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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낡은 이발사 /김대근작은詩集 2009. 6. 23. 10:53
낡은 이발사 /김대근
어제는 이발소에 들러 머리를 손질 했습니다
작년에 쓰던 함석 연통은 군데군데 낡은 티를 내고
잠시 궁둥이 붙인 긴 의자는 귀퉁이 속을 드러내
닦아도 낡아가는 제 속살을 보입니다
이발사보다 더 늙어 보이는 가위가 아날로그 음으로
좁은 이발소를 채웠다 사라지자
비아그라 알약 빛 전동 바리캉이 제법 세월을 돌려놓습니다
오른쪽 무릎 관절이 가끔 내는 비명을 이발의자에서 들으며
내 육신 모든 수분이 등짝으로 침잠 합니다
얼굴에 뜨거운 수건이 모공을 마구 휘둘러 댑니다
얼금얼금 낡아 빠진 수건임을 가만히 짐작 합니다
소 한 마리 살다간 흔적이 틱-틱-틱- 면도칼에 부딪히며
사라진 소리를 다시 내려다 목이 잠기고 맙니다
북적북적 비누거품 개는 소리에 설핏 잠이 듭니다
턱을 훑는 그의 손에서 아버지 냄새가 납니다
갈 때마다 고향은 자꾸 젊어집니다
고향집 마당 채우던 햇살은 도회의 그림자에 밀려 났습니다
그림자와 그림자 사이, 한 뼘의 햇살을 따라 표백되는 아버지
이발사가 검은빛 물을 들이자 했지만
낡아가는 아버지의 위로가 될까 하여 그만 두었습니다
<문학미디어 2009년 여름호 수록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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