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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망초 이야기
    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2010. 6. 21. 11:45

    개망초 이야기


    회사 경비실 옆에 작은 살구나무가 한 그루 있다. 사람의 손에 개량된 나무가 아니고 회사 뒷편 산에서 옮겨다 심은 개살구 나무다. 살구는 따는 때를 잘 가늠해야 한다. 충분히 익지 않은 살구는 씨방 부근에 독이 있어서 오히려 해롭다. 주말을 보내고 출근해보니 가지마다 말끔하다. 아끼다가 남에게 좋은 일 시킨 셈이다. 개살구는 일반 살구와는 달리 맛이 훨씬 덜 하다. 그러나 약리작용은 훨씬 나아서 내심 욕심을 내었던 것이어서 아까운 마음이 요동친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날아간 기러기 인 것을…


    그렁했던 심화도 풀겸 화사 가장자리로 한 바퀴 빠르게 걸었다. 망초들이 흐드러졌다. 작년에 비해 망초의 영역은 급속히 확대되었다. 참 대단한 녀석들이다. 몇 년 전만 하여도 몇 포기 없었던 녀석들이 이제는 공장의 빈터를 빼곡히 뒤덮고 있다.


    망초, 개망초, 망초, 잔꽃풀 등으로 불리는 이 식물의 원산지는 북아메리카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삶을 시작한지는 100년쯤 된다. 이 식물이 망초(亡草)로 망할 망(亡) 字를 얻게 된 사연은 슬프다.


    100년전 이 땅에는 외세의 득달같은 야심과 흉년으로 사나워진 인심, 돌림병 등으로 나라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았다. 그런 때 배 곯지 않는다는 달콤한 유혹이 많은 사람들이 아메리카로 가는 이민선에 올랐다. 합성섬유같은 것이 없던 당시 마닐라 로프는 수요가 많았다. 마닐라 로프는 용설란이라 불리는 식물에서 얻어지는 섬유로 만들어 진다. 북미의 자본가들은 이 용설란을 대규모로 재배했고 인력에 의존하는 이런 농장들은 노예상인들과 협잡하여 후진국에서 이민이라는 미명으로 사람들을 모집했던 것이다. 그들의 이민생활은 처참했다. 김호선 감독이 만들고 장미희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애니깽 (Anniquin, 1996)"은 우리 민족의 수난사를 잘 조명해준다.


    이 배들이 오가면서 실려온 씨앗들이 있었다. 지금처럼 검역시스템이 없던 당시에는 이민선은 이국의 동식물, 곤충들이 이동하는 매개역활을 했다. 처음에 이 씨앗은 우리나라의 풍토에 적응하지 못해던 것으로 보인다.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토종식물에 밀려 숨을 죽이며 조용히 적응의 기간을 가졌을 것이다.


    땔감이 부족했던 터라 산은 헐벗었고 비가 조금만 내려도 곳곳은 무너졌다. 노비제도가 무너지면서 사람들은 여기저기 언덕을 깎고 산을 허물어 농토를 개간하기도 했다. 그런 곳은 외래 식물들이 토종의 텃세를 피해 싹을 틔우기에 제격이었다. 그런 곳에서 이민선을 타고 들어온 새로운 식물들이 싹을 틔워냈다. 그리고 마침내 하얀 꽃닢과 노란 꽃술을 가진 꽃을 이국의 하늘에 피워냈다. 그때가 1910년 무렵으로 대한제국이라는 이름으로 간신히 숨을 쉬던 조선이 마지막 숨을 놓았던 경술년(庚戌年)이었다. 나라가 망해버린 것이었다.


    사람들은 나라가 망할때 즈음 새로 이땅에 온 식물 망할 망(亡)을 붙여 망초라 불렀다. 어떤 사람들은 욕을 섞어 "개망초"라고 불렀다. 왜놈에 빗대어 "왜풀"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이 풀은 오히려 우리 민족의 끈질김과 닮아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척박함을 잘 버티고 자신을 키워가는 면에서 보자면 말이다. 요즈음 들판에 나가보면 개망초 천지다. 토종 식물들은 이 개망초의 등쌀에 자꾸 자신의 자리를 여의어 가고 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우리 민족도 대단하다는 것이다. 100년 겨우 지난 이 식물도 이제는 한약재로 쓰기도 하고 나물로 먹기도 하는 경지가 된 것이다. 망초가 이땅에 적응을 한 것인지 우리가 이 식물에 몸을 맞춘 것인지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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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행시/ 물안개]
    개망초, 물너울이 되다


    물길 너머 수만 리 서러운 이민선
    안타까워 실어 보낸 씨앗 몇 톨
    개간지 맨흙을 뚫고 숨어 삭힌 몇 해


    물난리도 많던 그 해 경술년 들판
    안팎에서 짐 지우듯 눌러온 망국(亡國)
    개살구 몽싯 맺는 때 이국 하늘에 샅 열다


    물러서고 되넘는 사람의 공간
    안 간다는 세월은 흘러서 100년
    개망초, 흰 포말처럼 너울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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