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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행시- 섬진강 (감포 이견대에서) /김대근
    삼행詩 2010. 4. 27. 23:15

    감포 이견대에서

     

    섬 하나 너울타고 일렁대며 왔다지
    진도(津渡)에 닿아 하늘의 뜻 전했네
    강물은 신라의 염원 싣고와 풀었지


    섬에 업혀온 옥대(玉帶)에 서린 영기
    진용(眞龍)인가 신문왕은 저어 했었네
    강가는 용의 호흡에 크게 출렁였었지


    섬돌에 오른 왕은 그 뜻 맑게 받아서
    진구리에 내려준 옥대(玉帶) 두르고
    강산에 고했다네, 누리가 밝아지기를…


    섬섬옥수 공간을 튕기어 소리 다듬자
    진감(震撼)하던 세상 만파식적(萬波息笛)에 잠기고
    강건한 새 신라의 문, 마침내 열렸네


    주)
    * 진도(津渡): 나루터
    ** 진구리: 허구리(갈비뼈 아래)의 잘록하게 들어간 부분
    *** 진감(震撼): 울려서 흔들림
    -----------------------------------------------------------------------------------

     

     

     

     

    출장지에서 또 다른 출장지로 오가는 바쁨의 연속이다. 그래도 지난밤 무리를 해서 포항까지 와서 잔 보람이 있었다. 아침시간이 여분의 시간으로 온전히 남았다. 일찍 일어나 오어사로 향했다. 원효대사와 혜공스님의 수행에 얽힌 전설이 숨쉬는 곳이다. 절 앞은 공사가 한창이라 어수선하다. 오어사 코 앞에 호수를 가로질러 현수교를 건설한단다. 고즈넉하고 평안하던 풍경 하나가 전설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가슴이 갑자기 답답하다. 자신의 수행을 최고의 가치로 해야하는 승려가 스스로 세상의 티끌을 절 앞으로 끌어온 셈이다.


    300원짜리 자판기 커피 한잔을 빼서 절 뒷편 자장암이 빤히 올려다 보이는 곳에서 잠깐 명상에 젖어보려 했지만 이어 들리는 중장비의 소음에 쫓기어 서둘러 나오고 말았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부지런을 떨면 그 만큼 여유분의 시간이 생긴다. 세상에 시간만큼 정직한 것은 없다. 현재가 고된것은 과거가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현재가 충실하지 못하면 미래  역시 지난할 것은 자명하다. 산넘어 기림사로 향했다. 기림사는 몇 번을 가도 늘 가고 싶은 곳이다. 아마 전생이 기림사의 불복하니였거나, 대숲에 살던 작은 새였던지 어떤 인연이 닿았을 것이다. 오어사에서 채워진 티끌을 여기서 모두 씻어내었다.


    지축을 울리는 소리가 골짜기를 가득 채운다. 천안함 사건 때문일까. 기갑부대의 기동훈련으로 수십대의 탱크가 좁은 시골길을 달린다. 예전에는 왜구들이 감포를 거쳐 강을 통해 들어와서 서라벌로 칩입하려다 섬멸되곤 했던 길이다. 그 길을 달리는 군대를 보니 느껴지는 감정이 다르다.


    감포가 빤히 보이는 이견대(利見臺)에 섰다. 감포해변에는 수학 여행을 온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파도를 타는 모습이 와글하다.  이곳에서는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 제30대 문무왕의 수중릉인 대왕암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다.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호국정신을 받들어 31대 왕인 신문왕이 681년에 세웠다. 이견대라는 이름은 신문왕이 바다에 나타난 용을 보고 나라에 크게 이익이 있었다는 뜻을 포함한 말인데, 『주역』의 ‘비룡재천 이견대인(飛龍在天 利見大人)’이란 문구에서 따온 것이다.


    이견대는 신탁의 상징인 옥대(玉帶)와 만파식적(萬波息笛)을 얻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어느날 섬하나가 육지 가까이로 왔다. 관리가 왕에게 아뢰자 신문왕이 직접 나섰다. 섬에는 옥대와 대나무 한 그루가 심겨져 있었다. 왕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옥대와 대나무를 잘라 오다가 기림사 서쪽 시냇가에 와서 수레를 멈추고 점심을 먹고 쉬는데 마침 태자(훗날 효소왕)가 와서 "이 옥대의 한쪽 한쪽이 모두 진용(眞龍)입니다." 라고 하니, 신문왕이 "네가 어찌 아느냐" 라고 하자 태자가 "옥대의 한쪽을 떼서 물에 넣어 보소서"라고 하였다. 신문왕은 왼편 둘째 쪽을 떼어 시냇물에 넣으니 곧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그 땅은 못이 되어 용연(龍淵)이라고 하였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이때 얻는 대나무로 만파식적(萬波息笛)을 만들었는데 외적의 침입이 있을때 이 피리를 불면 적이 물러가고 지니고만 있어도 감히 침범하지 못한다고 전해진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죽어 바다의 용이 된 문무왕과 삼십삼천의 한 아들인 김유신공이 신라를 지킬 보물로 내려준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데는 문무(文武)가 편중없이 갖추어져야 한다는 사상의 표현이다. 옥대는 문신의 상징이며 만파식적은 무신의 상징이다. 신라는 문무왕대에 통일의 대업을 이루었지만 외세를 빌린 통일은 수많은 모순을 안고 있었고 내부적으로도 성골에 의한 왕권의 계승은 끊어지고 진골로 이어지는 왕권에 대한 귀족들의 불만도 대단했다. 따라서 신라 왕실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했고 당시 중국대륙에서 황제의 상징이던 옥(玉)을 하늘이 주었다는 것을 알림으로써 왕권에 대한 백성들의 신망을 얻고, 만파식적이라는 의지처를 만들어 낸 것이다. 자명고가 적이 침입할 때 미리 알려주는 경보의 역활에 거쳤다면 만파식적은 적에게 직접 타격을 가해 물러나게 하는 효용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다. 8세기에는 만파식적의 위력으로 일본이 감히 신라를 침공하지 못한다거나 혹은 일본이 만파식적을 비싼 돈을 주고 사고 싶다는 등의 기록이 자주 보인다. 이때는 신라와 일본의 갈등이 깊어진 때로 이런 급변하는 정세를 맞은 신라인들의 정신적 귀의처로 만파식적(萬波息笛)은 큰 역활을 했다.


    물리학적 현상중 하나로 공명(共鳴)이 있는데 두가지 소리나 진동의 주파수가 일치되면 물체가 파괴된다. 따라서 만파식적(萬波息笛)도 전혀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니다. 큰 건물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 바로 공명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누군가가 모두가 기댈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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