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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필- 내가 만드는 명의(名醫) /김대근
    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2010. 10. 7. 17:07

    내가 만드는 명의(名醫)

     

                                                         김대근

     

    시간의 눈금은 분명 가을에 머물러 있지만 체감하는 계절에는 어쩐일인지 가을이 사라지고 겨울이 냉큼 코앞에 서있다. 날씨가 이러니 올해는 단풍이 이쁠것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나뭇잎이 아름답게 단풍으로 물드는 것은 급작스런 날씨 변동에 골병이 들어서라는 결론이 나온다.

     

    식물도 골병이 드는 이런 환절기에 사람인들 견디어낼 재간이 없다. 여기저기 감기로 쿨럭 대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회사에서 단체로 독감 예방 접종을 했다. 접종을 하고도 올 겨울 독감에 걸리면 A/S는 누가 책임지는가 하고 농을 던졌더니 간호사는 생글거리는데 따라온 의사는 난감한 표정이다. 농담을 받아들이는 그릇의 크기가 다른 모양이다. 하기는 권위로 먹고사는 의사라는 직업이 사람의 폭을 저리도 좁혀 놓았나 싶다.

     

    올해 감기는 막내가 스타트를 끊었다. 야구에서 타자가 순번대로 돌듯 차례차례 감기를 앓게 되는 것이 감기의 특성이다. 아마도 집이 너무 좁은 탓인가 싶기도 하다. 다섯 식구가 25평 빌라에 부대끼며 사니 자연 접촉횟수도 많고 공유하는 공간적 거리도 가깝다. 바이러스 전파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다. 치료를 위해 찾는 병원도 아내와 아이들이 잘 가는 곳과 내가 가는 곳이 다르다. 효과가 다르니 자연히 찾는 병원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아내와 아이들이 잘 가는 곳의 의사는 플라시보 효과를 적절하게 사용한다. 배가 아파서 가건 감기로 가건 가리지 않고 1밀리쯤 되는 투명한 약을 물병에 넣어서 녹인 다음 아주 몸에 좋은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나오지 않고 유럽에서 구해온 것이라고 하며 주는 것이다. 조금씩 마시면 우리나라 보약처럼 작용한다는 설명과 함께 말이다.

     

    의사들이 일군의 위장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환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 다음 한 그룹에게는‘새로 개발된 특별한 약'이라며 영양제를 주었고 다른 한 그룹에는 정상적인 위장약을 처방했다. 얼마 후 놀라운 결과를 나타냈다. 영양제를 처방한 집단의 위장병 증상이 눈에 띄게 나아진 것이다. 의학계에서는 이 현상을 '플라시보(Placebo, 가짜 약) 효과'라고 한다. 사실 어떤 약을 가지고 실험해도 30%정도의 환자가 이런 것에 반응한다고 한다. 똑같은 영양제 하나로 고혈압이나 신경통, 심지어는 암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히 치료목적으로 이런 약을 처방하는 의사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효과가 있어서 때문인지 아내와 딸아이들은 그 병원의 처방이 잘 먹혀드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그 병원 처방이 영 들어 먹지 않는다는데 있다. 우리 속담에 “모르는 게 약이요, 아는 게 병”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심리학을 전공하다 보니 자연 플라시보 효과에 대한 공부를 했던 게 자연 이 효과가 먹히지 않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내가 가는 병원은 원장이 혼자 운영하는 작은 의원이다. 10년째 한 곳만 가는데 5 년 전 부터는 혈압과 당뇨에 대한 관리도 하고 있는 중이다. 한 달에 두 번은 정해놓고 간다. 감기나 사소한 것도 들러서 진료와 처방을 받는데 잘 듣는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의사와는 정서적으로 교감이 잘 된다. 서로의 취미생활에 대한 것부터 더러는 사회문제에 대한 대화도 자주 하는 편이다. 통하다보니 진료시간도 길어지는 편이어서 환자가 많을 때는 미안할 때도 있다. 10년 동안이나 마주한 얼굴에서 요즈음은 자주 주름살을 발견해 내곤 세월의 빠름을 느끼곤 한다. 그의 눈에도 켜켜이 쌓여가는 내 주름살이 보여 질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역시 아날로그 세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정서적으로 통하는 사람들이 편하다. 어쩌면 그것이 똑같은 처방을 두고 효력이 있네, 없네를 따지는 것일 것이다.

     

    며칠 전에는 나가는 활터에 사우(射友) 하나가 복통을 호소하기에 아주 잘 본다고 내가 나가는 의원을 소개해 주었더니 며칠 뒤 영 시원찮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큰 병원에 가서 치료받고 나았다는 것이다. 장염이었단다. 의원에 갔더니 그저 두 어 끼 굶으라고 하더란다. 조금 참으면 될 것을 두 끼 굶다가 큰 병원에 갔더니 같은 말을 하는데도 신기하게 주사한방으로 나았다는 것이다. 이미 의원의 처방대로 두 끼 굶었던 효과를 큰 병원에서 본 것이리라. 그러면서 덧붙이는 이야기는 역시 큰 병원이 낫다는 것이다.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사람은 ‘보이는 것만 본다’라고 심리학에서 말한다. 누구를 막론하고 어떤 일에 마주하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의 필터를 통해 본다는 것이다. 성철스님이 남긴 유명한 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는 결국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라는 말씀이다. 자신의 선입견으로 세상을 보지 말라는 것이다. 똑같은 사물도 보는 사람에 다라 달라지는 것은 바로 누구나 가지고 있는 선입견의 장난이다. 같은 의사라도 누구는 명의로, 누구는 그저 그렇게 보는 것도 선입견 필터로 걸러진 결과물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다 나쁘다고는 볼 수 없다. 검은 고양이던 하얀 고양이던 쥐만 잘 잡으면 그뿐 아닌가.

     

    어제는 막내가 올해 처음으로 감기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다녀왔다. 다음 차례는 누구가 될까 아내와 짐작을 놓아본다. 다음은 둘째 차례가 될 것이다. 그동안 패턴으로 보아 그렇다는 것이다. 아이들 셋을 키워내다 보니 반풍수가 되었다. 막내가 유럽에서 구해왔다는 서양 보약을 들이키는 모습을 보다가 “그건 플라시보 효과라는 건데 말이야… "라는 말이 목젖을 간질였지만 꿀꺽 삼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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