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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산선문을 찾아서(8)- 강릉 굴산사지
    기획여행기 2006. 11. 30. 16:02

    기획특집1-구산선문을 찾아서(8)- 강릉 굴산사지


    반디불의 똥꼬 기획특집1


    구산선문을 찾아서(8)

     

    강릉 사굴산 굴산사지를 찾아서

     

     


    인도의 불교가 중국,한국,일본으로 전해지면서 풍토에 따라 많이 변하기도 했는데
    동북아의 3국 중에서 우리나라만의 특징이라면 선(禪)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일본도 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통적인 방식의 선이 중심이 되는 수행에 있어서
    이미 선이 사라진 중국이나 왜곡된 선으로 발전된 일본을 압도한다고 하겠다.


    우리나라의 불교가 오늘처럼 선불교의 중심에 서게 된데에는 신라의 5교 9산중에서
    선을 근본으로 추구하던 9산의 역활이 매우 컷다고 할 것이다.


    신라시대 불교는 경교(經敎)를 공부하는 종파가 다섯(5), 선법(禪法)을 닦는 갈래가
    아홉(9)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이들 불교의 모든 교파를 합쳐서 5교9산이라 부른다.


    5교와 창시자는 다음과 같다.
    (1) 열반종(涅槃宗)-보덕
    (4) 화엄종(華嚴宗)-원효, 의상
    (2) 율 종(律 宗)-자장율사
    (5) 법상종(法相宗)-진표율사
    (3) 법성종(法性宗)-알수없음


    한창 흥하던 신라불교가 신라말 혜공왕 이후로 국가가 혼란해지면서 침체되었으나
    삼국통일후 중국에서 선종(禪宗)이 들어오자 불교계는 다시 활발한 양상을 띠게 되었고
    교학(敎學) 위주였던 불교계에 ‘불립문자 직지인심 견성성불(不立文字 直指人心 見性成佛)’
    이라는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선지(禪指)가 풍미하게 되었다.


    침체되어 가던 불교계로서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때부터(통일신라) 고려초기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9개의 선문(禪門)이 개창되었으니 이를 일컬어 9산선문(九山禪門)
    이라고 한다.


    9산선문중 사굴산 굴산사가 가장 왕성하였다고 한다.
    각 선문의 이름과 창시자 및 창시사찰은 다음과 같다.


    (1) 사굴산문-범일-강원 강릉 굴산사
    (2) 수미산문-이엄-황해 해주 광조사
    (3) 봉림산문-현욱-경남 창원 봉림사
    (4) 성주산문-무염-충남 보령 성주사
    (5) 사자산문-도윤-강원 영월 흥녕사
    (6) 동리산문-혜철-전남 곡성 태안사
    (7) 가지산문-도의-전남 장흥 보림사
    (8) 실상산문-홍척-전남 구례 실상사
    (9) 희양산문-지선-경북 문경 봉암사


    이 중에서 황해도 해주에 있었다는 광조사는 남북통일이 되기 전에는 가볼 도리가 없고
    희양산문 문경 봉암사는 입구까지 갔다가 사월초파일 외에는 출입이 안된다 하여 되돌아
    왔으니 그 두군데는 인연이 있으면 가보기로 마음 먹을 밖에 도리가 없다.

     

     


    오늘은 그 중에서 가볼수 있는 일곱군데중에서는 마지막으로 들린 곳이다. 강릉에 있는
    굴산사지가 그곳인데 9산선문중에서 가장 번성했다고 하는 곳이다. 성주괴공은 불교의
    우주관인데 여기도 그것을 실증하는 듯 지금은 가장 피폐해진 곳의 하나다.


    사실 이곳보다 더 피폐해진 곳은 경남 창원의 봉림사지인데 그곳에 비하면 좀 나은듯
    하지만 예전의 웅장함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법당이 있었음직한 평지에는 이제
    익어가는 가을볕만 가득했다.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보물  제86호로 지정된 굴산사지당간지주(掘山寺址幢竿支柱)뿐이고
    여기서 발굴된 몇개는 박물관에 가 있다고 한다. 이 당간지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당간지주여서 그 옛날 굴산사의 위용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곳은 신라 선종의 5교 9산 중 사굴산파가 시작된 절인 굴산사가 있었던 자리이다.

