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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8일 오늘의 역사오늘의 역사(歷史) 2007. 1. 18. 09:41
1월 18일 오늘의 역사
국내
1898(대한제국 광무 2) 미국인에게 전기 철로부설권 허가
1905 화폐조례 공포(일본 화폐의 유통 공인)
1910 서울 인구 한국인 161,656명 일본인 26,316명 외국인 1,914명
1920 정안립, 조선고사 연구회 조직
1952 이승만 대통령, 평화선 선포
1954 독도에 국토 표시
1954 휴전협정에 따른 정치회담 예비회담(연락관 회의) 결렬
1958 6.25 때 파손된 한국은행 본점 재건 완료
1966 박정희, 연두교서에 선경제후통일론 제시
1967 해군경비정 56함, 북한군에 피격침몰, 전사 11명 부상 30명
1973 북한, 3대혁명소조운동 시작
1974 박정희, 남북상호불가침협정 체결 제의
1978 박정희, 선평화후통일 밝히고 교류확대.문호개방 촉구
1979 박정희, 남북최고당국자 회담 제의
1980 최규하, 남북총리회담 적극추진의사 표명
1985 민추협이 주축이 된 신한민주당 창당
1994 재야운동가 문익환 목사, 전 국무총리 정일권 별세
1995 폐연료봉 처리 관련 북-미 전문가 회담이 평양에서 개최
해외
1689 <법의 정신>을 지은 몽테스키외 출생
1871 근대 독일 통일 (독일제국)
1912 영국 탐험가 로버트 스코트, 남극점 도착
1919 베르사이유 강화회담 개막
1956 엘비스 프레슬리 첫 TV 출연
1969 일본 동경대 야스다강당에서 일본 공산당 경찰과 공방전
1982 20세기 최대 북극 한파가 미국을 강타
체감온도 영하 74도에 폭풍설을 동반 280명 사망
1983 중국 남서부 중경 부근 상공에서 중국 국내선 항공기 추락
1989 폴란드 자유노조 합법화 승인
1991 이라크,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미사일 공격
1997 남극대륙 단독횡단 성공( 노르웨이 탐험가 뵈르게 오우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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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후 종전처리에서 연합국은 독도를 분명히 한국의 영토로 명기했음에도 일본이
자기네 영토라고 우기자 1954년 이승만 정부는 독도에 국토 표기를 하고 초소를 설치했다.
그후 5월 1일에는 민간 수비대를 조직해서 독도에 주둔하게 했다.
독도는 행정구역상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에 딸린 섬이다. 면적 0.186㎢이며,
독섬으로 부르기도 한다. 본섬인 울릉도에서 남동쪽으로 90㎞ 해상에 위치하며, 동도(東島)·
서도(西島) 및 그 주변에 산재하는 36개의 바위섬으로 이루어진 화산섬이다.
동도·서도 사이에는 너비 110∼160m, 길이 330m의 좁은 수도(水道)가 자연적으로 이루어져
바닷물이 서로 통한다. 동도는 해발고도 98m, 서도는 해발고도 168m에 안산암·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응회암(凝灰岩)으로 이루어져 있다.
옛날부터 울릉도에서는 동도를 암섬, 서도를 수섬이라 하기도 한다.
독도와 울릉도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삼국시대 이전부터
울릉도는 우산국(于山國)이라는 독립적인 고대부족국가를 이루고 살았는데 그 영역은
가시거리 내에 위치한 독도를 포함해 울릉도 주변의 소도서에 이르렀을 것이다. 문헌들의
기록과 자연여건을 미루어 볼때 반농반어민 생활을 했으며 내륙에 비하여 문화적 수준은
낮았지만 신라사람들과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며 왕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워낙 육지와 떨어져 있어서 독립적인 생활에 익숙하였으므로 본토귀속을 거부하며 살았는데
신라때에 와서 하슬라주(何瑟羅州 : 溟州, 지금의 강릉부근)의 군주(軍主) 이사부(理斯夫)가
군대를 이끌고 정복하여 신라로 편입을 시킨것이 울릉도와 부속도서에 대한 최초 기록이다.
이 때가 서기 512년(단기 2845년, 壬辰) 신라 지증왕 13년으로 『三國史記』 권4 新羅本紀
智證麻立干 13年條 에 실려있는 내용이다.『삼국사기』에는 우산국은 溟州 正東의 海島로
鬱陵島라 불렸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일연스님의『삼국유사』에는 비슷한 내용의 기사에
▩陵島(今作羽陵)이라 기록되어 있다.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수록한 官報
황제국을 선포한 대한제국은 1900년 울릉도와 죽서도(竹島), 석도(獨島)를 관할하는 행정
구역으로 울도군을 설치한다는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정부의 관보에 게재했다.
종래 강원도 울진군에 속했던 울릉도를 ‘울도군’(鬱島郡)으로 승격시키고 새로운 울도 군수를
임명하고 울도군이 관리하는 구역은 울릉도·죽서도(죽도)와 독도(石島)로 명시 하였다. 이는
서양법체계상 관보에 게제하여 선포하는 것이 법적인 효력을 가지는데 따른 것이였다.★
남극 탐험을 놓고 '아문센'과 겨루던 '로버트 스코트'가 아문센보다 한달 늦은 1912년에
남극점에 도착했다. 이로써 남극점 도착의 영광은 '아문센'의 소유가 되었다. 역사는
1등이 아닌 2등에 대한 기억을 잘 해주지 않는데 이들에게는 또 다른 불행까지 겹쳤다.
2등이라는 씁쓸한 결과를 안고 귀환하던 중에 그와 그의 대원들 모두가 얼음에 빠져
숨지고 말았던 것이다.
지난 1월 10일 영국의 인더뉴스 등이 '로버트 스코트'가 사망직전에 부인과 아들에게 남긴
편지가 94년만에 공개되었다고 보도했다고 한다.
1911년 겨울에 네명의 대원들과 남극원정에 나선 로버트 스코트가 수없는 난관을 극복하고
1912년 1월 18일에 남극점에 도착했는데 그곳에는 경쟁자이던 노르웨이의 탐험가 '아문센'
이 한달 앞서 남극점을 정복하고 남겨놓은 편지였다.
최초 도전에 대한 실망을 안고 돌아오던 중에 동산과 영양실조등으로 최후를 맞았는데 그가
남긴 편지가 최근에야 공개된 것이다.
편지에서 스코트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부인을 '미망인'으로 호칭했으며 좋은 남편이
되지 못한 점에 대한 후회, 아들을 위해 재혼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의 시신은
식량이 비축된 베이스 캠프에서 11마일( 약 17킬로미터 )의 가까운 거리에서 발견 되었는데
최초정복 실패가 가져다 준 실망감이 그의 걸음을 무디게 했을 것이다.
그의 편지는 후손들에 의해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박물관에 기증되었다고 한다.'오늘의 역사(歷史)'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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