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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우비 오던 날
    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2010. 8. 9. 15:41

    여우비 오던 날

     

    주말에 본가에 다녀왔다. 부친과 모친, 장모님... 이렇게 세 어른이 모두 노환에 시달리고 있다. 멀리 있다는 핑계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왔지만 이렇게 한 번 다녀오면 그래도 위안이 된다. 앞으로만 가게되어 있는 삶의 여정에 종점이 가깝다는 것은 탈색된 풍경화 속으로 들어가 스스로가 하나의 피사체가 되는 것인가 싶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피사체가 되었을 때 담담하게 맏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다지는 것이리라.


    잘 핀 능소화 무더기의 풍경화 사진이 크게 걸린 입원실 입구에서 심호흡을 했다. 늘 그렇지만 그를 보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에 대한 준비운동 같은 것이다. 그에게도 저 꽃처럼 싱싱했던 적이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씩 밀가루 포대를 지고 와서 희망에 들뜨게 하던 적도 있었고, 얇은 스테인레스 판을 다듬어 책받침을 만들어 주어 내 기를 살려준 때도 있었다. 고무 새총으로 잡은 참새 한 마리를 다듬어 메추리 알 2개만 하던 고깃덩이를 엊지로 억여주던 때도 있었다. 그런 그가 이제는 스스로 무채색의 공간으로 들어 갔다. 한 달 전보다 그의 팔에서도 다리에서도 필요없는 수분이 모두 빠져버려 부피가 줄었다. 기억속의 부피를 가늠하다가 낯설은 부피에 또 눈물이 돌았다. 손을 만져도 이전에 느껴지던 작은 떨림은 이제 없다. 그저 날숨과 들숨이 만들어낸 낮은 온도만 감지되었다. "아버지~". 짧은 이 한마디에 그의 눈이 촛점을 맞추려고 동공이 움직이다가 이내 스러져 간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내가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다.


    험난했고 굴곡졌던 그의 삶이 반추되는지 감은 눈 꺼풀 아래로 눈동자의 움직임이 빠르다. 그 궤적을 훑어보지만 그가 무었을 필요로 하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입원 할 정도는 아니지만 모친도 예전 같지 않다. 이제는 매끼니마다 한 웅큼 씩의 약으로 산다. 그녀도 상처가 많았다. 위로 언니, 오빠 둘이 소용돌이치는 현대사의 희생물이 되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 두 오빠의 전사 통지를 받고 쓰러지는 엄마에게서 큰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마지막 남은 유일한 아들인 막내 오빠는 징집을 면하려 그녀가 보는 앞에서 작두로 손가락을 잘랐다. 그녀의 아버지는 충격으로 도박에 빠져 가산을 탕진했다. 어린 시절 그녀는 그 어려움을 겪으며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그녀는 수전노라 할 만큼 돈을 쓰지 않았다. 잠시도 몸을 쉬는 법이 없었다. 그것은 그녀 스스로를 치유하는 방법이였으리라. 그녀의 잠시도 쉬지 않는 에너지는 며느리들을 불편하게 하는 요소다. 본가에 있는 동안 아내는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잠시 쉴라치면 이내 부엌 쪽에서, 아니면 마당에서 부스럭 대는 시어미 탓에 금방 자리를 털고 일어나냐 하는 것이다. 젊은 시절부터 그녀에게 있었던 편두통은 "뇌신"이라는 두통약과 술을 가까이 하게 했고 급기야 간에 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녀도 이제는 이울어가는 모양이다. 칼칼하던 음성에는 이제 힘이 빠지고 여전히 바삐 움직이지만 많이 둔해졌다. 그녀에게 가장 큰 일은 오남매 매를 곯리지 않는 것이었으므로 배불리 먹지 못한 우리의 유년이 그녀에게는 한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그녀에게 가장 즐거운 일은 그녀 앞에서 아주 맛있게 밥을 먹어주는 일이다. 자연 그녀와 밥상을 같이 하게 되면 밥을 비우는 속도가 빨라진다. 자주 전화를 하지 않는다는 불만도 밥 한그릇을 맛있게 비워내면서 눈 녹듯 사그라 졌다.


