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6일 오늘의 역사
국내
1504(조선 연산 10) 도성 내 원각사 폐지
1941 총독부, 조선임시보안법 공포 시행
1974 동아일보, 광고 무더기 해약사태 발생
1990 국군보안사령부 명칭 변경결정(국군기무사령부)
1996 신한국당, 단독국회 열어 안기부법 노동법 날치기 통과
해외
1542 일본,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출생
1716 영국 시인 토마스 그레이 태어남
1799 나폴레옹이 쿠테타로 통령정부 수립
1893 중국 초대 국가주석 모택동 출생
1898 퀴리 부인, 라듐 발견
1932 중국 감숙성에 진도 7.6의 강진. 7만명 사망
1939 터키 에르징칸에 진도 7.9의 지진. 3만명 사망, 10만명 부상
1941 미국-영국-중국, 군사동맹 체결
1957 제1회 아시아 아프리카 연대회의 열림
1972 미국 제33대 대통령 해리 트루 별세
1990 GCC정상회담 개막
1994 보리스 옐친, 체첸 공격 중지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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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조선의 수도로 정해지기 전인 고려시대부터 흥복사(興福寺)라는 이름의 고찰이
있었는데 조선조에 내려와 태조때 조계종(曹溪宗)의 본사가 되었다. 1464년(세조 10)에
중건하여 원각사라 이름을 바꾸었다.
도성 내의 3대사찰의 하나로 크게 번창하였으나 억불정책이 극에 달했던 1504년(연산군10)
폐사되어 장악원(掌樂院) 또는 연방원(聯芳院)이라는 기생방(妓生房)이 되었다가 1514년
(중종 9) 폐사의 재목을 공용건물의 보수에 사용함으로써 사찰 건물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후 원각사의 대종(大鐘)은 1536년 남대문으로 옮겨져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다. 그 터는
지금 파고다공원으로 되어 있으며, 국보 제2호인 원각사지 십층석탑과 보물 제3호인 원각사
비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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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때 보수동 책방골목을 서성이다가 장삿꾼의 꾐에 빠져 대망(대망) 전집을
월부(지금은 할부라고 표현을 하지만 그때는 월보라고 했다.)로 사게 되었다.
24권인가 22권인가 확실치 않은 그 책을 집으로 가져 갈 수 없어서 아버지가 외항선원인
친구집에 맡기고 하루에 한권에서 두권을 읽어 치웠다. 보름만에 다 읽고 친구에게 그대로
넘겼던 적이 있었다.
대망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일대기를 소설로 표현한 것인데 속표지에는 그 권에 나오는
지역들을 지도로 표시해 두어서 여간 편리한게 아니였다. 역사적 고증도 대단히 세밀해서
한때 푹 빠졌던 중국 무대의 무협지와는 또 다른 재미를 느끼게 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작은 성(城)의 성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작은 성들은 세력있는 큰 성에 연합하지 않으면 살아 남을수 없었는데 이에야스도 태어나
곧 바로 요시모도 집안으로 불모로 가게 된다.
그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아버지는 치정에 얽혀 심복의 손에 죽게 되고 구심점을 잃은
이에야스의 성은 완전히 망해서 성민들은 뿔뿔히 흩어지게 된다.
요시모도 집안에서 자라던 이에야스는 요시모도의 두공주중 맏이와 혼인이 결정되는데
사실 이에야스는 둘째공주를 더 좋아했지만 인질의 몸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게다가 정원을 거닐다 자신과 결혼하기로 되어있는 가메(龜)공주와 그녀의 사촌오빠가
정사를 나누는 장면을 목격하고 번민에 빠진다.
부정한 여자와 평생을 해야 하는가로 번민에 빠지지만 거부하게 되면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과 가신들, 죄없는 성의 백성들까지 도륙될것이 자명한 상황이다. 그는 고민
끝에 셋사이 도사로 불리는 스님을 찾아간다.
"평소에 짐을 많이 져본 당나귀라야 높은 산도 오를수 있는 법이다"
이 말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평생 동안 가슴에 간직하고 전국시대의 험난함을 헤쳐가는
큰 가르침이 되었다.
나 역시도 몇십년이 지난 지금도 이말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
오다 노부나가의 비호를 받으며 성장한 그는 마침내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정적이 되지만
늘 자신을 낮추는 처세로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사후 일본을 통일하고 막부를 창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