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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룡사 뜨락에 서다 포(苞) 없어 더 슬픈 상사화 피어서 도가니 열탕을 식혀주는 산문(山門) 앞 그늘 밭 귀에 달랑 매달려 지금은 좌선 중이다 포영(泡影)속 자각(自覺)은 불타의 가르침 도지(桃枝)에 외로 핀 꽃처럼 혼자서 가되 밭농사 일구어내듯 마음 밭 거두라 포폄(褒貶)은 인연에 기댄 것이니라 ..
여우비 원추리 꽃대에 햇살 걸어놓고 두런두런 하루가 익어가는 언덕배기 막 영근 물 구슬 한 말 우르르 쏟아지다 원뿔 벌려 구름을 걸러 담던 메꽃 두둑하게 받아든 물 구슬, 까무룩 하다 막연한 기다림에 더해지는 갈증 --------------------------------------------------------------- 지난 주말에는 본가에 다녀 왔..
능소화 핀 골목 원 하나 크게 그려져 달구어진 하오 두어 뺨 건사한 그늘 속 풍경에 막 퍼진 파동 하나 잠자리 날개에 내린다 원줄기 담 넘겨 마실 나온 능소화 두둥실 구름 따라 떠나고픈 마음인데 막다른 골목 끝으로 새겨지는 일렁임 원류를 찾는가? 저리도 붉어진 낯 두드리는 햇발에 화들짝 놀라..
고추농사 원행(遠行)길에 친우(親友)의 농사 부러워 두엄 주어 잘 키운 고추 모종 다섯 포기 막자갈 고르고 다져 화분에 옮겨 왔다 원래 햇살 아래 몸을 구워야 하지만 두메도 아닌 도회에선 가당치도 않아 막둥이 어루더듬듯 들며 나며 눈에 쟁였다 원뿔 과육 몇 개가 꽃 진 자리에 열렸다 두어서 더 ..
구룡사에서... 소슬한 옛 시간 올올이 풀려서 나선으로 꼬여져 구비마다 맺히고 기슭에 기대어 흠칫, 세월 참 빠르기도... 소나무 등걸 아래 여래(如來)의 미소 하나 나리꽃 피어나 제 몸을 공양하고 기다란 산 그림자 바람끝에 서다 소리 몇 조각 후두둑 발 끝에 떨어졌다 나는 풀쩍 놀라서 하늘을 좁혀..
세병관(洗兵館)에서 냉장차 가로막아 막힌 곁 세병관 장수(將帥)들 남긴 이름 빛을 더 하는데 고달픈 수병(水兵)의 혼은 바람에 흔들리다 냉골이었을 마룻바닥 새우잠도 꿀이던 그들 장마철 눅눅함에 늘어지는 향수(鄕愁) 고누판 새겨놓고는 고향으로 말 띄웠겠지 냉락(冷落)한 담장 너머 새로 돋은 풍..
개망초, 물너울이 되다 물길 너머 수만 리 서러운 이민선 안타까워 실어 보낸 씨앗 몇 톨 개간지 맨흙을 뚫고 숨어 삭힌 몇 해 물난리도 많던 그 해 경술년 들판 안팎에서 짐 지우듯 눌러온 망국(亡國) 개살구 몽싯 맺는 때 이국 하늘에 샅 열다 물러서고 되넘는 사람의 공간 안 간다는 세월은 흘러서 100..
아버지의 밭 물 냄새 골 넘어와 흐드러진 언덕 안개가 훑어간 산 그림자 가생이 개개비 휘젓는 하늘 얇게 저며지다 물푸레 길게 누워 키 늘린 하오(下午)의 끝 안간힘 버텨보지만 그럭 가고만 하루 개꽃은 밭둑에 서서 귀를 열었다 물지게 걸음마다 넌출대던 아버지 안쓰런 풍경은 추상화로 남아 개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