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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행시- 배나무(봄 소경) /김대근삼행詩 2010. 4. 18. 21:53
봄 소경(小景)
배롱나무 가지끝 몸을 여는 봄
나그네새 길 떠난 갈숲은 졸고
무너진 계절의 경계, 개나리 웃다
배듬한 복숭밭 봄물에 잠기고
나무눈 껍질 사이 살피는 첫 풍경
무삶이 늙은 농부, 허리는 깊이 굽다
배냉이 벌레 움츠리는 현기증
나루터 버들강아지 더불어 흔들리고
무거리 덕지붙은 겨울, 뒤태 주름지다
* 배냉이 벌레: 방패벌렛과의 곤충, 배나무나 벚나무의 앞뒤에 붙어 진을 빨아먹고 산다.
** 배듬한: 배스듬하다의 준말, 한쪽으로 조금 기울어진듯 하다.
*** 무삶이: 모심기를 앞두고 논물을 가득담고 써래로 논을 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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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겨운 사월이다. 꽃 피는 사월은 여유와 낭만의 때이건만 주말도 반납하고 여전히 출장중이다. 창원에서 사흘을 보내고 다시 포항으로 와서 여장을 풀었다. 몸이 파김치다. 피곤하면 늘 그렇듯 이번에도 입술이 따끔거린다. 잘 부르트는 입술은 아킬레스 건이다. 일요일 밤에 여관을 찾으니 주인이 반색을 한다. 하긴 일요일 밤에 잠자리를 찾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오늘 같은 날은 손님 대우를 적잖이 받는 셈이다.
지난주 출장을 왔다가 아침 시간에 오어사에 들렀다. 오어사가 기대고 있는 운제산은 제법 높은 절벽에 자장암이라는 작은 암자를 하나 올려놓고 있다. 이즈음이면 산수유와 왕벚들이 선명한 색으로 띠처럼 산을 두르고 오른다. 마치 두마리의 황룡과 백룡의 용트림 같다. 그 장엄한 기들이 승천하다가 뭉퉁거려진 곳에 서있는 암자가 자장암이다. 오어사는 원효암과 자장암을 부속암자로 거느리고 있는데 통불교의 푸근함이 원효스님이라면 반면에 꼬장한 율사라면 자장스님이다. 두 암자도 원효와 자장, 두 스님을 꼭 닮았다. 그러나 불사를 통해 넓어진 현재의 자장암은 오히려 자장스님의 풍모를 깎아 먹고 있는 듯 하다. 갈아내고 잘라내야 하는 소유의 욕심, 안이비설신의 세속적인 안목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일 게다. 더해서 좋은 것과 보태지 않아도 좋은 것을 구분해야 한다. 나 역시 그렇지 못하니 "너나 잘 해!" 이 한마디면 깨갱이다.
나 자신도 잘 하지 못하면서 남의 행사에 이러쿵 저러쿵 한다는 것도 구업을 짓는 일이다. 업중에 구업이 제법 큰데 글 쓴다는게 늘 구업짓는 일인가 싶다. 내일은 잠을 좀 줄여서 자장암에 올랐다 와야 겠다.'삼행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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