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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물 1288호 타루비(墮淚碑)
    여행기 2006. 12. 17. 23:23

     

    보물 1288호 타루비(墮淚碑)

     

     


    아산에 있는 현충사 입구에는 어른 키보다 작은 비석이 하나 있다.
    이 석비는 민족의 명장인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장군이
    세상을 떠난지 6년후인 선조 36년(1603)에 장군의 수하 군인들이 세웠다.


    석비의 형태는 꽃무늬 대석(臺石)위에 연화비좌를 마련하여 비신을 세우고, 구름문양과
    연꽃봉오리 모양의 머릿돌을 올렸다.


    비문에는 비의 명칭에 대한 유래와 건립에 대한 내용이 있다.


    영하수졸위통제사 이공순신입단갈명왈타루 개취양양인사양호이망기비즉루필타자야
    만역삼십일년추립(營下水卒爲統制使 李公舜臣立短碣名曰墮淚 蓋取襄陽人思羊祜而望
    其碑則淚必墮者也 萬歷三十一年秋立)


    "영하의 수군들이 통제사 이순신을 위하여 짤막한 비를 세우니 그 이름을 타루라고 한다.
    중국 양양 사람들은 양호를 생각하면서 그 비를 바라보면서 반드시 눈물을 흘린다고 하는
    고사에서 인용한 것이니라. 만력31년(중국의 연호다) 즉 1603년 가을에 세우다."


    여기서 나오는 중국의 양양은 전략적 요충지로써 이곳을 거쳐간 역사속 영웅들은 많다.


    삼국지의 영웅 제갈량은 내란을 피해 양양의 융중으로 피하여 '융중의 와룡'이라는 이름을
    얻기도 했고 관우는 조조의 아들인 조인을 패퇴시키고 양양을 차지 했지만 결국에는
    여몽에게 참살당하고 말며, 육손은 양양을 바탕으로 이릉전투에서 유비군을 격퇴한다.


    위의 타루비에 새겨진 양호는 관우가 참살되고 촉과 오가 물러난 양양에 대장으로 부임해
    육손의 아들이였던 육항과 대적하면서 선정을 베풀어 양양의 백성들에게 크게 추앙받는다.
    적인 육항과는 국적을 뛰어넘는 교분을 나누었다. 그로 인해서 형주공략이 불가하다고
    주장하다 좌천당하여 병사함으로써 양양사람들은 그의 비를 보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육손의 아들인 육항 역시 육손의 뒤를 이어 관우로 부터 뺏은 형주를 다스렸다.
    그 역시 적의 대장인 양호와 국적을 뛰어 넘는 교분을 나눈 일화는 기록으로 남을 정도로
    유명하다. 양호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그 역시 양양공략은 불가하다고 주장하다 좌천 당하여
    병사하고 만다. (양호와 육항의 일화는 신조협려라는 책에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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