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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 실체와 실증 /김대근
    작은詩集 2009. 11. 18. 22:40

     

     

     

    실체와 실증


    문득 살아있다는 증거로
    한숨을 길게 뿜어야 할 때가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의 믿음을 얻어야
    비로소 산다는 구속의 평안을 얻는다
    누군가의 믿음을 얻는다는 것은
    때론 나를 구속해야 하는 것
    누군가를 믿어야 한다는 것은
    상처마저 보듬어 핥아 주는것
    누구는 나를 믿고 있는 걸까
    나는 그 누구를 믿고 있는 것일까


    오늘은 아무도 나를 믿지 않았다
    컴퓨터는 나를 계속 밀어냈고
    밀려난 나는 책상의 모서리에
    굴뚝새처럼 숨을 몰아 쉬었다
    가만히 발자죽을 따라보니
    USB 구리발 4개를 따라 사라진 나
    종일 찾아 헤맸다
    나의 믿음을 찾아 길을 떠돌았다


    믿음을 잊어 버린 자들
    새로운 유형의 노숙자


    ----------------------------------------------


    "감쪽같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할 만큼 완벽하게 속인다는 뜻이다. 그 말의 어원을 살펴보면 재미있다. 씨알도 작고 씨도 무척 많지만 흔하기는 한 고욤나무에 눈이 달린 감나무 가지를 베어 붙인뒤 끈으로 감다둔다. 이른바 감접을 붙인다고 하는 것이다. 이듬해 살펴보면 고욤나무와 감 가지를 붙인 자리에 표시가 전혀 나지 않는다. 그래서 '감접 붙인 것 겉다'에서 "감쪽같다'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감나무 묘목은 여간해서는 떪은 감, 단감 등 표시가 나지않는다. 그래서 봄에 묘목을 사다 심는게 아니고 가을에 감이 열리는 것을 보고 사다 심어야 한다.


    아산 장날 장구경을 나섰는데 감 묘목을 파는 장사치가 여럿이 나와 전을 벌렸다. 나무 마다 서너개의 감을 매달고 있다. 잎도 다 떨어진 데다가 기껏 2~3년 생인 묘목인데도 신기하게 감이 매달려 있는 것이다. 신기해 하다가 가까히 가보니 혹시 떨어질까봐 스카치 테잎으로 친친 동여 놓았다. 감 떨어진 묘목이 팔려 나가지 않을 것은 뻔하기 때문이다. 믿으려는 사람과 믿음을 주려는사람의 노력이 눈물겹다. 감 묘목을 준비하며 스카치 테잎으로 행여 감 떨어질까 동여매던 농부의 마음이 그나마 추은 날씨를 조금은 덮여 주었다.


    보건복지부에서 운영하는 절주전문지에 영화와 술이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지난 토요일 겨우 완성해두고 이메일로 보낼까 하다가 마감이 월요일이니 이왕이면 전확하게 시간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USB에 저장했다. 월요일 메일을 보내려고 USB를 포트에 꼽으니 뭔가 조짐이 이상하다. 온갖 방법으로 노력을 했지만 몇 시간 만에 내린 결론은 USB의 문제라는 것이다. 몇년동안 썼는 글들이 몽땅 날아갈번 했지만 생각해보니 한달전에 따로 빽업을 해둔게 생각났다. 그나마 다행이지만 한 달 동안의 글들은 여름에 눈 녹듯 사라지고 만 것이다. 글씀에 있어서 직관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는 내가 쓴글에 대해서 잘 기억을 하지 못한다. 그러니 잡지사에 전화를 해서 양해를구하고 하루를 더 얻었다.


    문제는 보안인증서가 USB에 있었던 탓에 회사 사이트에 접속할 수도 없다. 그게 없으니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급히 인터넷 뱅킹을 해야 하는데 그것도 불가하다는 메세지만 화면에 나온다. 출장 정산을 위해 하이패스 사이트에 들어가 영수증을 출력해야 하는데 그것도 불가, 사이버 수업을 받고 있는 두군데의 사이버 대학에서도 나를 믿을 수 없단다. 갑자기 내가 유령이 된 기분이다. 실체는 있으되 실증은 없는 애매한 존재가 되어 버린것 이다.


    종일 뛰어다닌 탓에 다시 인증서를 발급받았다. 온 세상이 갑자기 표변하더니 나를 100% 믿을 수 있단다. 감쪽같이 실체의 세상에 복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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