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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7호, 봉선홍경사사적갈비 지금의 천안의 성환지역은 예로 부터 교통의 요충지중의 하나였다. 여시서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천안 삼거리가 있어서 영남이나 호남으로 오가는 객들이 갈라져 가거나 합쳐저 한성을 거치거나 여기서 가까운 둔포에서 배를 타고 서울로 가기도 했던 곳이다. ..
동굴법당 법광사와 마애불 지난 일요일에는 지인의 자녀가 결혼을 했다. 일요일에 결혼식이 있으면 꼼짝달싹을 하지 못하고 지낼수밖에 없다. 한시간~ 두시간의 결혼식 하객으로 참석하기 위해서 종일을 허비해야만 하는 것인데 그래서 일부에서는 금요일 밤에 결혼식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합..
꽃눈 내리는 완주 화암사 우화루(雨花樓) 텔레비젼의 화면에서는 밝은 색의 옷을 입은 기상캐스터가 충청이남과 서해안의 눈소식을 전하고 있다. 겨울 여행길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아 조금 찔끔거려지긴 하지만 일단은 나서고 보는게 주말여행의 묘미이기도 하다. 지방도로변에 비닐천막..
성주풀이의 본향, 안동 제비원 미륵불 「에라만수 에라 대신이야 대활연(大豁然)으로 설설이 나리소서 성주야 성주로구나 성주 근본이 어디메냐 경상도 안동땅의 제비원 솔씨받어 공동산에 던졌더니마는 그 솔이 점점 자라나서 황장군(黃腸君)이 되었구나 조리기둥이 되었구나 낙락장송이 쩍 벌어졌..
백제 의자왕의 왕자 융의 전설, 고왕암 누누히 주장하는 바이지만 기록으로 남겨진 역사는 과연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것일까? 역사는 늘 승자에 의해 기록되어 지고 패자가 남긴 기록은 승자에 의해 영원히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남아있는 역사랑 늘 승자의 입장에서 기록된 것이고 승자의 기록..
명성황후가 다시 세운 계룡산 중악단 계룡산을 등에 업고 있는 신원사 경내에는 조선시대 나라에서 산신제를 지내던 중악단이 있다. 계룡산은 신리시대때부터 신라 5악(嶽)의 하나로 일컬어 지면서 계룡산사(鷄龍山祠)에서 소사(小祀)를 받들었으나 19세기말 소사와 중사(中祀)의 명칭이 사라지면서 ..
계룡산의 절다운 절, 신원사 절다운 절이라는 다소 어폐가 있는 말을 글제목으로 뽑았다. 계룡산에서 이름 날리는 동학사와 갑사는 규모가 크고 문화재도 많지만 반대급부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적지않는 부분에서 고즈넉함과 탈속(脫俗)의 정도가 옅어졌다는 것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신원사..
효심의 도량, 용주사(龍珠寺) 수원은 조선 정조가 꿈꾸었던 새로운 도시였다. 그러나 이 새로운 도시에의 꿈은 기득권 세력들의 단단한 결집력을 뚫지 못헤 결국 꿈으로 끝나고 말았다. 경기도 수원은 그런 곳이다. 당시 실학파의 두뇌들을 총 결집해서 수원의 화성을 축조하고 서울을 옮기려는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