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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굴법당 법광사와 마애불
    여행기 2006. 12. 7. 17:21

     

    동굴법당 법광사와 마애불

     

     

    지난 일요일에는 지인의 자녀가 결혼을 했다. 일요일에 결혼식이 있으면 꼼짝달싹을

    하지 못하고 지낼수밖에 없다. 한시간~ 두시간의 결혼식 하객으로 참석하기 위해서

    종일을 허비해야만 하는 것인데 그래서 일부에서는 금요일 밤에 결혼식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합리적인 생각이다.

     

    요즈음의 주말은 금요일이기 때문인데 그것도 모두 주5일 근무로 인한 새로운 풍속도다.

     

    그래도 다행히 12시 정각이라 집에 돌아오니 2시 정도다. 그냥 보내기엔 너무 아깝고

    오랫만에 보물 407호인 삼태리마애불이 보고 싶었다.

     

    사춘기인지 도통 움직이기 싫어하는 막내에게 신선한 공기도 씌어줄겸해서 옆지기와

    미리 내통하였다. 막내가 종합장사러 가야 된다기에 시내에서 가자고 하고서는 바로

    차를 몰아 태화산으로 날랐다.

     

    "아빠! 이건 납치야! 납치라구!"

     

     

     

    태화산은 아산과 천안의 경계부분에서 천안쪽으로 있다. 그곳에는 태화산자연휴양림이

    있는데 이 휴양림의 끝부분에 법광사라는 절과 보물 407호인 삼태리마애불이 있다.

     

    법광사는 동굴법당으로 유명하다. 동굴법당은 그다지 흔하지 않은데 이곳의 동굴법당은

    그 길이도 제법 길뿐 아니라 아기자기해서 꽤나 마음에 드는 곳이기도 하다.

     

     

     

    고드름의 길이는 겨울의 길이와 비례할 것이다. 지금은 이런 곳에 와서야 고드름을

    볼 수 있지만 어릴때는 집들이 대부분 초가여서 겨울이면 참으로 흔했다.

     

    동네 큰 마당에서 겨울놀이의 최고봉인 자치기,비석치기등을 하다가 목이 마르면

    가가운 아무집이나 처마에 늘어진 고드름을 뚝~ 따서 입에 넣고 부수는 그 맛의

    통쾌함을 요즘 아이들이 알 수 있을까?

     

     

     

    동굴을 지키는 수문장들이다. 머리 한가운데 뿔이 있는 데다가 손에 방망이를 든것으로

    보아 필경 도깨비임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대부분의 절들이 사천왕이나 금강역사등을

    배치해 놓은데 이곳에서는 보기에도 친근해 보이는 도깨비들을 놓았다.

     

    오히려 정감이 가고 친근해 보인다.

     

     

     

     

    동굴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소망이 타고 있다. 대부분 자식의 성적이 오르기를,

    또는 가족중 누군가의 치병을 소원하고 있다.

     

    옆지기도 초 2개를 무인 판매대에서 구입했다. 막내가 우리초도 다른 사람들 초처럼

    소원을 써야하지 않느냐고 한다.

     

    "굳이 안써도 부처님은 다 아셔."

     

    고개를 끄덕이기는 하지만 100% 수긍하는 표정은 아니다.

     

     

     

    여늬 절에도 산신각이 있는데 이곳에도 석가모니 부처님이 새겨진 바위에서 1미터쯤

    뒤로 쏙 들어간 바위에 산신과 호랑이를 새겼다. 보통의 절들도 대웅전에서 뒤쪽으로

    산신각 등을 짓게 마련인데 여기서는 자연이 그렇게 조화를 이룬 셈이다.

     

    산신각이나 칠성각등은 사실 불교와는 관련이 없다. 그러나 불교가 외래종교로써 이땅에

    들어오면서 우리민족의 토속신앙이였던 단군신앙, 산신신앙, 칠성신앙등을 버리기보다는

    수용하여 온 결과이다.

     

    아직도 우리의 할머니들은 절에 가서도 산신각이나 칠성각에 들리는 것을 빼놓지 않는다.

     

     

     

    이 동굴은 높이가 다른 또 몇개의 동굴들이 서로 연결된 형태인데 제일 높은 곳에 의외로

    평평한 공간이 나오고 그 공간은 성인 서너명이 옆으로 앉을수 있을 정도이다.

    그곳에 새겨진 석가모니불이다. 그러니 이곳은 다른 절의 대웅전(大雄殿)에 해당된다.

     

    보통 절에가면 대웅전이나 건물들의 기둥에 길게 쓰여진 글들이 있는데 이는 '주련'으로

    이곳에도 이 불상 앞쪽 측면에 글씨가 두줄이 새겨져 있다.

     

    "부모미생전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

    "이뭤고?"

     

    부모로부터 몸을 받기 전의 나의 본래모습은 무었이였는가?

