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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의자왕의 왕자 융의 전설, 고왕암 누누히 주장하는 바이지만 기록으로 남겨진 역사는 과연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것일까? 역사는 늘 승자에 의해 기록되어 지고 패자가 남긴 기록은 승자에 의해 영원히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남아있는 역사랑 늘 승자의 입장에서 기록된 것이고 승자의 기록..
명성황후가 다시 세운 계룡산 중악단 계룡산을 등에 업고 있는 신원사 경내에는 조선시대 나라에서 산신제를 지내던 중악단이 있다. 계룡산은 신리시대때부터 신라 5악(嶽)의 하나로 일컬어 지면서 계룡산사(鷄龍山祠)에서 소사(小祀)를 받들었으나 19세기말 소사와 중사(中祀)의 명칭이 사라지면서 ..
계룡산의 절다운 절, 신원사 절다운 절이라는 다소 어폐가 있는 말을 글제목으로 뽑았다. 계룡산에서 이름 날리는 동학사와 갑사는 규모가 크고 문화재도 많지만 반대급부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적지않는 부분에서 고즈넉함과 탈속(脫俗)의 정도가 옅어졌다는 것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신원사..
효심의 도량, 용주사(龍珠寺) 수원은 조선 정조가 꿈꾸었던 새로운 도시였다. 그러나 이 새로운 도시에의 꿈은 기득권 세력들의 단단한 결집력을 뚫지 못헤 결국 꿈으로 끝나고 말았다. 경기도 수원은 그런 곳이다. 당시 실학파의 두뇌들을 총 결집해서 수원의 화성을 축조하고 서울을 옮기려는 계획..
윤장대와 업보의 거울, 예천 용문사 우리나라에는 용문사라는 이름을 가진 절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은행나무로 유명한 경기도의 용문사, 남해에서 제일 오래된 역사를 지닌 용문사, 그리고 경상북도 내륙의 깊은 곳에 자리한 예천군의 용문사가 대표적인 사찰들이다. 예천은 교통편이 그리 좋지 않..
님을 위한 가을, 진천 보탑사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불교가 전래될 당시에는 주로 목탑들이 유행했다. 그중에서 황룡사지 9층탑은 유명했지만 전란이 많았던 우리나라에서 대부분 자취를 감추었다. 목탑은 석탑과 달리 건축물의 한 종류로 대부분 법당의 용도도 겸하고 있었다. 목탑을 짓는데는 목수..
남사당패의 근거지, 안성 청룡사 경기도의 안성은 충청,경상,전라 3도 사람들이 한양으로 가기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교통의 요점이었던 탓에 예로부터 번성했던 곳이다. 안성장은 조선에서 열손가락안에 꼽을 만큼 규모가 크기도 했으려니와 물산도 다양했다. 그중에서도 안성유기는 워낙 전국적..
한용운 스님의 흔적이 흐려지는 백담사 설악산 자락의 큰 절을 꼽으라면 역시 백담사와 신흥사일 것이다. 신흥사는 동쪽에 백담사는 서북쪽으로 치우쳐 있어서 설악산을 양분하고 있는 느낌의 사찰이다. 백담사는 인제군에서 설악산 대청봉이나 마등령, 용아장성릉, 봉정암, 오세암등으로 가려면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