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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둥대는 공일(空日) 모루 두들기는 소리 담 넘어와 내 귀를 당겨 자꾸 늘려 놓는다 기갈(飢渴)이 헛구역처럼 밀려 왔다 간다 모로 누운 하루가 뼈를 맞춘다 내장이 마침내 용트림 해댄다 기대어 앉은 어깨에 내리는 권태 모자로 부스스한 치부 가리고 내밀한 연통(戀通)을 나르듯 나선다 기관지 훑어 ..
보탑사에서 콩대들 서로 살찌우는 돌담 아래 나리꽃 피어나 뱉어 놓은 하늘 물소리 말갛게 씻어 바람에 널다 콩콩콩 산신각에 뉘 들었는가 나긋하게 울려오는 선 고운 목탁소리 물망초, 인연 여의고 하늘에 몸 던지다 ** 어쩌다 평일임에도 여유가 생겨 진천 보탑사에 들렀습니다. 스마트 폰으로 삼행..
재즈 카페에서 기상 나팔을 불다 콩가 소리는 내 몸 구석 훑어서 나른하게 세포들을 늘려 놓는다 물관에 가득 차올라 넘치는 권태 콩테의 뭉툭한 끝으로 그려보는 나긋한 그녀의 몽환적 실루엣 물감 푼 수조처럼 채도 짙어진다 콩켸팥켸 흐느적, 끈적한 재즈 카페 나는 삭아가는 비로도 조각천이다 물..
草書13 종소리 가슴을 헤집고 울린다 달이 빤히 떠올라 만든 그림자에 새김질 옛 추억들도 몸을 숨긴다 종유석 자라듯 나날이 크는 그리움 달아나려는 몸부림은 칡뿌리에 감기어 새기는 오늘 마음도 나를 옭아매다 종이 위에 그려보다 지치는 마음 달랑 두어 줄이 그리도 깊었던지 새로이 찾아온 날이..
감포 이견대에서 섬 하나 너울타고 일렁대며 왔다지 진도(津渡)에 닿아 하늘의 뜻 전했네 강물은 신라의 염원 싣고와 풀었지 섬에 업혀온 옥대(玉帶)에 서린 영기 진용(眞龍)인가 신문왕은 저어 했었네 강가는 용의 호흡에 크게 출렁였었지 섬돌에 오른 왕은 그 뜻 맑게 받아서 진구리에 내려준 옥대(..
봄 소경(小景) 배롱나무 가지끝 몸을 여는 봄 나그네새 길 떠난 갈숲은 졸고 무너진 계절의 경계, 개나리 웃다 배듬한 복숭밭 봄물에 잠기고 나무눈 껍질 사이 살피는 첫 풍경 무삶이 늙은 농부, 허리는 깊이 굽다 배냉이 벌레 움츠리는 현기증 나루터 버들강아지 더불어 흔들리고 무거리 덕지붙은 겨..
동백꽃 나라진 삶이 털어도 만근(萬斤)이다 비까지 흗뿌려 잎마다 매단 수심 목까지 차오른 설움, 땅의 각혈 나울대는 동백숲 풍랑이는 바다처럼 비감(悲感)한 습기를 물감처럼 푼다 목쉬어 우는 동박새, 하늘의 신열 나 이제 돌아가 땅으로 돌아가 비비추 사잇길에 꿈으로 살다가 목작약 몸을 여는 날..
목포 홍어앳국 지금쯤 남도는 보리순 한 뼘 되나 홍어앳국 생각에 식도를 긁는 비 온 천지 꽃피는 봄날, 늘어난 자라목 -------------------------------------------------------- 십년쯤 되나보다. 목포에 들러 길가의 허름한 식당에 들렀었다. 늙수구레한 주인은 팔공산 갖바위 부처의 늘어진 볼살을 닮았다. 나도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