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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월 16일 오늘의 역사
    오늘의 역사(歷史) 2007. 1. 16. 10:08

     
    1월 16일 오늘의 역사


    국내
      1584(조선 선조 17)  율곡 이이 별세
      1903  김영랑 시인 출생
      1907  대한매일신보, 한일조약 부인 칙서 게재
      1916  박목월 시인 출생
      1926  김봉룡.김성규, 작품 2점 파리만국박람회 입상
      1929  편강렬 의사 순국
      1944  독립운동가 이육사 시인 별세
      1946  미소공동위원회 예비회담 개최
      1948  오페라 <춘희> 처음 공연
      1956  영월선 철도 개통
      1965  동양 텔레비전, VTR에 의한 녹화중계 시작
      1995  북한 외교부 부대변인, 경수로 공급계약서에 한국형 명기 거부


    해외
      1920  미국, 금주법 시행
      1929  러시아의 혁명가 트로츠키 국외로 추방
      1957  지휘자 토스카니니 별세
      1966  미국 원폭 적재기, 기체 고장으로 스페인 상공에서 추락
      1969  소련의 소유즈 4호와 5호, 첫 우주 도킹 성공
      1970  미국, 핵실험으로 인한 우유 오염으로 50만 명의 유아 희생
      1974  중국과 월남, 파라셀 군도 영유권으로 분쟁
      1979  이란, 호메이니에 의한 이슬람 혁명, 팔레비 왕 이집트로 망명
      2000  리카르도 라고스, 칠레 대통령에 당선
      2001  갈라파고스 제도가 유조선 좌초로 극심한 오염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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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곡 이이와 퇴계 이황은 우리나라 성리학의 큰 산맥의 정점이다. 기호학파와 영남학파의
    뿌리였기도 하다. 율곡 이이가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조선왕조의 기록중에서 선조
    실록은 초반부가 임진왜란으로 멸실되어 임진왜란이 끝나고 다시 편집되었는데 이 실록을
    수정선조실록이라고 한다.


    수정선조실록에 나와 있는 율곡 이이의 별세에 대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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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조 판서 이이(李珥)가 졸하였다. 이이는 병조 판서로 있을 때부터 과로로 인하여
    병이 생겼는데, 이때에 이르러 병세가 악화되었으므로 상이 의원을 보내 치료하게
    하였다. 이때 서익(徐益)이 순무 어사(巡撫御史)로 관북(關北)에 가게 되었는데,
    상이 이이에게 찾아가 변방에 관한 일을 묻게 하였다. 자제들은 병이 현재 조금
    차도가 있으나 몸을 수고롭게 해서는 안 되니 접응하지 말도록 청하였다. 그러나
    이이는 말하기를,
     

    “나의 이 몸은 다만 나라를 위할 뿐이다. 만약 이 일로 인하여 병이 더 심해져도
    이 역시 운명이다.”
     

    하고, 억지로 일어나 맞이하여 입으로 육조(六條)의 방략(方略)을 불러주었는데,
    이를 다 받아 쓰자 호흡이 끊어졌다가 다시 소생하더니 하루를 넘기고 졸하였다.
    향년 49세였다.
     

    상이 이 소식을 듣고 너무도 놀라서 소리를 내어 슬피 통곡하였으며 3일 동안
    소선(素膳)을 들었고 위문하는 은전을 더 후하게 내렸다. 백관의 요우(僚友)와
    관학(館學)의 제생(諸生), 위졸(衛卒)·시민(市民), 그 밖의 서관(庶官)·이서(吏胥)·
    복례(僕隸)들까지도 모두 달려와 모여 통곡했으며, 궁벽한 마을의 일반 백성들도
    더러는 서로 위로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 백성들이 복이 없기도 하다.’ 하였다.


    발인하는 날 밤에는 멀고 가까운 곳에서 집결하여 전송하였는데, 횃불이 하늘을
    밝히며 수십 리에 끊이지 않았다. 이이는 서울에 집이 없었으며 집안에는 남은
    곡식이 없었다. 친우들이 수의(襚衣)와 부의(賻儀)를 거두어 염하여 장례를 치룬
    뒤 조그마한 집을 사서 가족에게 주었으나 그래도 가족들은 살아갈 방도가 없었다.
    서자(庶子) 두 사람이 있었다.
    【부인 노씨(盧氏)는 임진 왜란 때에 죽었는데 그 문에 정표(旌表)하게 했다.】
     

    저서로 문집과 《성학집요(聖學輯要)》·《격몽요결(擊蒙要訣)》·《소학집주(小學
    集注)》 개정본이 세상에 전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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