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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 포항 호미곶에서 /김대근
    작은詩集 2007. 10. 19. 23:44

     

    포항 호미곶에서 /김대근


    구리와 주석의 불륜으로 태어나
    호미곶 바다 뚫고 나온 손은
    미처 경락을 만들지 못해
    바다와 하늘이 서로 통하지 못했다
    하루에도 수십번
    바람을 일으키면 질세라 파도가 성을 내었다
    터를 잡고 살던 갈매기들이
    보다못해 천금같은 제 속을 게워
    손가락 마다 경락을 뚫고서야
    바다는 살이 빠졌고
    하늘은 구름뒤로 숨어 눈만 내밀었다
    오늘은 바람도 파도도 숨을 죽였다

     


    +++++++++++++++++++++++여행메모(2007.8.5)++++++++++++++++++++++++++++


    불꽃놀이가 너무 늦게 끝이 났다. 무려 7시간을 차에 시달린 여독도 만만치 않게
    무릎이며 허리며 팔다리를 조였다. 어디로 가야하나?
    계획하고 출발한 것이 아니였으므로 어디로 가서 하룻밤을 유숙해야 하는지도
    하나의 고민이 되었다. 여관과 민박, 그리고 찜질방을 두고 설왕설래하다가 뜨거운
    탕속의 안온함에 끌려 문덕의 찜질방으로 가서 하룻밤을 보냈다.


    아이들이 유년을 보낸 곳이 포항이다. 12년을 살았으니 큰 아이에게는 모든 유년의
    기억이 서린 곳이 포항이다. 그럼에도 큰 아이는 경주를 가고 싶다고 했다.
    경주로 가기로 하고 바닷가로 길을 잡아 호미곶을 들러 가기로 했다. 아이들은
    토끼꼬리가 맞다고 한다. 지도를 놓고 보아도 호랑이 꼬리고 보기에는 너무 짧으니
    토끼꼬리로 보는 게 합당하다는 주장이다. 나는 와이프의 응원에 힘입어 짧지만
    그래도 호랑이 꼬리로 불러야 한다며 우겼더니 대학생인 큰 딸의 한마디가
    잘드는 창이 되어 나를 찔러왔다.


    "택도 없는 국수주의적 발상이야...그게 호랑이 꼬리라고 우리가 호랑이가 되나"


    호미곶에는 3개의 불꽃이 있다. 세기가 바뀌는 2000년 해가 가장 먼저 뜬다는 피지
    에서 채취한 불꽃, 호미곶에서 2000년의 첫 해오름에서 채취한 불꽃, 1999년의 마지막
    일몰의 서해에서 얻어온 불씨가 그것이다.


    그리고 광장에는 바다를 향해 손을 벌린 조형물이 바닷속에는 육지를 향해 손가락을
    벌린 청동 조형물이 있다. 수직으로 추를 내리면 아르헨티나 어디쯤 되려나 싶어
    그쪽에는 발을 조형하면 어떨까 했더니 이번에는 와이프가 비수같은 한마디를 꼽는다.


    "그쪽 사람들은 벨도 없남요? 냄새 나는 발을 자기 나라에 심게..."


    바닷물속의 손은 갈매기들이 배설물로 마치 경락인듯 그려 놓았다. 생명이 없던
    구리와 주석의 합금이 마침내 갈매기들로 인해 마치 살아 있는 듯 했다.


    피해왔나 싶었던 비가 남쪽으로 우리를 따라 왔다. 구룡포에서 감포로 향하다
    마음에 드는 바닷가에 자리를 깔고 컵라면을 한 젓가락 막 입에 넣으려는데 우드득~
    소나기가 쏟아 졌다. 작은 코펠에 물을 끓인 탓에 물을 인색히 부어 짠 컵라면에 빗물이

    섞여 조금 알맞은 간이 되었다. 우산 하나에 다섯식구가 머리만 디밀고 컵라면을 먹다가
    키득키득 웃다가 사래가 들렸다.


    경주는 사실 나도 가고 싶었던 곳이다. 안압지의 밤풍경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안압지는 큰 아이가 두어살때 데리고 갔던 곳이다. 이십년 가까이
    흐른 안압지는 큰 아이에게 어떤 느낌으로 와 닿았을까?


    경주에 도착했을때는 아직 날이 훤했다. 안압지의 야경을 위해서는 아무래도 어둠이
    내려야 할 것이니 보문호에 잠시 여장을 풀었다. 딸들의 성화로 ATV라는 4륜구동
    오토바이를 임대해 주었다. 의외로 재미 있었고 얌전하던 딸들은 이 순간 마치
    숨겨운 야성이 폭팔한 맹수처럼 자갈밭을 으르렁 대고 다녔다. 평소 얌전하던
    둘째도 숨겨온 야성을 내 보였다.


    와이프는 저녁을 준비했다. 간편하게 라면으로 하자는데 굳이 하루 한끼라도 밥을
    먹어야 한다며 준비했다. 이번에도 첫숟갈이 입으로 들어가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소나기가 내렸다. 깔았던 자리는 이미 버린채 두고 먹거리만 모두 차로 옮겼다.
    이번에는 좁은 차안에서 다섯식구가 서로 바라 보며 킬킬 웃었다.


    안압지의 밤 풍경은 그림같았다. 벌써 대여섯번의 걸음이지만 안압지의 밤 풍경은
    질리지 않는다. 아이들도 다행이 좋아라 했다. 안압지는 신라가 통일을 이룩한 후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게 내 지론이다. 통일전쟁을 하는 동안
    수많은 신라의 귀족들이 전사를 했고 그들의 미망인들은 당시 위정자들에게는 가장
    골치 아픈 일이기도 했을 것이다. 여염집 여인도 아니고 왕족이나 귀족들의 과부는
    함부로 표나게 욕망을 풀 수도 없지 않았겠는가.


    안압지를 발굴할 때 나무로 깍은 남자의 거시기 모양이 많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따로 전시를 할 만큼 숫자가 많았다는 것이다. 내가 그 이야기를 와이프에게
    했더니 그 전시는 꼭 보고 싶다고 했다. 공연한 말로 숙제만 늘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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