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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전태일, 빛으로 남은 날 /김대근작은詩集 2007. 11. 13. 16:47
전태일, 빛으로 남은 날
김대근
또르르
하루를 온전히 봉인하는
미싱 소리가 자정 지나
세상 문이 열리는 새벽이 되어도
꺼지지 않는 알람처럼
귓볼에 이명耳鳴으로 늘러 붙는다
방은 쪽방
새우처럼 굽혀져야
비로소 바람 길 생기는
평화시장 반지하
종일 가동한 허파꽈리 천연 집진기가
담아 온 기침을 쪽방 가득히 뱉어 놓는다
기침 한 뜸마다 번쩍이는 빛이
춤을, 곱사춤을 추어
낮보다 밝은 천국을 만들어 놓는다
이 밤 이리 새고 말면
백열등이 밝음을 봉인하리라
봉인된 어둠 아래서 재봉틀들이
노루발을 세우고 달리리라
전신환電信換을 부치고 온 명자가
욕지기를 한 바가지 서서 먹다가
주르르 흘린 각혈을 방울방울 떨구어
잠깐 빛이 들어온 순간에도
여전히 노루발들은 따그락거리며
목표도 없이 어둠 속을 달린다
사람들의 그림자만 사는 곳
어둠이 목을 조였다, 아무리 기침을 해도
빛은 더는 이곳에 들지 않았고
사람들의 그림자는 옅어져 갔다
더듬더듬 출구를 찾느라 서로 손목을 비비는 순간
환한 빛이 어디선가 생겼다
아! 내 그림자 이랬었구나
그는 그 빛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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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권익이 무었인지도 모르던 암울한 시절인 1970년 11월 13일
서울 평화시장의 재단사 전태일이 노동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며 분신자살 했다.
그는 1948년 대구에서 가난한 봉제공의 아들로 태어나 생계를 위해 12살 때부터
날품팔이를 시작했다. 평화시장의 미싱사 보조 ("시다"라는 일본말이 더 잘 통하는
데 지금도 보조를 시다라고 표현하는 사람이 많다)로 들어가 일하다가 1969년에
'바보회'라는 재단사 모임을 만들었다가 회사에서 쫓겨났다.
당시 평화시장내 옷을 만드는 일을 하는 근로자들은 혹독한 환경에서 일했다.
재단과 미싱과정에서 나오는 미세한 먼지들은 집진기 대신 그들의 폐속에 쌓였고
빈번히 일어나는 안전사고에도 치료조차 받을 수 없었다.
그는 그곳에서 착취당하는 근로자들의 현실에 일찍 눈을 뜨고 모임을 결성했고
당시 법적으로 엄연히 제정되어 있던 근로기준법을 준수할 것을 외쳤다.
그러나 당시 노동자는 법으로부터 버려진 위치에 있었고 개발경제에 총력을
기울이던 박정희 정권 역시 사업주의 편의를 도모하기에만 급급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막막함에 가로막히자 그는 분신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기에 이른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그가 분신하면서 남긴 마지막 말이다.
얼마나 소박한 말인가? 다른 것도 아닌 법에 명시된 근로기준법만 준수해 달라는...
그의 죽음을 헛되이 할 수 없다는 자각이 1970년대 한국노동운동의 깃발역활을
한 청계피복노조를 출범시켰고 그해 12월 정부와 여당은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
하고자 노동부를 신설하기에 이르렀다.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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