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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일 오늘의 역사오늘의 역사(歷史) 2006. 12. 20. 17:23
12월 20일 오늘의 역사
국내
1519(조선 중종 14) 정암 조광조(1482-1519) 별세
1550(조선 명종 5) 황해감사 주세붕, 수양서원 창건
1917 광복단 총사령 박상진, 일본군에 피체
1942 노기남 신부,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교황 비오 12세로부터 주교 서품
1955 공산주의 운동가 박헌영 처형
1965 한국 첫 다목적댐 완공
1974 육영수 여사 살해범 문세광 사형 집행
1979 계엄보통군법회의, 김재규에 내란죄를 적용해 사형 선고
1994 국내 최장 슬치터널(6,128m) 착공 5년만에 관통
1997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사면 복권
1999 국내최초 관측위성 ‘아리랑1호’ 발사
해외
69 제8대 로마제국 황제 비텔리우스 암살
1795 독일의 역사학자 레오폴드 랑케(1795-1886) 출생
1848 루이 나폴레옹, 프랑스 대통령에 취임
1960 월남, 민족해방전선(베트콩)결성
1961 유엔, 대기권평화이용안 가결
1968 미국 작가 존 스타인백 세상 떠남
1971 부토, 파키스탄 대통령에 취임
1973 스페인 블랑코 수상 피살
1981 폴란드, 계엄하 유혈사태로 2백 명 사망
1989 미국, 파나마 침공
1999 마카오, 442년 만에 중국에 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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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9년(중종 14) 12월 20일 성리학의 토대위에 유교적 이상사회를 꿈꾸었던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가 유배지 능주에서 사약을 받고 숨졌다. 그의 나이는 약관인 38세였고
벼슬길에 접어던지 5년만의 일이였다.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중종의 눈에 들어 벼슬길에 나선 그는 혁신적인 개혁을
시작했고 그의 개혁정책은 기득권 세력인 훈구파의 극심한 반발을 불러왔다. 끝도 없는
개혁파의 상소와 훈구파의 상소에 중종도 어느듯 지치고 말 정도였다. 그가 정계에 있는
5년동안 265차례의 상소를 올렸는데 그의 상소마다 훈구파와의 끝없는 논쟁이 있었다.
마침내 위기의식을 느낀 훈구파는 조광조를 제거할 음모에 착수하게 되는데 나뭇잎에
과일즙으로 ‘주초위왕(走肖爲王)’ 글자를 새겨 벌레가 파먹게 하고는, 민심인 것처럼
조작해 그 소문을 퍼트렸다. ‘주초위왕(走肖爲王)’ 의 뜻은 주(走)와 초(肖)를 합한 조(趙)
씨가 왕이 된다는 것이니 마침내 왕도 조광조의 지지를 철회하고 만다.
공신들로 이루어진 훈구파는 1519년 10월에 기묘사화를 일으켜 조광조를 처단한다.
역사적인 면에서 조광조에게는 '개혁가'와 '이상주의자'라는 상반된 평가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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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북한의 외상 겸 부수상이라는 막강한 권력의 자리에 올랐던 박헌영이 1955년 평안북도
철산군의 산골에서 고문을 받다가 처형되었다.
박헌영는 1920년 일본 동경을 거쳐 중국으로 망명해 프랑스 조계에 있는 사회과학 연구소에
들어가서 본격적인 사회주의에 대한 공부를 하고 공산주의 운동에 매진했다.
그 후 1921년에 중국의 안동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평양의 법원에서 1년 6개월의 형을
받고 복역, 1924년 1월에 출옥한 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기자로 잠시 일하기도 했었으나
사회주의 경력 때문에 해고되었다.
해방 후 박헌영은 공산당을 재건하여 여순 반란 사건, 대구폭동사건등을 일으켜 사회 불안을
야기했다. 미군정은 공산당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핵심공산당 간부에 대한 체포령으로 검거가
임박하자 1946년 9월 5일 동료들과 함께 관속에 들어 가서 누운 채 영구차 행렬로 자신들을
위장해 북한으로 탈출했다.
이후 남조선 노동당을 원격지도하며 외상 겸 부수상이라는 중요요직에까지 오르기도 하지만
남쪽에서만 세력기반을 가지고 있었던 김일성의 남로당 숙청으로 이날 처형당했다.'오늘의 역사(歷史)'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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