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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월 27일 오늘의 역사
    오늘의 역사(歷史) 2006. 12. 27. 00:13

     
    12월 27일 오늘의 역사


    국내
      1478(조선 성종 9) 한글창제의 공신, 정인지 별세
      1863(조선 고종 1)  언론인 남궁억 출생
      1879(조선 고종 16)  수원 용주사 중수
      1920  의열단원 최수봉열사가 밀양경찰서에 폭탄투척
      1945  모스크바 미·영·소 3상 회담서 한국 5개년 신탁통치 실시 결정 발표
      1948  소련군이 북한에서 완전 철수를 발표
      1962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 민정이양 절차 발표
      1967  삼각지 입체 교차로 개통
      1968  통일신라기에 축조한 제방인 영천의 청제비 발견
      1972  박정희 대통령, 제8대 대통령에 취임한 뒤 유신헌법 공포
      1978  정부, 대사면 단행. 5,378명 석방(김대중 석방)
      1990  교육방송, KBS에서 독립. 한국교육방송국(EBS)개국
      1990  대법원, 인명용 한자로 2,731자만 이름에 사용하도록 결정


    해외
      1404  티무르, 중국 원정 출발
      1571  독일 천문학자 케를러 출생(1571-1630)
      1822  프랑스 생물학자 루이스 파스퇴르 출생(1822-1895)
      1933  중국 감숙성에 지진. 3만명 사망
      1945  IMF·IBRD 창립, 달러가 세계 중심 통화로 됨
      1949  인도네시아 연방공화국 독립
      1968  중국, 대기권에서 수폭실험 실시
      1978  베트남 난민선, 마닐라만서 침몰. 200여명 사망
      1979  아프가니스탄, 바브라크 카르말 전 부수상이 쿠데타 일으킴
      2002  美종교단체 회사 클로네이드가 인간복제 아기 첫 탄생 발표

      2006  이라크 전 최고지도자 '후세인'사형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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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대왕대에 집현전 학사로 한글창제에 공이 컸던 정인지(鄭麟趾)가 별세했다. 성종은
    정인지를 왕사(王師)로 삼고자 했으나 대간들의 극심한 반대를 받았다. 그러나 성종도 뜻을
    굽히지 않았으나 이 해에 정인지가 죽어 왕사로 임명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1453년 판중추부사로 재직하며 수양대군에 협조하여 계유정난의 주역으로서
    좌의정이 발탁되었으며 1등 공신으로 하동부원군(河東府院君)에 책봉되었다. 1468년 (예종
    즉위년)에는 남이(南怡)의 옥사를 지휘하기도 했다.



    우리민족이 농경민족으로서 정착한지는 삼국시대를 한참 더 거슬러 올라 간다. 농경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안정적인 수자원의 확보였다. 그래서 위정자들은 농사용 수자원을 확보
    하기 위해 대단위 관개시설을 만들었다.


    우리들 곁에는 아직도 남아 있는 관계시설들의 흔적은 김제의 벽골제, 제천의 의림지, 밀양
    의 수산제등이 대표적인데 1968년 영천에서 통일신라기에 축조한 청못을 세운 유래를 적은
    청제비(菁堤碑)가 발견되었다.

     

     


    채약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모아 논농사에 이용하고자 두개의 야산을 막아서 만든 청못은
    제방의 길이가 약 240미터, 높이가 12.5미터로 전체 둘레가 2킬로미터쯤 된다.
    저수면적이 11만 입방미터로 저수량이 59만톤 정도여서 청못 아래 펼쳐진 30만평의 구암들
    일대가 아직도 이 청못을 중요한 용수원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 청못덕에 구암들은 가뭄을
    거의 타지 않는다고 한다.

     

     
    못의 서북편 얕은 산기슭에는 청못을 쌓은 내력과 고친 연유를 새긴 비석이 있다. 이 비석에
    의하면 청못을 처음 만든 것은 536년 경이라고 한다. 비석은 두개가 있는데 하나는 청제비
    (菁堤碑)라고 하고 다른 하나는 청제중립비(菁堤重立碑)이다. 청제비는 못을 쌓은 내력을
    새긴 비이고 청제중립비는 후일 수리를 하고 그 내력을 새겨둔 비석이다.
    이 두비는 일괄해서 보물 제 517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보물 517호 영천 청제비(菁堤碑) 여행기 읽기
    http://blog.daum.net/roadtour/3362444    ◀ 클릭

     

     


    1945년 12월 16일부터 모스크바에 모여 신생독립국 한국의 운명을 미국·영국·소련의 3개국
    외무장관이 결정지었다. ‘모스크바 3상(三相)회의’ 결과가 12월 27일 AP통신을 타고 국내에
    알려져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말았다.


    이 회의에서는 조선에  미·소공동위원회를 설치하여 임시정부를 세우고  미·영·소·중 4개국이
    신탁통치를 최고 5년 동안 실시한다는 내용인데 국민들은 열강들의 새로운 음모로 인식했다.
    김구선생의 임시정부 계열은 28일에 임정 국무회의를 열어 ‘탁치반대 국민총동원위원회’를
    설치했고  31일에는 수만명이 참가한 ‘서울시민반탁대회’를 열었다.


    미국의 힘으로 정권을 쟁취한 이승만은 처음에는 소극적이였다가 대다수의 국민들이 반탁
    쪽으로 기울자 마지못해 반탁정국에 뛰어들자 ‘결사반대’의 열기가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각종 전단이 난무했고 곳곳에 벽보가 붙었고 신문들도 반탁기사로 넘쳐났다.


    그러나 이듬해 1월 2일 소련의 지령을 받은 좌익이 갑자기 찬탁으로 돌아서면서 광복후의
    친일세력대 민족세력간의 대립구도가 좌우대립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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