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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세탁慾心洗濯 /김대근 육 장이나 칠 장쯤 키보다 귓밥이 더 커 보이는 부처님 금빛 옷 출렁이며 후광을 툴툴 털어 밟고 휘적휘적 걸어와 툭- 손가락을 퉁기자 아아아-, 풍경이 거문고가 됩니다 기와 끝 위태하게 매달린 구름 우우- 새털처럼 흩어져 햇살공양 넉넉히 나눕니다 풍경의 눈물 머금은 ..
塔으로 들어가는 문 /김대근 저 문을 들고 나는 이는 누구일까 저린 다리를 조물거리며 기다려 보지만 참 빛깔도 고운 토함산 복사뼈 깎고 갈아 만든 서역으로 통하는 문 넘겨보니 뒤가 없는 그 문으로 들고 나는 이 누구일까, 누구일까 미적 이는 제자리걸음 행간마다 고였던 햇살 몇 톨 줄고 애기똥..
무량사에서 김대근 극락전 낡은 문고리에 고추바람 한 줌이 남았다 봇물 터지듯 봄이 쏟아진 절 마당 겨울의 봉인 기어이 지키려는 눈발 一茶頃, 목탁소리 문살로 새어나오면 꽃문양마다 아미타불 숨결이 돋는다 팽나무 빈속 우려내는 새소리 담 넘어 생강나무 꽃이 부끄러운 듯 바라본다 겨울, 마지..
▲상차림 © 고은희 기자 할매 제삿날 장닭이 심심한 돌각담 조는 그늘 쪼아댄다 조각난 햇살 걸릴 때마다 쪼그라든 위장 알싸한 소식 빈 함지를 훑다가 어제 먹은 마지막 고구마 삐떼기*에 생각 가닿아 생쌀 한 줌 고양이처럼 웅크리고 씹고는 했다 그때마다 할매는 대청마루 송판 나이테 같은 ..
이발관에서 /김대근 어제는 이발관에 들러 머리를 손질했습니다 온통 낡은 이발관입니다 작년에 쓰던 함석 연통은 군데군데 낡은 티를 내고 잠시 궁둥이 붙인 긴 의자는 귀퉁이 속을 드러내 닦아도 낡아가는 제 속살을 보입니다 이발사보다 더 늙어보이는 가위가 아날로그 음으로 좁은 이발소를 채웠..
이불빨래를 하며/김대근 좁은 욕조에 서로 몸을 줄여 누운 이불 3채 여름내 머금어 온 땀내 온종일 맹물에 녹여내고 있다 지난밤 야시시한 부끄러움 끝내 외면하고만 복수인 듯 아내가 베이지색 철문을 나서며 빨래 3채 맡기고 갔다 끓어오르는 체온을 온통 거실바닥에 말리고 있는데 딸내미가 가재미..
수첩을 새로 산 날 김대근 몇몇은 작대기 먹빛에 몸이 반 토막 났고 몇 명은 그나마 새 이름을 얻고 살아남았다 시신들만 가득한 낡은 수첩에서 호곡號哭소리 울려 나와 서재 모퉁이 서랍에 넣고 봉인을 한다 혹여 죽었던 그들이 토막 난 몸을 일으켜 다그락 거리는 밤을 보낼지 몰라 소지燒紙하지 못..
돼지 실은 차 지날 때 김대근 햇살 알알이 부서져 앞유리에 내리는 오후 나른한 권태 흔들리며 무인카메라 아래 지날 때 빛깔만 다른 철창, 그 사이로 잠깐 스치는 달관의 눈빛 등판의 낙인들 내 어깨에 내려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