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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떠나지 못하는 도시
    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2010. 6. 9. 13:54

    떠나지 못하는 도시


    덥다. 시내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에 폐기되었으나 걷어내지 않은 철길 건널목을 건너는데 철로에 바짝 붙여 심어놓은 보리를 걷어 타작을 하고 있다. 허리가 거의 90도로 굽은 노인이 혼자서 한 발 쯤 되는 막대기로 토닥 대고 있다. 아직 베지 않은 보리가 여기도 한 무더기 저기도 한 무더기 올망졸망 다도해 섬 같이 땡볕에 떠있다. 기상이변은 확실히 우리들 곁에 바짝 다가와 있다. 보리 타작을 할 즈음에는 봄이 절정을 이룰 때인데 오늘 같은 날씨는 그야말로 8월의 염천을 방불하게 한다. 불 볕에 달아오른 차는 문을 열자말자 뜨거운 열기가 후근하며 잘 달아오른 여인의 몸같이 가슴팍으로 와락 안겨온다. 에어콘을 4단까지 올리고도 한참을 달려야 마침내 핸들도, 기어봉도, 의자도 열기를 삭힌다. 그래도 에어콘을 2단 이하로 내릴 수 없다. 그만큼 내 몸은 문명의 이기에 공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조금씩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셈이다.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진화의 방향이기는 하지만 이게 아닌데하고 돌아보니 너무 멀리 왔다. 보리타작은 도리께가 제격이다. 구리빛 팔뚝을 따라 증기기차의 링크처럼 힘차게 곡선을 그리며 도리께가 바닥에 몸을 대고 누운 보리를 사정없이 내리치면 보리알들은 사방으로 비산하고는 했다. 요즈음은 보리를 재배하는 것을 보는 것도 쉽지 않고, 도리께 질은 더욱 보기 귀하다. 겨우 한 발 쯤되는 막대기로 타닥대는 타작이니 아마 사나흘은 족히 걸릴 듯 하다. 문명의 이기에 기대어 사는 내가 왠지 한심스러워 창문을 열고 에어콘을 껐다.


    농사는 과정이 참 많다. 절기를 잘 알아야 하고 절기에 맞추어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수확을 한다. 그 때를 놓치면 한 해 농사를 망치게 된다. 어쩌면 사람이 사는 일도 농사처럼 그렇게 정해지고 적당한 과정이 있는 것이 아닐까. 공부도 때가 있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고, 아이들에게도 입버릇처럼 되뇌었지만 이즈음에 와서야 비로소 나는 그 뜻을 새기게 되었다. 그만큼 삶을 보는 눈이 열렸다는 것일게다. 왜 좀더 일찍 이런 이치에 눈뜨지 못하였던가 후회가 되기도 한다.


    유년의 시절, 네 마지기 논에 의지하던 것에서 벗어나고자 아버지는 산 중턱 밭을 장만했다. 그 밭의 가운데는 산소가 2개 있었는데 자손의 발길이 끊어졌다. 그래도 자손이 성한 산소보다 더 잘 보살핌을 받았다. 아버지는 철 마다 벌초를 정성껏 했다. 그 덕이었는지 밭 농사는 그럭 잘 되었다. 작물을 심어 놓으면 작물뿐만 아니라 어디서 날와서 싹을 틔우는지 민들레, 망초, 엉겅퀴 등등 많은 잡초들도 덩달아 왕성하게 자랐다. 일요일이면 온 식구들이 들러 붙어 밭을 매고 밭 둑을 정리했다. 호미로 밭을 갈다가 나오는 돌은 모두 무덤가로 옮겨 졌고 일년이 지나자 무덤을 둘러 싼 돌담이 생겼다. 바짝 갈아서 좀더 심을 수 있지 않느냐는 물음에 아버지의 대답은 늘 같았다. "무덤은 안택인기라. 무덤을 잘 돌보아야 자손이 영화를 얻는게지"


    밭에는 주로 콩을 심었는데 심기전에 밭을 갈고 밑거름을 잘주고 심고 나서도 때에 맞추어 보살피지 않으면 금방 표시가 나는게 작물이다. 발육이 좋지 않기도 하고 코투리를 까보면 콩도 잘고 빛깔도 영 좋지 않다. 특히 밭고랑과 콩대 사이에 자라는 잡초를 잘 솎아 주어야 한다. 콩이 섭취해서 알차게 여물어야 할 땅의 영양분들을 잡초들이 나누어 먹자고 뿌리를 내리면 잡초보다 생명력이 약한 작물들은 금방 비실비실해 지고 마는 것이다. 작물은 사람의 정성을 먹고 자란다. 벼는 새벽바람에 실려오는 주인의 발자욱 소리로 자란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람의 정성이 필요하다. 조상으로부터 전해지고 전해진 우리의 농법은 이렇게 사람의 정성으로 기르는 것이었다. 같은 작물들끼리 자연상태로 교배시켜 우수한 품종을 얻는 것은 비교적 근세의 일이었다. 특히 벼에 대한 품종개량은 식량의 자급자족이라는 기치 아래 정부적 차원에서 좋은 품종들이 개발
    되었고 현 시점에서 우리는 잉여의 농산물을 처리하지 못해 고민을 하고 있으니 이런 것을 일러 상전벽해라고 하던가.


