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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을 비는 천신굿
굿의 역사는 우리민족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단군도 제정(祭政)
일치 시대의 지도자 였으므로 주술적 능력을 가졌을 것이다. 우리민족의 태동기부터 같이
해 온 정신적 동맥같은 것이 굿이였으나 불교와 유교, 기독교등의 외래종교들이 들어오며
조금씩 퇴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내가 국민학교(초등) 3~4학년 무렵이었지 싶다. 아마도 나에게 있어서 가장 오래된 기억
들 중의 하나가 굿이였다. 그것도 나를 대상으로 벌어진 굿판이였다. 여름의 어느날 나는
무었을 먹고 급체를 했다. 일명 토사곽란이라고 하는 그 지긋 지긋한 고통~
윗 동네에 산다는 무당이 왔다. 나를 눕히고 무어라 알지 못 할 주술을 외우더니 부엌칼을
가져다 내입을 벌리고 물렸다. 그리도 팥인지 콩인지를 한 웅큼 입속에 넣고 물을 부었다.
꼬르륵~ 끅..., 그리고는 기억이 없다. 아마도 몸을 누르는 공포를 10살짜리 사내 아이가
감당하기는 어려워 기절했던 것이다.
방안의 이불안에서 내가 깨어 났을 때는 멀쩡해져 있었다. 토사곽란의 그 끔찍한 고통도
눈 녹듯이 몸에서 빠져 나가고 없었다.
그래서 일까? 산길을 가다 가도 서당당이 있으면 왠지 경건해진다. 산을 타다가 누군가
쌓아놓은 돌탑에는 가능한 돌 하나를 얻어 놓아야 마음이 편해진다. 한번은 지인과 답사
여행중에 어느 마을에서 작년 장승축제로 깍아놓은 장승이 마을 어귀에 있었는데 지인이
장승의 뒤쪽으로 돌아가 소변을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내입에서는 자연스레 이런 말이
튀어 나왔다.
"그러다 동티난다..."
별일이 없었지만 한국인 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가슴속에 잠재되어 있는 막연한 경외감
같은 것은 아닐까 싶다. 그래서 풍어제 하는 곳은 일부러 찾기도 했는데 대부분의 굿이
음력을 기준으로 벌어지고 공식적으로 공개가 된것이 아니라서 보기는 쉽지 않다.
마산으로 출장을 다녀오면서 스포츠 신문 광고에서 사주박람회가 열린단다. 내용중에
흥미를 끄는 것은 역시 특별 행사로 이영희 님의 천신굿이 열린다는 내용.
마침 토요일이라 마음먹고 다녀왔다.
'굿'이란 무당이 원시종교적 관념에 의하여 주재하는 신을 위하여 제당을 마련하고 신을
청해 가무로써 신을 흡족하게 하고 신탁을 전하는 행위를 통털어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대부터 있었던 샤머니즘의 한 형태로 존재했으며 불교와 유교와 같은
외래 사상들이 들어오면서 점차 민간신앙으로써만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특히 조선
시대는 유교가 모든 생활규범과 실천윤리를 지배하면서 왕실과 지식 지배층의 내방(內房)
에서 비공식적으로 행해졌다.
굿의 목적은 병을 퇴치하거나, 복을 부르거나(招福), 죽은이의 혼을 부르거나(招魂), 집안
의 편안함을 기원하거나(安宅), 비를 부르거나(祈雨), 억울하게 죽은 영혼을 위로하거나
(鎭靈), 재난을 물리치거나(除災), 신에게 공물을 올리거나(薦神), 잡스러운 귀신을 쪼거나
(逐鬼) 등에 있다.
그중에서 이번에 견식한 굿은 '천신굿(薦新)으로 계절의 새로운 과일이나 곡식을 신령에
바치며 사람의 길복 즉, 재수(財數)를 기원하는 굿이다.
이 제사를 주관하는 이를 무당이라고 하며 신내림에 의한 무당과 세습에 의한 무당으로
분류될 수 있다.
제단(祭壇)에는 불사상(佛事床) · 상산상(上山床) · 조상상(祖上床) · 선수상(膳羞床) ·
대감상(大監床) · 상문상(喪門床) · 걸립상(乞粒床) · 성황상(城隍床) · 영산상(靈山床)등의
있는데 신상(神床)들이 비치된다.
제상에는 신령들에게 각각 올리는 음식들이 진설되는데 불사상(佛事床)에는 백병(白餠) ·
과실(果實) · 유과(油菓) 등과 굿하는 집의 선조들이 부처님께 드리는 직물로 무명 한필을
놓는다. 또 돈도 올려놓는데 장수(長壽)를 기원하는 뜻이라고 한다.
대감상(大監床)에는 탁주와 소머리,소다리등과 같이 떡을 시루째 올린다. 이 신은 욕심이
많은 재복신(財福神)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벼슬아치들이 욕심이 많아 재물을 긁어 모아
치부하는 것을 예로 부터 은유적으로 비꼬는 것은 아닐런지.... 씁쓸하다.
무당들이 가장 숭배하는 신은 선수상(膳羞床)으로 최영장군에게 바치는 예물이라 하여
3가지색의 견직물을 상 위에 놓으며 상문상과 영산상에는 특별한 규정 없고 작은 제단에
약간의 옷감과 돈을 놓는다.
굿의 전 과정을 총괄하는 무당을 원무(元巫)라고 하는데 굿의 중요한 부분을 직접 행하며
가무를 주로 하는 무당, 뒷거리만을 담당하는 무당, 굿의 흥을 돋우는 악사, 장고등이 모여
하나의 굿거리를 형성한다.
