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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포말 등대 /김대근 나는 광대다 적막한 밤, 불빛에 꾀여 동해의 포말들 우르르 몰려와 제 흥에 겨워 바위를 들이 박다 푸르팅팅 멍이 들어 돌아간다 나는 광대다 태양이 바위에 거북등을 그리는 낮 물기를 찾아 나선 방죽의 두꺼비처럼 사람들 꾸역 몰려와 도회의 단근질로 내 얼굴을 온통 붉히어 놓..
영덕 강구항에서 /김대근 8월 염천炎天에는 영덕 강구항 대게 장사들 지금은 이방인 까레이스키 러시아 환전상이 된다 ��- 어둠을 달리던 기차가 내뿜던 뜨거운 증기烝氣의 구름 슬쩍 스치기만 해도 동해의 차가운 물을 훑어온 이국異國의 붉은 돈들이 푸른색 가면을 쓰고 빠지는 코스프레 만원짜..
오징어 덕장을 지나며 /김대근 그들의 먹물빛 밤 밝히던 어선들 수평선을 버리고 서해로 떠나 버린 동해 차마 떠나지 못해 얼쩡이다가 늙은 채낚기를 따라 나와 노끈에 몸을 기대고 나날이 바다를 그리고 있다 아무리 그려도 바다는 멀고 심장은 자꾸 말라간다 아! 그랬었구나 연탄불에 오징어 구우면..
포항 호미곶에서 /김대근 구리와 주석의 불륜으로 태어나 호미곶 바다 뚫고 나온 손은 미처 경락을 만들지 못해 바다와 하늘이 서로 통하지 못했다 하루에도 수십번 바람을 일으키면 질세라 파도가 성을 내었다 터를 잡고 살던 갈매기들이 보다못해 천금같은 제 속을 게워 손가락 마다 경락을 뚫고서..
포항 세계불꽃축제 /김대근 박씨네 밭뙈기는 넓은 먹물빛이다 사람들은 모두 어찌 농사 짖느냐 했지만 박씨는 부지런히 아궁이를 지펴 연기를 피워 올렸고 다른 사람들 양파, 부추 수확 끝낸 형산강변 그의 밭뙈기에 어느 하룻밤 연기의 신호를 받은 UFO 날아와 무언가 뿌리고 사라진 후 심어둔 씨앗도..
국화차를 끓이며/김대근 한 해 전 부쳐놓은 가을 소식 철 지나 쪼그라든 봄에 듣다 누군가에 전해지기로 되어 유리병에 비좁게 몰아서 산 한 철 달여진 찻물 사라락- 국화가 새로 피어 숨겨온 향기를 전한다 비어 있는 차 탁 한 쪽에 가을 안개 모락 피어오른다
<문학미디어 신인상 당선작> 조롱박 꽃 김대근 세월 흘러 귀밑머리 색 바래고 세월은 눈매마저 깎아 궁글어졌지만 육신은 고기 몇 근 남기고 있는데 낡은 양봉원 간판 길게 그림자로 눕던 곳 15 층 아파트가 들어섰다. 깊게 팬 흉터도 세월은 갈아낸다지만 여전히 아프게 남은 상처 하나. 담 넘어 ..
해당화 /김대근 아직도 아니 왔나요? 당신이 기다리는 그분 작년에도 아니 와서 올해도 여전히 기다리는군요. 그분은 바다로 오시나요?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계시네요. 그분은 소식을 파도에 실어 전하시나요? 처얼썩~ 처얼썩~ 파도소리 들릴 때마다 흔들리네요. 아직도 그분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