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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성황후가 다시 세운 계룡산 중악단
    여행기 2006. 11. 27. 15:28

     

    명성황후가 다시 세운 계룡산 중악단

     

     

    계룡산을 등에 업고 있는 신원사 경내에는 조선시대 나라에서 산신제를 지내던
    중악단이 있다. 계룡산은 신리시대때부터 신라 5악(嶽)의 하나로 일컬어 지면서
    계룡산사(鷄龍山祠)에서 소사(小祀)를 받들었으나 19세기말 소사와 중사(中祀)의
    명칭이 사라지면서 계룡산사(鷄龍山祠)가 계룡단(鷄龍壇)으로 바뀌었다.


    그후 계룡단은 고종 때 묘향산 (상악)·지리산(하악)과 함께 삼악(三嶽)의 하나로서
    중악단(中嶽壇)으로 개칭됐다.
    충남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가 1999년 3월2일자로 보물 제1293호로 그 가치가
    격상된 중악단의 원래 위치는 신원사 대웅전 뒤였던 것으로 최근 고증됐다.

     

     

    중악단 담장 옆에도 가을의 단풍나무, 은행나무들이 늘어서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사실 같은 자리에 있는 같은 종의 단풍나무도 단풍의 색이 다르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노릇이다.

     

    하긴 같은 가지에서도 단풍닢의 색이 달라지기는 한다.

    자연의 오묘함.... 그 오묘함은 분명 아날로그로 진행된다. "딱 여기까지~" 같이

    정확한 구획이 없는 것이 더 마음에 든다.

     

     

     

    중악단으로 들어가는 대문에 붙은 주련...

     

    3일간 마음을 닦으면 영원한 보배가 될것이요...

     

     

     

    백년동안 재물을 모아본들 하루아침에 먼지가 된다...

     

    물질적인 것의 허망함을 잘 알려주는 글귀이다. 그러나 우리 삶이란게 늘 녹녹치

    않는게 탈이라면 탈~~

     

     

     

    중악단을 앞에서 보면 큰 대갓집 같은 느낌이다. 솟을 대문이 있고 좌우로 방이 있으며

    중문이 있는 행세깨나 하는 대갓집에 드는 느낌을 준다.

     

     

     

    계룡산신제는 고대에는 무(巫)의 의례에 의해 치루어 졌을 것으로 생각되어 지며
    신라와 고려시대에는 무와 유교 의례가 혼합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는 완전한 유교식 의례로 치러졌는데 나라에서 축문과 향(香)을 하사받아서
    공주향교에서 시행했으나 효종 2년(1651년)에 폐지됐다.


    200년 넘게 폐지되었던 중악단을 조선 말 고종 16년(1879년)에 명성황후가 궁궐의
    양식으로 재건하여 불교식으로 계룡산신제를 봉행하도록 했다가 일제의 의하여
    다시 사라졌다가 1998년부터 유교식,불교식,무교식의 세가지 방식으로 산신제를
    지내고 있다.


    산신제에는 역시 막걸리가 최고의 제주인듯 중악단 마당에 들어서면 막걸리 냄새가
    물씬 풍기고 제단 밑에는 막걸리를 올리지 말라는 안내판까지 있을 정도다.

     

     

     

    궁궐같은 건물에만 올릴수 있는 여러가지 동물들의 형상을 여기서도 볼 수 있다.

    일반 여염집의 건물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것들인데 명성황후가 중악단을 새로 세우면서

    궁궐의 양식에 따라 지으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담장머머로 보이는 잘 익은 단풍나무......

     

     

     

    제사를 지낼때 마다 중악단 마당의 이곳 저곳에 막걸리가 뿌려진 탓인지 막걸리 냄새가

    많이 났다. 그 냄새에 취해서 일까? 겨울이 코 앞에 왔는데도 아직 싱싱하게 꽃을 피우고

    벌들을 유혹하는 나무~

     

    저 꽃나무는 이름을 모르겠다. 고수들 많은 카페에 도움을 청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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