     

     

     
    당간지주는 절에 행사가 있을때 정 입구에 당(幢)이라고 하는 깃발을 걸어 두는데 이런
    깃발을 걸어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고 한다. 요즈음으로 치면 국기계양대쯤 될것이다.
    이 당간을 지탱하기 위하여 당간의 양쪽에 세우는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대부분의
    당간지주는 사찰의 앞에 세워지며 사찰의 신성한 영역을 표시하는 역활도 한다.


    가끔 대웅전앞에도 이런 당간지주를 볼 수 있기도 할터인데 그것은 절에서 행사가 있을때
    괘불을 내걸기 위한 것이다.

     

     


    굴산사지의 당간지주는 아랫부분이 묻혀 있어서 기단의 구조등을 확인할 수 없다.
    두 지주의 4면은 아무런 조각도 없이 밋밋하며 돌을 다듬은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당간을 고정시킨 구멍은 상,하 두개씩 뚫려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소박하지만 규모가
    워낙 거대하여 웅장함에 압도 당한다.


    강릉의 사굴산문 굴산사는 신라 문성왕(文聖王) 9년(847) 범일국사(梵日國師)가 창건
    하였는데 범일국사가 당나라 유학시 왼쪽 귀가 떨어진 승려가 고향에 자신의 집을
    지어달라는 청으로 지었다고 전해 진다.

     

     

    굴산사지 바로 옆에는 농가 몇호 모여있는 작은 마을이 있는데 당간지주의 위치와 마을의

    위치로 미루어 보아 아마 이 마을도 예전에는 굴산사의 경내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마을에는 밤나무 숲이 있는데 자그마한 전각 하나가 석불을 모시고 있다.

     

     

     

    무슨 사연인지 석불의 앞 얼굴을 완전히 갈아 내었다. 고의로 훼손하였는지 아주 말끔히

    불상의 앞면을 갈아내버렸다.

     

    정으로 쪼았다면 정 자국이라도 남을 것인데 이 불상은 마치 기계로 갈아낸듯 너무

    말끔히 갈아내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客이 알지 못하지만 석불과 밤나무, 훼손한 당사자는 알일~

     

    신라때 9산 선문중에 가장 번성했었다는 사굴산문 굴산사의 옛터를 떠나는 마음도

    새벽안개속을 헤매는 것처럼 착잡하다.

     


    찾아가는 길


    강릉IC → 학산리 → 굴산사지 (8km, 10분 소요)


    사실 굴산사지를 찾아가는 길은 그다지 쉽지는 않다. 동네길을 지나야 하고 농로도
    지나야 하는데 마주오는 차를 조심해야 한다.


    강릉시내에서 관동대학교 정문을 지나 구정을 지나 학산까지 가다가 구정초등학교앞
    큰 다리를 만나면 오른편으로 들어가야 한다. 여기서 부터 조금 가다가 교행이 불가능한
    농로를 가야하므로 차라리 차를 큰길에 두고 걷는 것도 센스~~

     


    지난 특집보러가기

     

    구산선문 이란? (1)

     http://blog.daum.net/roadtour/2080376 <-- 클릭

     

     

    구산선문을 찾아(2)-곡성 태안사

    http://blog.daum.net/roadtour/2080831 <-- 클릭

     


    구산선문을 찾아(3)-보령 성주사

     http://blog.daum.net/roadtour/2237913  <-- 클릭

     

     

    구산선문을 찾아(4)-장흥 보림사

     http://blog.daum.net/roadtour/2238951 <-- 클릭

     


    구산선문을 찾아서(5)-남원 실상사

     http://blog.daum.net/roadtour/2239914 <-- 클릭

     


    구산선문을 찾아서(6) -창원 봉림산문 봉림사

    http://blog.daum.net/roadtour/2240320 <-- 클릭

     

     

    구산선문을 찾아서(7)- 영월 법흥사

    http://blog.daum.net/roadtour/2240595 <--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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