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풀이의 본향, 안동 제비원 미륵불
「에라만수 에라 대신이야 대활연(大豁然)으로 설설이 나리소서
성주야 성주로구나 성주 근본이 어디메냐
경상도 안동땅의 제비원 솔씨받어
공동산에 던졌더니마는 그 솔이 점점 자라나서
황장군(黃腸君)이 되었구나 조리기둥이 되었구나
낙락장송이 쩍 벌어졌네 대활연(大豁然)으로 설설이 나리소서」
위의 가사는 우리 무가의 대명사인 성주풀이의 도입부분이다. 성주의 근본이 안동땅
제비원의 불상임을 알려주는 것이니 예로부터 영험함의 대명사로 꼽힌듯 하다.
안동에서 영주를 향해 5번 국도를 타고 5킬로쯤 가면 언덕길이 나오고 그 언덕길을 넘자
오른쪽 길가에 연미사(燕尾寺)라는 절이 있고 바위위에 우뚝 서있는 불상을 볼 수 있다.
이 불상이 보물 제 115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천동석불상인데 속칭인 '제비원미륵불"로
더 많이 불리워 진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여행객의 편의 제공을 위한 시설인 연비원불사(燕飛院佛寺)가 있어
사람들이 연미사 또는 제비원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고려시대의 마애불입상으로 높이가 12미터에 이르는데 큰 자연석 절벽을 이용하여 몸체를
바위에 선각(線刻)으로 새기고 머릿부분은 다른 돌을 이용하여 조성해 얹은 형태다.
지금은 머리 뒷부분은 파손되고 앞부분만 온전하게 남아있다. 이마에는 백호가 양각되고
목부분에는 삼도가 뚜렸하며 목걸이를 강조해 나타냈다.
몸체부분은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하여 선각으로 표현을 했는데 불상의 얼굴이나 옷주름
등으로 미루어 10~11세기 무렵에 조성된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또한 수인(수인)은
아미타 부처님의 수인을 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륵불이라 믿고 있다.
이 불상에는 몇개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 오는데 이 절이 지어진 전설은 다음과 같다.
연(연)이라는 처녀가 있었는데 이웃마을의 인색한 김씨집 아들이 연이를 사모하다가
비명에 죽어 저승으로 가게 되었다. 염라대왕은 김씨총각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죄가 많아서 다음생에 소로 태어날 것인데 건너마을의 연이는 선행의 창고가
그득하니 좀 꾸어다 쓰면 살아 돌아가게 해주겠다"
저승에서 살아 돌아온 총각은 연이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자신의 재물을 나누어
연이에게 주었는데 갑자기 재물이 생긴 연이는 부처님을 위해 쓰기로 하고 법당을
짓기로 했다.
5년의 긴 시간이 걸려 법당을 지었는데 마지막날 와공(瓦工)이 그만 발을 헛디뎌서
떨어져 죽었고 그의 혼은 제비가 되어 날아갔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절을 제비사,
또는 연미사라 부르게 되었고 그 일대를 제비원 또는 연미원이라 부르게 되었다.
연이는 서른 여덟 살 되던 해에 죽었는데 그날 저녁 천지가 진동하는 굉음이 나더니
큰 바위가 두 쪽으로 갈라지면서 서불이 나타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공덕을 많이 쌓은
연이가 부처로 태어났으므로 이 부처를 미륵불로 알고 치성을 드린다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무가(巫家)에서도 영험을 받는 근본으로 꼽게 되었다는 것이다.
두번째 전해지는 전설은 명나라의 제독 이여송과 관련된 것인데 임진왜란을 맞아서
원군의 수장으로 조선에 들어온 이여송은 전쟁이 끝나자 조선의 방방곡곡을 찾아 다니며
훌륭한 인물이 날만한 명당자리마다 혈(穴)을 끊었다고 한다. 마침 이여송이 말을 타고
제비원 앞을 지나는데 말이 우뚝 서서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 것이였다.
이상하게 여긴 이여송이 주위를 둘러보니 큰 석불상이 우뚝 서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말이 가지 않는 이유가 불상에 있다고 생각하고 차고 있던 칼을 빼서 미륵불의 목을 쳐서
떨어뜨렸다. 그때 불상의 목에서 선혈이 낭자해 이여송은 깜짝 놀라 바삐 돌아갔다고 한다.
미륵불의 목부분에는 아직까지 가슴으로 흘러내린 핏자국이 있고 왼쪽 어깨에는 말발굽의
자국이 있다고 한다. 당시에 떨어진 목이 땅바닥에 뒹굴고 있었는데 지나던 스님이 와서
목을 제자리에 횟가루로 붙였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 한가지는 석수쟁이 형제가 살았는데 당대 최고의 석수가 되는게 꿈이였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하니 당대에 제일가는 조각가가 둘이 될 수 없는 노릇이니 내기를
하여 지는 쪽이 죽기로 했다고 한다. 내기는 미륵을 만드는 것이였는데 일정한 날을
정해두고 서로 조각에 들어갔는데 동생은 죽자 사자 일을 하는데 형은 빈둥 빈둥대며 도통
일할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약속한 날이 되었으나 동생은 미륵의 머리부분을 완성하지 못했고 형은 미륵의 머리만
조각하여 동생이 만든 몸체위에 붙여 훌륭한 불상을 완성했다. 동생은 내기에 졌으므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동생의 미완성 머리 조각은 개천에 굴러다닌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