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아지(강 건너 마을) 강 건너 마을 두터운 안개덮고 아침 잠 곤히 들어 한폭 그림 되다 지난 밤 물에 빠진 달, 건져내는 왜가리 강 건너 마을 깨우려 기지개 켜다가 아가위 나무에 걸리고만 붉은 해 지피는 초가 아궁이, 눈이 맵다 강 건너 마을 아침문 여는 술도가 아늠살 두터운 주인 술..
온돌방(세문안:歲問安) 온 누리 덮은 서설瑞雪 청솔이 이고 지고 돌미륵 뒤에 서서 그림되는 아침에 방구리 가득히 담아 쟁여보는 바램 온갖 풍상風霜 부침한 용띠해 보내고 돌아온 癸巳年 검은 뱀 길을 여네 방울땀 넘치는 한 해, 세상에 넘치기를... **방구리: 물 긷는 질그릇, 동..
풍경(風磬) 동풍이 건듯 불어 잠시 머문 처마 끝 아련한 하늘 끝 매달린 허공에 줄 하나 몸을 맡긴 서러운 목메임 동강동강 잘리고 끊어진 삶에 아가리 한껏 벌려 뱉는 법어(法語)들 줄 걸음 흔드는 세파 자작하게 씻다 동백꽃 진 자리 고요마저 땅에 스며 아가위나무 잎들도 선정에 드는 ..
삼행시-나막신(話頭) 나 또한 가리라 저 강 건너 푸른 숲 막막한 화두話頭의 꼬리를 잡던 날 신명나 하늘에 그린 꽃 꿈의 궤적 나는 그 길을 따라 일렁이며 걷다가 막다른 끝을 만나 고삐를 놓치고 신선한 바람 한 줄기 손에 들고오다 나를 놓아버린 날과 날의 사이들 막살아온 세월도 빚..
또 길을 간다 나목裸木처럼 바람에 등을 기대고 막새기와 타고 내린 가을비에 젖다 신발에 튀는 생각들 점이 되어 흩어진다 나를 찾아 떠나 돈 세월이 삼십 년 막막한 어제와 이어진 오늘도 신작로 끊어진 자리, 서성이는 발길 나를 잃었던 그곳은 어디였을까 막연한 안갯속 그 어디쯤의 ..
오미자(돌미륵) 오월의 햇살 푸르게 영근 사이 미소 하나 툭 던져 놓는 돌부처 자작히 젖은 귓불에 살구처럼 열린 화두 오동나무 그림자 살아서 춤추지만 미동도 않고 여름을 지키는 어깨 자목련 지고만 흔적 바람에 밟히다 오는 손 가는 객 남겨놓은 발자죽 미계迷界와 오계悟界가 만나 ..
백일홍 (尋牛圖와 나) 백만 년 거듭 산 삶 아직도 껍질 속 일천 개 달이 세상에 주렁 피어서 홍련잎 맺혔다지는 짧은 순간, 소를 보다 백 구비 허덕대며 쫓아가 보지만 일순간 잡았다 싶으면 또 저만치 홍경(紅鏡)속 지친 이 하나 길을 놓고 말다 백우(白牛)의 등을 탄 이, 흥에 겹구려 일진..
삼행시-백일홍(山寺가는 길) 백발 머리에 이고 세월 걸머진 노인老人 일산日傘의 그림자 새겨놓은 산길 따라 홍련등紅蓮燈 흔들려 펼친 흐릿한 마음의 문 백 년의 세월에 등 굽힌 노송老松들 일일이 새긴 풍상 잔금만 남긴 목피木皮 홍도화紅桃花 그림자 밟고 일주문을 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