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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 보살의 卍行 /김대근
    작은詩集 2009. 11. 16. 17:30

     

     

     

    보살의 卍行


                         김대근


    얼른 묵어라
    한 개 뿐이라…
    할매는 안묵나
    내는 아까 묵었다
    니나 빨리 묵어라
    우리 할매는 죽어서
    뒷산 돈마물 뜯던 바위에
    외로이 홀로 새겨진
    돌 보살님이 되었다
    달 뜨는 밤이면
    할매 대신 부엉이가
    감 익는다, 감 익어…
    밤새 알려 주었다
    그때마다 떫은 감 먹은듯
    가슴이 메이곤 했다
    뒷산 돈나물 바위 대신
    그림자가 개울에 닿는 아파트가 서고
    갈곳 없어진 보살님
    어디론가 卍行을 떠나셨다
    돈나물 바위 보살님
    오늘은 온양장 시전市廛에 만행오셨네

     

    -----------------------------------------------------------


    온양장은 4일과 9일이다. 장터는 시내를 관통하는 길을 막고 있어서 장날이면 항상 정체구간이 되고 만다. 사람이 다니기도 좁은 인도는 시골장이 그렇듯 고추, 마늘, 소채류 등등 집에서 키우고 가꾼 것들이다. 10여 미터를 전진하는데 족히 5분은 걸려야 한다. 그러니 자연 오른쪽, 왼쪽 돌려가며 굽는 생선처럼 장판도 오지게 눈에 채운다. 작년에는 아내의 꾐에 빠져 장구경을 갔다가 보수도 없는 짐꾼 역활을 하고 말았다. 감을 한접이나 사서 둘이 마주 앉아 종일 깎아서 늘어 놓았더니 들며 나며 잘도 줏어 먹는 아이들을 보며 무보수 짐꾼의 보람을 느꼈다. 할머니 한 분이 참깨 한 봉지, 들깨 두어 봉지를 놓고 이제 이것만 팔면 들어가신다기에 참깨 한 봉지를 샀다. 다른 곳에서 어물을 흥정하던 아내의 장바구니에 슬며시 밀어 넣어니 그렇게 파는건 중국제라고 한다. 설마했더니 두바퀴째 다시 돌때보니 여전히 참깨 한 봉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장날마다 조그만 손수레에 보온물통을 싣고 다니며 커피를 나누어 주는 목사님과 막대기를 딱딱 두드리며 'XX교를 믿읍시다'하고 다니는 전교인이 마주치는 장면도 재미있다. 추운 장터의 커피맛도 좋을 듯해서 한 잔 청했더니 커피를 주기전에 믿음부터 이야기 한다. 커피맛이 쓰다. 공짜는 대개 맛이 있는 법인데 맛이 영 별로다.


    수도권 전철이 아산까지 연장이 되면서 철도가 지상으로 건설되었다. 당연히 교각 밑은 주차장으로 한동안 활용되다가 다양한 공원과 족욕체험장, 분수등으로 조성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게다가 이 곳으로 장을 옮겼다. 저번 장판에도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존 장사치들의 텃세에 바깥으로 돌던 이들이 다시 자리를 잡았다. 규모는 저번에 비해 1/10정도로 적어졌다. 힘없고 빽없는 사람들의 시장으로 바뀐것이다.


    새로 문을 연 5일장터는 바닥에 보도블록도 고급으로 깔리고 화강암으로 테두리도 있는 고급스러운 곳이다. 둥근 기둥에는 몇 호 정OO같은 숫자로 자신의 자리를 구획지어 두었다. 추첨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가운데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희희락락 입이 귓볼까지 찢어 졌고 사람이 덜 찾는 귀퉁이나 금 그은 곳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은 그야말로 공허한 눈동자에 추위가 서린다. 오늘은 마침 토요일인데다가 아내는 모임이 있다고 나가고 막내 아이는 학원으로 가고, 새벽까지 책을 보던 두녀석은 꿈나라를 해메고 있다. 마침 모 잡지에 연재중인 영화칼럼을 쓰려고 자리를 잡았는데 통 시작부분이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접어두고 장구경을 나온 길이다. 어묵 천막에서 바람을 타고 흘러 온 냄새가 시장기를 자극했지만 혼자서 먹기도 머쓱해서 그냥 오고 말았다. 소심한 성격 탓이리라.


