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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행시- 나비목(목포 홍어앳국)/ 김대근삼행詩 2010. 4. 11. 10:13
목포 홍어앳국
지금쯤 남도는 보리순 한 뼘 되나
홍어앳국 생각에 식도를 긁는 비
온 천지 꽃피는 봄날, 늘어난 자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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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쯤 되나보다. 목포에 들러 길가의 허름한 식당에 들렀었다. 늙수구레한 주인은 팔공산 갖바위 부처의 늘어진 볼살을 닮았다. 나도 저리 늙으리라 했다. 사인펜으로 써내려간 메뉴판을 훑어보았지만 달리 눈에 뜨이는 건 없다. 백반정식을 시켰다. 백반이라면 쌀밥을 이야기 한다. 쌀밥을 삼시세끼 먹는게 평생의 소원이었던 적도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의 하얀 쌀밥 도시락을 보면서 거무튀튀한 내 도시락은 항상 주춤주춤 열리곤 했다. 그래서일까. 역마살끼로 허대고 다니지만 백반정식이나 된장찌게를 자주 먹는다. 그러니 남들이 즐기는 지역 특산음식은 혼자 여행에서는 좀체 맛볼 수 없다. 쌀밥은 아직도 나를 꽁꽁 동여매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하나에 매여서 사니 내 혀는 늘 진화를 하지 못하고 단편적인 맛에 길들여져 있다. 식도락가가 되기에는 애저녁에 틀려버린 일이다.
국이 따라 나왔다. 정구지국으로 생각했다. 정구지는 경상도 사투리고 부추는 표준어다. 고기 몇점과 같이 끓여낸 국은 대체로 맑았지만 맛은 고소하고 풍부했다. 자세히 보니 부추는 분명 아니다. 목을 타고 넘는 그 풍성한 맛은 여태 먹었던 여느 국보다 맛있었다. 주인에게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물었더니 나긋한 전라도 사투리로 홍어앳국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부연해서 보리순을 넣었다는 것이다.
보리는 늘 벗어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매여 살아야 하는 현실과 같았다. 학교를 파하고 돌아오면 처마밑 서까레에 매달려 있던 삶아 놓은 보리밥, 물에 말아 넘기면 목젖을 이리저리 훑으며 고깝게 넘어가던 거친 기억의 가운데에 보리가 있었다. 뿐인가. 보리는 겨울에 보살펴야 했고 타작을 할 때도 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온 식구가 달라붙어 자체 해결을 해야 했다. 보리타작을 하고 난 저녁에는 온 몸으로 파고 들던 고통들…. 벼는 달랐다. 모를 심는 날은 품을 사서 일을 했고 쌀밥에 빨간 소고깃국도 나왔고 새참도 내왔다. 벼를 수확하는 날도 마찬가지 였다. 일년에 딱 두번 쌀밥과 빨간 소고깃국을 먹는 날은 모두 벼와 잇대어 있었다. 어쩌면 나를 옭아매고 있는 쌀밥에 대한 동경과 환상은 당연한 것이었으리라.
벚꽃이 필때쯤이면 자주 홍어앳국이 생각난다. 십년의 세월이 속절없이 흘렀으니 늙수구레했던 그 주인도 자리를 비웠을지 모르겠다. 아니면 식당이 있던 그 자리는 또 다른 공장이 들어서 기억의 파편만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떠나도 찾을 수나 있을까. 유난히 바쁜 올해 4월이다. 오늘도 회사에 출근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관절마다 역마살 바이러스가 준동을 하고 있다. 여기저기 쑤시는 데가 많은 것을 보아 그렇다는 것이다.
그립다. 홍어앳국, 부드럽게 씹히던 보리순의 그 맛이…'삼행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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