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행시- 나비목(동백꽃) /김대근삼행詩 2010. 4. 12. 22:45
동백꽃
나라진 삶이 털어도 만근(萬斤)이다
비까지 흗뿌려 잎마다 매단 수심
목까지 차오른 설움, 땅의 각혈
나울대는 동백숲 풍랑이는 바다처럼
비감(悲感)한 습기를 물감처럼 푼다
목쉬어 우는 동박새, 하늘의 신열
나 이제 돌아가 땅으로 돌아가
비비추 사잇길에 꿈으로 살다가
목작약 몸을 여는 날, 꽃으로 돋으리
-註-
-나라진: 나라지다. 몸시 지치어 몸이 나른하여 지다
-목작약(木芍藥): 모란
-비비추: 백합과의 다년초. 연한 잎은 나물로 먹음-----------------------------------------------------------------------------------------
동백꽃이 피었다. 동백꽃은 남녘의 꽃이어서 북쪽에서는 여간해서는 보기가 힘들다. 기후가 변하는 탓인지 얼마전에 들은 이야기로는 한강부근에서도 동백이 꽃을 피웠다 한다. 비록 정원수로 사람의 손에 의해 길러진 것이기는 하지만 한강부근에서 동백이 피었다는 것은 동백의 북방한계선이 영역을 넓혔다는 것이다. 전남 백양사가 북방한계선이었던 비자나무도 점점 북방으로 영역을 넒히고 있다하고 반대로 소나무는 자꾸만 북쪽으로 쫓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동백꽃은 군락으로 피어야 보기가 좋다. 우리나라에 몇 군데의 동백군락이 있는데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곳은 역시 여수 오동도이다. 그곳에서 북쪽으로 옮기면 광양의 옥룡사지가 있고 더욱 북쪽으로 오면 서천 마량리 동백이다. 이 세군데는 모두 광할한 동백숲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또 다른 세상을 이루고 있다. 이렇게 숲을 이룬 곳에서는 윤기가 자르르한 동백나뭇잎이 바람에 일렁거리는 모습에서 출렁이는 바다을 본다. 미당 서정주의 시로 널리 알려진 선운사의 동백은 선운사 대웅전 뒤에만 몇 그루 있어서 옹색하다.
동백숲에는 동백꽃들이 붉은 색을 고스란히 간직한채 떨어진 모습을 본다. 동백꽃들은 땅에 떨어져서도 일 주일이고 이 주일이고 제 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떨어진 동백이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동백꽃은 항상 할머니와 아버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일본 탄광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보상금을 나누어 아버지를 큰 집에 맡기고 재가를 하셨던 할머니는 후일 다시 돌아왔지만 머슴처럼 살았던 아버지는 할머니를 용서하지 못했다. 그래서 따로 살림을 살았고 아침이면 하루도 빼지 않고 동백기름으로 머리를 다듬던 할머니를 위해 엄마는 장에서 2홉들이 소줏병에 담긴 동백기름을 나에게 들려 심부름을 보냈다. 남편과 시어머니 사이에서 둘 사이의 화해를 위한 엄마의 배려이기도 했다. 결국 할머니가 세상을 버리고 난 10년이나 지난 후 화단에 동백나무 한 그루를 심으면서 마침내 용서를 하셨다.
동백숲에 가면 늘 슬픔이 가득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도 일년에 한번쯤은 동백숲에 다녀와야 마음이 편하다. 이번에는 서천 마량리 동백숲을 다녀 왔다. 슬피우는 새소리가 들렸다. 혹여 동박새인가 했지만 아니었다. 동박새가 보고싶다.'삼행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행시- 섬진강 (감포 이견대에서) /김대근 (0) 2010.04.27 삼행시- 배나무(봄 소경) /김대근 (0) 2010.04.18 삼행시- 나비목(목포 홍어앳국)/ 김대근 (0) 2010.04.11 삼행시- 목련의 춤 /김대근 (0) 2010.04.03 섬진강 (0) 2010.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