    미국처럼 넓은 땅덩이를 가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농업에도 대량 생산의 개념을 도입했다. 자연상태에서 우수한 형질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유전기술을 활용하여 실험실에서 의도된대로 식물의 유전자를 조작하게 되었고 이런 것들에는 으례 슈퍼(SUPER)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렇게 거두어진 먹거리들은 전 세계로 팔려 나갔다. 자연을 거스르는 행위는 결국 많은 부작용을 낳게 마련이다. 유전자를 조작한 이런 작물도 결국 인간에게 치명적인 해를 끼친다는 것이 머지않아 밝혀지고 그로 인한 재앙이 있을 것이다. 유전자조작작물(GMO) 업계에서 가장 강력한 영역을 가지고 있는 회사가 '몬산토'인데 그 회사의 처지가 요즈음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세계 최대의 화학기업이었던 '몬산토'는 1990년대 기존의 모든 잡초를 제거할 수 있는 강력한 제초제 '라운드업'을 출시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제초제에 견딜 수 있는 GMO 작물들을 개발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 '몬산토'는 세계 GMO 시장을 주도하며 미국에서 시장 점유율을 대두 90%, 옥수수 80%까지 끌어올렸다.


    문제는 자연의 세계에는 '공진'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어던 환경에 살다보면 그 환경에 적응을 하게 되는데 이 적응 과정은 당대에 이루어 질 수도 있지만 대개는 몇 대에 걸쳐 이루어 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 땅에 들어온지 얼마되지 않는 꽃매미들이 처음에는 은사시 나무만을 근거로 살았으나 최근 이들이 포도나무에 적응을 하게 된 것이다. 최근에 천안 일대의 포도 농가들이 이 매미들 때문에 적잖은 피해를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전 연구에서는 이 꽃매미의 알만 골라서 알을 까는 벌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환경에 맞추어지는 것이 '공진'이다. '몬산토'가 최근에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은 제초제에 내성을 가진 작물이 속속 등장하면서 몬산토의 GMO를 재배하는 농장들이 직접적인 타격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 화학 회사들은 더욱 독성이 강한 제초제로 자연에 대항을 하지만 새로운 제초제에 내성을 가진 잡초들 또한 계속 늘어나는 추세이다. 농부들은 다시 더 독한 제초제를 찾게되어 환경파괴와 토양오염은 점점 심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잿간이 있었다. 난방과 취사를 위해 태웠던 목재, 쌀겨 등은 재가 되어 가축이 배설한 것들과 농토에서 봅거나 베어낸 잡초들과 섞여 퇴비로 되 살아나 땅으로 돌아갔고 땅은 그로 인해 기름지고 풍요로웠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재생 에너지이고 자연의 순환적 흐름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삶을 기대고 살아온 것이다. 그렇게 사는 길은 다소 불편하다. 매일 재를 모아야 하고 잡초를 베어다 모아야 하고 가축의 배설물들을 날라야 한다. 게다가 퇴비가 만들어 지면서 내뿜는 메탄가스의 구릿한 내음과 같이 생활해야 한다. 농촌도 풍경이 많이 바뀌어 난방은 경유나 석유가 맡게 되어 재를 구할 길이 없어졌고, 가축은 사료를 먹고 자라서 배설물에 박테리아가 살기 힘들게 되었다. 잿간은 이제 추억속에서만 존재하게 되었다.


    밭에 나가면 아버지는 밭 둑의 풀을 베고 엄마는 밭고랑의 잡초를 뽑았다. 나는 아버지의 바지게에 가득 담긴 퇴비를 날라다 호박 심을 구덩이에 넣는 일을 맡았다. 아버지의 낫질에 밭둑은 말끔해졌다. 베어낸 잡초들도 그냥 버려지는게 아니라 퇴비로 다시 나기 위해 일정한 장소에 따로 모았다. 말끔한 밭둑에 덩그러니 남은 꽃 핀 엉겅퀴, 나리꽃 하나가 남았다. 엄마는 잔소리를 했다가 이내 "보기는 좋구만" 한 마디로 아버지의 미완성 작업을 인정했다. 이제는 그 밭이 있었던 곳에는 20층이 넘는 아파트가 들어 섰다. 그 새로운 풍경은  예전 풍경에 자꾸 덧칠을 해댄다. 이제는 꿈 마저도 재생이 힘들다. 이렇게 나를 변화시켜 놓은 도회가 싫다 하면서도 정작 떠나갈 용기는 없다.


    며칠 전에도 도회를 떠나는 꿈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다. 아내는 그도 좋겠다 하면서도 표정은 영 떨뜨름하다. 마지막으로 큰 딸이 오금을 박았다. "사람은 늙을 수록 병원 가까운 곳에서 살아야 한대". 그 말이  맞다 싶기도 하다. 그냥 팔자소관으로 돌리고 순순히 도회의 많은 풍경 중 하나가 되리라 자위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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