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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레옥잠 김대근 지나가는 바람의 몸짓 아주 조금씩 표나지 않게 삥땅쳐 깔고 앉은 자리 여름도 늦여름 마침내 부풀어 버린 복사뼈 하나씩 하늘색 물이 든다
고은희 기자 ▲ 경주 보문의 소경 © 고은희 기자 꿈속의 꿈들/ 김대근 꿈을 꾸었다 쓰러져 있던 풀잎들 죽창(竹槍)처럼 발기하여 지나가 버린 꿈 손마다 수없이 들려 우우우~ 아우성을 질렀다 지천명(知天命)의 또 다른 말은 비겁하게 살 줄 안다는 것 세월의 지우개 까만 똥으로 만들어 놓은 꿈..
전태일, 빛으로 남은 날 김대근 또르르 하루를 온전히 봉인하는 미싱 소리가 자정 지나 세상 문이 열리는 새벽이 되어도 꺼지지 않는 알람처럼 귓볼에 이명耳鳴으로 늘러 붙는다 방은 쪽방 새우처럼 굽혀져야 비로소 바람 길 생기는 평화시장 반지하 종일 가동한 허파꽈리 천연 집진기가 담아 온 기침..
청암사의 가을 김대근 바람은 청암사 가을을 만드는 장인이다 한 올 가을햇살 잡으려 애쓰다 제 풀에 자꾸 말라가는 감 그 까칠한 피부 쓰다듬어 그슬기도 하고 잘 익은 단풍 한 잎 골라 석탑에 공양 올리고 마침내 얻어낸 보살의 미소를 날라서 대웅전 문살틈을 메우기도 한다 청기와에서 미끌어진 ..
하회마을은 쉬는 중 /김대근 한바탕 소나기 훑고 간 하회마을이 기분 늘어진 오수에 빠졌다 기념품 매점의 각시탈 웃음도 우습지 않고 할미탈도 주름을 걷고 쉬는 중이다 매미도 조심히 우는 삼신당 소원쪽지들도 잠시 세월의 허기를 메꾸는 중이고 나룻배도 강이 제 물빛을 찾기까지는 드러누워 쪽..
안동 봉정사에서 /김대근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였다지 잘 익은 연꽃 한 송이 크게 깨달은 이가 들어 보였다지 멀뚱한 눈들 사이로 마하가섭, 동전크기로 웃었다고 했지 소나기 오가는 날 봉정사에 들렀더니 천년 묵은 극락전을 둘러 매미는 통천음경通天音經을 외고 있었고 쓰르라미 때아닌 도량석..
비오는 고래불 해수욕장 /김대근 오늘은 무욕無慾한 날이다 농도 짙던 욕망이 담채색 빗물에 씻겨 모래땅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무욕無慾한 날은 무료하기도 해서 텐트를 두드리는 빗방울의 박자를 셈하다 쪽잠이 들었다가 알록달록하게 치장한 비늘을 온몸에 치렁치렁 두르고 여름이 비를 타고 승..
영덕 풍력발전소 /김대근 하늘이 바람의 씨앗을 뿌리면 밤 파도 소리에 싹을 틔운 바람이 옆으로 줄기를 뻗어 솔가지를 흔들고 물의 살결을 어루만지다 심심해지면 산정山頂에 올라 햇살에 제 몸을 쪼여 물기를 빼고 가벼워진 몸으로 바람개비를 돌리며 논다 바람개비의 원심력에 씨방이 커지면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