    내 둥지로 돌아가마 일어서 나오는데 어느 틈에 얼려놓은 PET 병 2개가 까만 비닐 봉지에 쌓여져 있다. 당신이 직접 잡아서 만든 제첩국물이다. 집에 두어개 있음에도 마트에 들러 다시 아이스박스를 구입했다. 아침이면 괘종 시계 울림처럼 들리던 재첩국 장수와 아침상에 오르던 한 사발의 제첩국. 그녀에게 나는 아직 교복 후크를 채우고 대문을 나서던 고등학생인 모양이다.


    본가를 오가는 동안 여우비가 자주 내렸다. 윈도우 와이프가 지탱을 못 할 정도로 폭우가 내렸지만 하늘은 맑았다. 대충 몇 방울 내리다가 마는 여우비 치고는 내리는 양이 엄청났다. 마른 하늘에 벼락처럼 에상하지 못하다가 맞이하는 이런 류의 비는 최근에 우리 삶을 지탱하고 있는 환경에 변화가 있다는 뜻일까? "여우비"의 사전적 의미는 볕이 나 있는 날 잠깐 내리다가 그치는 비를 의미한다. 나름대로 조어를 많이 쓰는 북한에서는 "햇비"라고 한다. 예전에는 여우비가 오는 날을 '여우가 시집 가는 날', '호랑이가 장가 가는 날'이라고 했다. '여우'라는 동물은 변덕이 심하고 영리해서 옛 이야기에 많이 등장한다. 아마도 맑은 날 내리는 비를 하늘의 변덕이라 여겼을 것이고 변덕에는 여우란 놈이 제격이라 붙은 이름일 것이다.


    이것으로부터 파생된 전설이 있다. 여우가 어느날 외길에서 호랑이를 만났다. 살기 위해 순간적으로 짜낸 꾀로 호랑이를 꾀었다. "나는 너 보다 힘이 세다". 호랑이는 기가 찼다. "그것을 증명해 보일테니 나를 따라 와라". 믿을 수 없었지만 호랑이는 잠깐 놀아준다는 심정으로 여우의 뒤를 따랐다. 근데 모든 짐승들이 앞서가는 여우를 무서워 하며 산지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이 아닌가. 이쯤되니 호랑이도 헷갈렸다. 사실 뭇 짐승들은 여우의 뒤를 따라 어슬렁 걷고 있는 호랑이를 보고 놀라서 달아난 것이었다. 용기를 얻은 여우는 호랑이를 꾀어 결혼을 하게 되었다. 여우의 입장에서 호랑이가 옆에 있으니 세상에 무서울게 없었다. 이런 경우를 일러 호가호위(狐假虎威)라고 하는 것이다. 요즈음 몇 몇 정치인들이 그 짝이다. 소위 말하는 대통령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암튼 여우와 호랑이가 시집 장가를 가는 날, 그동안 여우를 짝사랑한 구름이 있었다. 그 날 구름이 흘리는 눈물이 여우비란다. 할머니로부터 손자에게로 전해지던 그런 우화의 한 토막이다.


    교활하거나 꾀보에게 붙이는 대명사가 '여우'다. 남자에게 애교를 잘 부리고 앙큼한 여자에게도 이 말을 붙인다. 여우같은 여자가 여럿이 있다면 그 가운데 으뜸에게는 '불여우'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 말에는 상대를 비하하는 뜻도 조금 있다. 2차 대전시 독일의 유명한 장군 "에르빈 롬벨" 에게 '사막의 여우'라고 불렀던 것은 적이었던 연합군이었다. 그러나 비하의 뜻이 조금은 섞여 있음에도 '여우'같은 여자는 남자의 로망이다. 그 말은 남자가 바라는 여자의 이상형은 '여우'같이 애교도 잘 부리고 때에 맞게 적당히 앙탈도 부리며 남자를 녹여주는 여자를 바라는 것이다.


    사주에 여복이 많다고 했지만 내 주변에 '여우'같은 여자는 없었다. 친할머니, 외할머니 모두 한 기갈했던 여인들이고 모친은 악착같았다. 아내도 애교는 그다지 없는 편이고 딸이 셋이나 되지만 애교 비슷한 것이라도 가진 아이는 없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의 애정결핍증은 참으로 뿌리가 깊은 것이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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