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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월 29일 오늘의 역사
    오늘의 역사(歷史) 2006. 12. 29. 12:53

     

    12월 29일 오늘의 역사
      

    국내
      1636  청태종, 한성입성
      1856  독립운동가 이범윤 출생
      1883  한-독-영 수교 조약 맺음
      1885  독립운동가 신숙 출생
      1910  회사설립을 허가제로 회사령 공포 시행
      1914  흥사단, 첫 대회 개최
      1945  서울서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 결성 위원장 권동진
      1967  우리 나라 처음으로 지리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
      1979  수도권 방위벽 준공
      1990  체신부, 서울방송의 무선국 가허가. 호출부호 HLSQ 출력 50KW
      1997  2002 월드컵 개최도시 10개시 확정


    해외
      1170  베케트 캔터베리 대주교가 왕의 자객에게 암살
      1890  미국 7기병대, 인디언보호구역에 있는 수(Sioux)족 인디언 수백명 몰살
      1911  손문, 남경혁명정부 대통령 취임
      1926  독일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 별세
      1949  프랑스와 베트남, 독립혁명 서명
      1983  미국 유네스코 탈퇴
      1989  바츨라프 하벨, 체코사상 최초의 비공산계 대통령에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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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이후 가장 큰 변화는 명나라의 급격한 쇠락과 청나라의 성장을 들 수 있을 것인데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은 전쟁으로 인한 뼈저린 교훈을 외교에 반영하여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를 적절하게 오가는 등거리 외교를 펼쳤다.

     

    그러나 명나라는 상국으로 청나라는 오랑캐로 비하하며 친명정책을 고집하던 보수진영은
    결국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왕으로 세운뒤 멸망의 길로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던 명나라에
    붙었다가 청나라의 칩입을 받았다. 광해군때만해도 청나라는 조선을 형제의 나라로 어느정도
    대우를 하였으나 병자호란을 계기로 주종의 관계로 변했으며 과도한 조공으로 백성들의
    피와 살을 발리게 했다.

     

    게다가 수많은 전쟁포로로 인해 사회문제를 야기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아직도 욕으로 남은
    환향녀(還鄕女)의 문제는 상당히 심각하기도 했다. 지금은 여자를 비하하는 표현의 욕으로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나와 청태종에게 삼배를 올리며 신하가 될것을 약속하는 수모를 겪었다.
    정권을 가진자들의 판단미스가 얼마나 큰 피해를 백성들에게 주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광해군이 10년쯤 더 집권을 하였더라면 우리의 위치는 훨씬 더 달라져
    있었을 것이다.

     

    임진왜란은 담배를 우리나라에 전했고 병자호란은 그 담배를 다시 중국으로 전하게 했다.
    우리나라에는 임진왜란이전에도 이미 담배가 들어 온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임진왜란을
    통해 들불같이 퍼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실록에는 광해군 8년인 서기 1616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원산지가 남미인 담배는
    유럽을 거쳐 일본으로 전해져 우리나라로 전파되었으므로 조선에서는 남초(南草)’라고 했다.

    이 담배가 병자호란을 거치며 자연스레 중국으로 전파되었다. 파병되었다가 조선에서 맛을
    들인 사람들이 중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청나라가 엄금하는 담배를 은밀히 찾기 시작했고
    조선의 상인들은 담배를 밀수하여 큰 돈을 만지기도 했다.

     

    나중에는 밀수의 도가 지나쳐서 양국간의 문제가 되기도 했고 한근이상 밀수를 하다가 발각
    된 자에게는 참수를 하자는 보고가 올라갈 정도였다. 그 만큼 담배의 밀무역이 성행했고
    문제가 되기도 했다는 반증일 것이다.

     

    엄격하게 담배의 재배와 흡연을 금지하던 청나라는 인조 24년 베이징으로 갔던 사신의 보고에
    병자호란때 조선침공의 선봉장이였던 용골대(龍骨大)가 "황제가 남초(담배)와 매를 좋아하니
    남초와 매를 들여보내라"고 부탁하는 장면이 나온다. 청의 황제는 이날 조선에 출정하여 새로운
    문물을 배워간 것이다.



    아름다움의 대표적인 상징이 '장미'다. 그러나 장미의 아름다움에는 또 다른 속성이 숨어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 '장미의 가시'이다.

