈을 피해

    팥죽 한 숟갈을 떠먹였다

    아버지는 또 낯설게 온 잇몸 드러내 웃으신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오십이 넘고서야 처음 들어본 그 말에

    눈물이 났다, 고맙다는 그 말에 눈물이 났다

    아버지 왼쪽 손등 시퍼런 연못에

    끝내 떨구고야 만 눈물 한방울

    그 작은 파문을 따라

    다시 찬찬히 내 눈길에 배를 띄우시다가

    이내 가라앉히고 만다.

     

    따글따글, 팥죽 그릇 밑바닥 긁는 소리

    이제 그는 잠이 들리라

    앞 길만 걸어도 힘이 드는 세상에서

    그는 뒷걸음으로 또 한참을 걸으실게다

     

    (문학미디어 2011 봄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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