    새를 파는 장사를 오랫만에 본다. 짹잭, 쪼로롱… 울음소리도 맑고 좋다. 두어마리 사다가 베란다에 걸어두면 좋을 것 같았지만 동물이라면 질색을 하는 아내의 눈빛이 어른 거려 참고 돌아선다. 요즈음 아이들에게 다육이가 유행이라던데 그것도 두어개 살까 하며 이리 저리 만지다가 포기했다. 온 식구가 새벽에 집을 나가면 밤 늦어 들어 오는데 잘못하면 죄없는 다육이만 죽일 것 같아서 였다.


    오랫만에 말린 지네를 파는 상인을 만났다. 어릴적 짚으로 이은 지붕이나 잿간에 많았던 지네였다. 지네를 잡으면 유리병 속에 모았가. 그렇게 열마리 쯤 모이면 시장 한약방에 가져가면 30원을 주었다. 극장구경을 한 번 하는데 5원 하던 시절이니 초등학생에게 작은 돈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추억속의 지네보다 너무 크다. 원래 지네가 이렇게 크냐고 물으니 중국산이란다. 중국 지네들은 크기가 아주 큰 편이라고 한다. 그 옆에 해마를 말려서 팔고 있었다. 지네와 해마는 이 장사치의 주 품목은 아니다. 그의 주 품목은 광약이다. 녹슨 냄비나 철물을 놓고 스폰지에 묻혀서 문대면 광이 반짝반짝 나는 광약을 파는게 주업이다. 원숭이 대신 탬버린을 흔드는 인형을 호객꾼 삼아 손님을 끌어 모아보지만 옛날 처럼 못그릇이나 녹스는 철구를 사용하는 사람이 적으니 그의 곁은 한산하다. 내기 지네와 해마 말린 것에 관심을 보이자 어디에 좋고, 어디에 좋고하는데 그야말로 만병통치다.


    그냥 구경 한 번 한 것으로 만족하고 돌아 오는데 금 그은곳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장판의 제일끝에 감 무더기를 놓고 앉아 있는 할머니를 만났다. 한 무더기를 살까 하였지만  바로 어젯밤에 아내가 사들고 들어온 감 한상자가 생각나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할매 생각이 불현듯 났다. 할매는 집앞에 한 그루 감나무에서 스무여남개의 감을 따서 단지에 물을 붓고 덤구어 두었다. 감은 더디 익었고 떫은 맛이 채 가시기도 전에 댓명의 손자들은 단지의 바닥을 비웠다.  마지막 감 하나를 숨겨 두었던 할매는 내가 가자 내 놓았다. 다른 아이들 오기전에 얼른 먹으란다. 여름이면 할매는 집 뒤산에 있는 바위를 자주 찾았다. 돈나물이라 불리는 나물이 많았다. 초장에 무쳐 먹기도 하고 물김치를 담아 먹기도 했다. 그 바위에서 할매는 돈나물을 뜯기전에 항상 치성을 드렸다. 아무것도 없는 바위에 손을 비비며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을 염하며 수없이 절을 해댔다. 나는 바위속에 진짜로 보살님이 계시는 줄 알았다. 할머니가 생쌀 한줌을 입에 물고 저 세상으로 동박새 등을 타고 날아가시고 몇 해 후에 그곳에는 고층아파트가 생겼다. 덕분에 바위속 보살님은 세상 여기저기를 만행卍行중이실 게다.


    저녁 밥을 먹고 아내가 감 두개를 후식으로 내어 왔지만 나는 그 감을 먹지 못했다. 만행중인 그 보살님의 감을 사왔어야 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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