     

    장미가시에 찔려 그로 인한 후유증으로 낭만파 시인 릴케가 유명을 달리했다. 가을의 어느날에
    이집트 여자친구가 그를 찾아왔고 그는 그 친구에게 줄 장미를 꺽다가 가시에 찔린 것이다.

     

    그래서 그의 묘비에는 "오, 장미여, 순수한 모순이여"라고 새겨져 있다고 한다.

     


    오늘의 역사를 포스트로 올리면서 가끔 연대를 착각하거나 사람의 이름이 틀려지기도 한다.
    특히 외국의 역사들에 대하여서는 모두 다 검증하기도 어렵고 내 지식의 한계도 있다가 보니
    더욱 그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법인데 블로거 "Chuck Lee"님이 미국인에 의해 저질러진
    야만적 학살사건인 Wounded Knee Massacre(운디드 니 대학살)의 주체였던 제7기병대와
    피해자인 인디언 수우(Sioux) 족의 영문표기에 대해 지적해 주셨다. 감사드린다.


    1890년 12월 29일에 미국인들에 의해 자행된 아메리카 원주민 대량학살 사건을  운디드 니
    (Wounded Knee Massacre) 대학살이라고 부른다. 당시 미국은 기병대를 동원, 500만명에
    달하는 인디언들을 무차별 학살하고 남은 약 25만명을 "보호구역"에 몰아 넣고 감시했다.


    이 즈음에 인디언들에게는 긍정적인 내세 사상을 담은 종교적 의식의 춤을 추었는데 전사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고 몰락해가는 인디언들은 이 춤을 통하여 자신들을 위험으로 부터 보호하고
    지금의 어려운 이승의 삶은 곧 천국의 행복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었다.


    백인들은 이 춤의식이 인디언들의 단결과 자신들에 대한 불복종운동으로 규정하고 금지시켰고
    인디언들을 이 명령을 따르지 않았고 글을 모르던 그들은 따를 수 도 없었다.


    보호구역 내에는 "상처입은 무릎"이라는 뜻을 가진 wounded knee라는 인디언의 성지가 있고
    그곳에서 "영혼의 성지"라는 의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그때 제 7기병대가 500여명의 병력으로
    1시간동안 총을 난사해 그곳에 있던 원주민 350명중 150명을 살육했다. 특별히 살육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성인남자뿐만 아니라 여자와 어린이도 무차별 난사해 죽였다.


    미국법원은 고소당한 사령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운디드 니(Wounded Knee) 학살에 참전했던 제이콥 W. 스미스는 미국이 필리핀을
    정복하기 위해 벌인 전쟁으로 필리핀에 준장으로 파견되어 또 한번 학살을 자행한다.


    그는 필리핀 원주민의 저항으로 매복중이던 1개 소대가 전멸하자 "10세 이상의 인간은 모조리"
    사살하라고 명령을 내렸는가 하면 "사마르촌(村) 내부를 짐승이 울부짖는 황부지로 만들라"고
    지시했다. 그는 또 "포로는 필요없다. 모두 죽이고 불질러라. 많이 죽이고 불지를수록 나는 기쁠
    것이다. 미국에 대한 적대감으로 무기를 들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죽여야 한다고"고 말했다.


    당시 미군은 필리핀 남부에서 원시적으로 살고 있던 모로족 600명을 여성과 아이들까지 단 한명
    남기지 않고 몰살했다.


    이러한 전쟁범죄를 지휘한 사령관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으로부터 축하격려를 받기도 했다.

     

    Wounded Knee Massacre의 살육당한 채 얼어붙은 원주민 시체들.

     


    Wounded Knee Massacre에서 이들을 땅에 파묻는 백인 살인마들.

     


    서양인, 특히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입은 피해에 대하여는 침소봉대(針小棒大)하면서도
    자신들이 끼친 해악에 대하여는 합리화 하거나 두터운 포장지로 덮어버리는 다분히 이중적
    인격을 지니고 있다.


    미국이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에 인권을 강요하면서 실상 자신들 내부의 이민자와 흑인등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등에는 무관심하다.

     

    게다가 수많은 학살들 (필리핀,베트남,한국,아프가티스탄,이라크등에서 자행된)에도 불구

    하고 한번도 기소된적이 없다. 미국의 돈에 의한 지배에 세계가 귀와 입을 닫고 있기 때문이다.


    "너나 잘~해!!"
    이 말은 미국에게 딱 맞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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