    그리고 나를 움직이는 또 다른 그 무었이 있을텐데...그것이 무었인가?

     

    참선을 할때 늘 생각하야 하는 화두(話頭)들중의 2가지 공안이다.

     

     

     

    어떤 일을 이루거나 무었이 되고 싶다면 늘 그일을 생각하고 그런 행동을 하라.

    어떤 바램을 지극히 염원하면 그 일을 이루기 쉽다고 한다. 물론 가능성이 있는 염원이라야

    하겠지만 어떤 바램을 가지고 노력하면 그일을 이루기 쉽다는 것이다.

     

    인간의 주체는 자신의 마음이다.

    대개의 절에서 보는 이런 염원들은 대부분 엄마들이 자식이나 남편의 건강이나 출세,

    합격을 염원하는 뜻으로 밝히는 것이다. 이 지극한 마음들이 조금이나마 전달되어 염원의

    상대에게 전달이 되었으면 한다. 아무리 엄마가, 아내가 염원을 이런식으로 한다고 해도

    본인 스스로의 염원이 없다면 이루어 질 수 없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인연을 소중히 한다. 인을 심어야 과가 열리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절에 올려진 수많은 소원들을 보면 자식이나 남편에 대한 것은 많기도 한데

    부모를 위한 것은 거의 없다고 한다. 역시 사랑은 내리 사랑인 모양이다.

     

     

     

    동굴법당을 나와서 언덕을 다시 오르면 삼태리 바애불로 오르는 길이 나온다.

    며칠전 내린 눈이 나름대로 멋진 설경을 만들고 있다.

     

    완전하지 않은 설경... 눈이 많이 내려 완전히 뒤덮혀 순백의 세상을 만들때 보다

    어느 정도 원래의 모습을 남겨놓았을때가 훨씬 좋아 보인다.

     

     

     

     

     

    이 마애불의 본 이름은 천원삼태리마애불 [天原三台里磨崖佛]이다.
    대한민국 보물 제407호로 지정되어 있다.

     
    아까 본 동굴법당이 있는 자리는 옛 고려시대의 태학산(泰鶴山)의 해선암(海仙庵)이라는

    절터였는데 이 마애불은 바로 그 절의 산정에 해당하는 부분에 있다.


    높이는 7.1m에 이르는 거불 가운데 하나로 상체는 깊은 정도가 또렷한 고부조(高浮彫)인데
    비하여 하체로 갈수록 선각(線刻)으로 변하며 머리는 소발(素髮)이고 육계는 크고 둥글다.
    얼굴은 넓적하고, 치켜 올라간 가는 눈, 커다란 코, 작은 입에 양 귀가 어깨까지 늘어져
    전체적으로 둔하다는 인상을 준다.  또한 목은 거의 없고 삼도(三道)는 가슴에 굵게 조각된

    듯하며 어깨는 넓기만 할 뿐 입체감이 없는터라 상당히 소박함을 보여준다.


    두 손은 가슴까지 들어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했으며 오른손은 왼손 위에 손등이
    보이도록 표현하였다.


    어깨위를 걸친 통견(通肩)의 법의는 묵직하게 처리했으며 상체와 양쪽 옷자락은
    종선무늬[縱線文]가 새겨져 있으며 하체는 U자형 단상의무늬[段狀衣文]로 조각하였다.

     

     

    눈을 잔뜩 가지마다 올리고 있는 소나무를 발로 차서 떨어지는 눈을 맞고 즐거워하는

    옆지기와 막내....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 오는 작은 옹달샘이다. 이 넓은 공터가 원래 절이 있었던

    자리라고 한다. 대부분의 절에서 이같은 생이 절 입구에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 부분은 고려시대에 있었다는 절의 입구에 해당할 것이다.

     

     

     

    추억이라는 것도 늘 시간차를 두고 포개어 지는 것이듯 소망들도 포개어져 탑을 만든다.

    삶이란 것도 탑과 같다는 생각이 최근에 든다. 탑은 아래가 넓어야 한다. 그래야 안정된

    모습으로 온전히 서 있을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포부도 소망도 꿈도 늘 나이를 먹으면서 작아져 가는 것이다. 그만큼 욕심이

    작아여 간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어릴적에는 부모로 부터도 받기만 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부모가 되어 자식에게 나무어 주기만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꿈이 커지면 욕심도 커져야 할것이고 자식이나 가족들에게 줄수있는

    것이 적어질것이다. 가분수의 탑처럼 말이다...언젠가는 쓰러지고 말~~

     

     

     

    금강역사가 위압적이다. 내 마음에도 금강역사 하나쯤 들여놓아야 겠다.

    요즈음 너무 나태해진 나를 보기 때문이다.

     

     

     

    보너스로 그려본 약도 하나~ 그림 실력은 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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