먼저 굿을 시작하기 전에 군웅(軍雄)의 군복으로 정해진 홍철릭(紅天翼)을 당(堂) 안에 걸고
장고와 재금을 잠시 소란스럽게 울려 주당물림을 하는데 이는 주당살(周堂殺)을 예방하기
위하여서라고 한다.지금 부채를 잡고 있는 분이 이영희 선생이다. 이름이 여자 이름같은데다가 중간 중간에
여자 무당이 자주 나와서 착각하는 분이 있을 수 있다는 독자분의 지적이 있어서 다시
설명을 덧붙여 넣는다.
천신굿의 순서는 한바가지의 물릏 가지고 당내를 돈 뒤 백지를 태우는 ① 부정거리(不淨巨里),
굿당이 깨끗해 졌다고 선조신(先祖神)들에게 고하는 ② 가망청배, 신이 준 술(命酒)을 마시고
사례의 뜻으로 돈을 내고 월도(月刀)를 세워 길흉화복을 점치는 ③ 산마누라, 대감상 앞에
놓였던 무명을 한발 정도 끊어 굿당을 만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재복을 내려주는
④ 별성(別星), 부채로 춤을 추면서 대감신이 주는 복덕을 부채로 퍼주는 시늉을 하고 제가
사람들은 치맛폭을 벌려 복을 받는 시늉을 하는 ⑤ 대감거리(大監巨里), 흰 고깔을 쓰고나와
승무를 추어 보이는 ⑥ 제석거리(帝釋巨里), 승무복장에 바라춤과 신탁의 바라타령을 하면서
굿당을 돌면서 시줏돈을 거두는 ⑦ 천왕거리(天王巨里), 문신호귀(文臣胡鬼)와 무신호귀(武
臣胡鬼), 부인호귀(夫人胡鬼)의 신탁을 받는 ⑧ 호귀거리(胡鬼巨里), 붉은 무관복을 입고
하는 ⑨ 군웅거리(軍雄巨里), 기무가 창부타령을 한뒤에 덕담과 신탁을 전하고 복을 내리는
⑩ 창부거리(倡夫巨里), 조상신들이 차례로 명계로 돌아감을 고하는 ⑪ 만명(萬明), 오른손에
부채, 왼손에는 북어를 들고 복을 퍼주는 몸짓을 하고 신탁을 하는 ⑫ 후전(後餞, 뒷전) 등이다.
천신굿(薦新)은 가무음곡(歌舞音曲)이 주가 되어 있는 재수굿인데 오히려 오락적 기능이 크게
작용하는 듯 느껴졌다. 무속은 민족의 자생적 전통종교이며 한때는 통치의 수단이 되기도 했고
불교, 유교, 기독교 등의 외래 사상이 들어온 뒤에도 민중속에서 대중문화를 지켜왔다.우리나라에서는 나누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농촌에서 농삿일을 할때
새참으로 내어온 음식도 조금을 떼어 대지에 던지며 '고시레'를 하는데 이것 역시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얻어 먹고 있으므로 내가 취하는 음식의 일부를 자연과 나눈다는 의미이다.
집안에서 제사를 지내고 나서도 음식의 일부를 조금씩 떼어 대문밖 한 곁에 내어 놓는데
이것 역시도 나누어 먹어냐 함을 가르치는 조상들의 지혜이다. 세상 어느 나라를 보아도
감나무의 감 몇그루를 까치나 새들을 배려하여 남겨두는 민족이 우리 말고는 없다.
역시 제사를 지내고 나서도 자손들이 술을 나누어 마시는데 이를 음복이라 하여 나누는
행위 자체를 소중하게 여김을 알 수 있다. 굿도 마찬가지 이다. 신령( 여기서는 일반적인
신도 해당이 되지만 조상신도 해당된다.) 에게 바쳐진 음식을 나눔으로써 복을 서로 서로
나누어 가진다는 뜻이다.
굿의 중간 중간거리마다 나누어 지는 음식들...
굿이 끝나고 모든 사람들이 무대로 나와 인사를 했다. 시대가 좀더 흐르면 아마도 이런
자리를 더욱 보기 힘들어 질것이다.
우측에서 세번째 남자분이 이영희 선생이다.
굿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중의 하나가 복장과 꽃인데 신령들은 꽃에 깃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여기서도 살아있는 꽃을 꺽어서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의 전통 사상이란 이렇게
식물에게도 령이 있기 때문에 종이로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다.
마침 굿이 열리는 한곁에 굿에 사용되는 각종 옷과 꽃들이 따로 전시되어 있어서 흥미있게
보았는데 한지로 만들어진 꽃 한송이 한송이가 모두 살아있는 듯 하다.
지하철 3호선 학여울역부근의 서울무역전시관에서 열린 제1회 사주박람회의 부대행사로
있었던 천신굿이였는데 사주박람회는 많은 실망을 안겨 주었다. 입장료도 턱없이 비싸게
책정되었으며 사주나 타로를 체험할 수 있는 부스들의 사용료도 일반적인 기준과 비슷한
만원으로 책정되어 특별히 이곳을 찾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는 평가를 주고 싶다.
비싼 입장료와는 달리 행사 안내 팜플릿도 부실했으며 부대행사로 열리는 굿거리에 대한
설명도 사주와 타로등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를 돕기 위한 어떤 형태의 배려도 없었다.
한마디로 수백년동안 우리의 전통적 사고의 범주와 수천년을 전해진 정신의 기저에 흐르는
무었인가를 찾으려던 기대는 사주박람회라는 이벤트성 행사에 의해 산산히 부서졌다. 다만
그 허전한 공백을 이영희 선생의 '천신굿'이 그나마 메워주어 감사하게 생각한다.'이런저런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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