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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의 밭
    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2010. 6. 18. 10:07

    아버지의 밭 (삼행시와 수필 하나)


    물 냄새 골 넘어와 흐드러진 언덕
    안개가 훑어간 산 그림자 가생이
    개개비 휘젓는 하늘 얇게 저며지다


    물푸레 길게 누워 키 늘린 하오(下午)의 끝
    안간힘 버텨보지만 그럭 가고만 하루
    개꽃은 밭둑에 서서 귀를 열었다


    물지게 걸음마다 넌출대던 아버지
    안쓰런 풍경은 추상화로 남아
    개똥밭 엉겅퀴로 피어 흔들리다


    물너울 넘실대는 꿈이라도 꾸는지
    안구는 눈꺼풀 속 건들건들 걷는다
    개 건너  쪽 밭 가운데 그가 있나 보다

     

     

    *개개비:휘파람샛과의 작은 새이다. 늦은 봄부터 여름까지 주로 갈대밭 속에서 "개개개"하는 소리로 시끄럽게 운다. 소리는 시끄럽지만 막상 보면 아주 작아서 몸 전체가 소리통 같다. 하긴 덩치가 작으니 소리라도 커야겠지.
    **개-꽃:되어먹지 못하는 말들의 앞에는 꼭 '개'가 붙는다. 사람에게 충성을 다 바친 개에게는 다소 미안한 일이다. 개꿈, 개나리, 개비름, 개비자나무... 등등. 암튼 비슷하지만 자세히 알고보면 아닌것에는 모두 '개'를 앞자리에 붙여쓴다. 개꽃도 마찬가지다. 진달래와 닮기는 했지만 먹지 못하는 철쭉을 참꽃에 대하여 일컫는 말이다. 게다가 '개'가 붙는 말은 거의 비속어이다. '개'가 붙는 내가 알고 있는 욕만해도 30개 쯤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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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밭은 아버지가 결혼 후 장만한 가장 큰 재산이었다. 가치로만 따진다면 논이 가장 높은 것이었지만 네마지기 논은 아버지가 큰 집에서 보낸 노동의 유년에 대한 보상이었다. 그러나 밭은 한푼 두푼 재산을 모아 장만한 것이었고 쌀과 보리 같은 주식 의존에서 소채의 수확과 같은 부식 생산까지 영역을 넓힌 큰 진전이기도 했다. 밭은 주전봉으로 가는 산 중턱에 있었다. 주전봉에서 아래로 내리며 걸러진 물들이 소리를 내며 사철 흐를 정도로 수량이 풍부한 계곡도 가까이 있어서 농사에는 그저 그만이었다. 밭의 가운데는 마치 사막을 건너는 낙타의 등처럼 산소 두기가 나란히 있었다. 아마 부부묘였을 것이지만 세월이 자손을 지운 것인지, 조상을 지운것인지 찾는 이도 없었다. 이웃 어른들은 유명한 판수를 불러다가 굿을 한바탕 벌린 후 파버리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못할 짓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 산소는 항상 깨끗했다. 아버지는 밭둑의 잡초를 베어낼때 이 산소도 같이 다듬었다.


    밭을 지나서도 작은 마을이 하나 있었다. 계곡 속에도 몇 집이 있었고 이들은 모두 우리 밭을 따라 나 있는 길을 걸어야 했다. 길은 밭을 따라 빙 둘러 이어졌다. 사람들은 밭을 가로질러 다니곤 했다. 물이 낮고 빠른 땅을 찾아 물길을 내듯 그렇게 사람들은 밭에 발자국의 길을 만들곤 했다. 그 길은 한 쌍의 무덤을 갈라 놓으며 가운대로 이어졌다. 가시나무를 잘라다 놓아보기도 하고 말뚝을 박고 가로대를 대어 보아도 통하지 않자 마침내 포기를 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길과 산소로 인해 손해본 농산물이 어림잡아도 밭 전체 소출의 5%는 됨직하다. 결국 아버지는 "부처도 길내는 공덕이 크다고 했다." 라는 말로 위안을 삼고 말았다.


    밭둑 아래 가파른 길을 내려가면 계곡이 뱉어낸 차가운 물들이 몸을 덥혀가는 작은 소류지가 있었고 둘레는 갈대가 무성했다. 여름이면 갈대밭에서는 "개개개~ 개개개~"하며 개개비가 울었다. 밭에는 그늘이라곤 없었지만 밭과 길 하나를 두고 있는 배밭에 키 큰 물푸레나무가 저녁무렵에 잠깐 밭으로 몸을 누이곤 했다. 손바닥만 한 그 그늘도 한 여름 땡볕살에는 고마웠다. 그 가파른 길을 해가 거의 진이 빠져 불어터진 우동사리가 되었을때 쯤 아버지는 물지게로 물을 져 날랐다. 아버지가 밭둑에서 숨을 고르는 동안 나는 바가지로 물을 퍼 날라 고랑의 물 흔적에 이어 붙였다. 사실 빈몸으로도 가팔라서 힘들었던 길을 아버지는 두 어깨로 고달픔을 메웠을 것이다.


    항상 제초를 하여 깨끗한 밭둑이었지만 어머니의 핀잔에도 남겨둔 엉겅퀴와 나리, 찔레 나무 한그루와 산철쭉 한 무더기가 있어서 삭막하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대체로 감성이 풍부했던 것 같다. 바쁜 낫 질 가운데서도 야생화들은 자주 아버지의 낫을 피하곤 했다.


    그의 병실에는 여섯 노인이 같이 있다. 그 중에는 어린 시절 "아재"라 부르던 이도 있다. 같은 물을 서로의 논에 댔다. 마치 한 솥밥을 먹는 사이처럼 한 개울의 물을 나누어 대서 농사를 지었다. 그도 세월에 몸과 정신을 갉히어서 군데군데 낡은 채로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남겼던 추억의 공간이 비어 버린 두 사람을 볼 때 마다 가슴이 먹먹하다. 가슴에서 알지 못 할 설움같은 것이 뭉클거리는 것이다.


    벽걸이 텔레비젼에 눈을 박고 있는 그가 잠이 들었다. 물끄러미 그의 수분 빠진 얼굴을 본다. 안구가 흔들린다. 그 흔들림은 이내 눈꺼풀에 전달되어 작은 파문이 인다. 출렁거리는 물지게가 그를 자꾸 언덕 아래로 끌어내리는 그림 하나가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그는 아마 그의 밭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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