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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조각이 꽃이 되어 금강에 봄이 찾아와 물빛을 달구려 하네 겨우내 기다림이 굳혀논 마음 녹이려 제 마음 붉히는 철쭉 언제였던가 물결처럼 굽이치던 시간의 조각 저 머언 끝에 걸고 갔던 …… (09.4.28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에서)
엄마는 작두꿈을 꾸지 만주 벌판 시린 바람이 부는 날 마적의 죽창에 잿간의 재들이 휘날릴 때 맏딸과 사위 잿간에 묻고 두 아들 오뉴월 논두렁에 호미 두짝 남기고 징병차에 실려 신작로 끝으로 가고 그 길로 체부 가방에 종이 한 장으로 실려 돌아와 씨강냉이 같은 외삼촌은 작두를 들었다 "오빠야! ..
진달래 꽃불 /김대근 소낭구 껍질 쩌억- 쩍 갈라진 이유 나는 알지, 봄이면 봄마다 분홍빛 진달래 꽃불로 달군 때문이지
도시로 가는 길 /김대근 도시는 어미의 품이다 어미는 매일같이 새로운 거미줄을 치고 헛헛증에 혀가 녹아내린 채 서성이는 귀가歸家를 반긴다 어미가 쳐 놓은 거미줄로 밤눈 밝히고 염낭 가득히 서로 신음 채우다 어미의 자궁이 뒤척여 빨갛게 물이 들면 낡고 진이 빠진 거미줄을 뒤로하고 이면지裏..
어떤 기다림 너, 그거 아니? 너에게선 항상 웃음이 넘쳐 하늘에 뭉게뭉게 구름으로 핀다는 거 …… 웃을 때 마다 포스스 깨지곤 하던 쪽빛 네 목덜미 하얀 진동이 긴 진폭으로 온전히 남아있는데, 아직 휘발하지 못하는 기다림을 한 무더기 머리에 이고 있는데, 내게 남은 너의 유일한 뒷모습 바람에 씻..
아주 오래된… 쪼물쪼물 주물러보면 씻겨간 추억이 손가락끝 소용돌이 지문의 길을 타고 오기라도 할까 가만히 뺨을 대보면 세월에 빼앗긴 온기가 어묵이 꿰지듯 내 심장을 뚫어 피를 덮혀주기라도 할까 부직포를 용케 뚫고 살아남은 녹차 찌꺼기같이 아주 오래된 젖꼭지 하나
길을 걷다가 /김대근 길을 걷는다 누구나 거부할 수 없는 앞길 숙명처럼 그저 걷는다 할아버지가 등을 내준 그 길을 이제는 아버지가 등을 내민다 뒤 돌아보니 어느새 내 아이도 내가 남긴 자국을 디디며 걷는다 아이야 오지 말아라, 오지 말아라 솥뚜껑 위에 오지게 지져지던 화전처럼 속 울음이 뜨겁..
서리꽃/김대근 꿈들이 껍질을 남기고 증발해 하늘에 따닥따닥 별이 된 뒤로 그저 하루하루 살기에 메말랐던 질척이는 밤 지내고 나면 새로운 주인 찾아 헤매던 별들 권태를 이기지 못해 모두 떨어져 내려 햇살 목욕을 기다리는 동안 옹기종기 포슬포슬 꽃을 피운다 마지막 남은 몇 장의 활엽들이 용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