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이 더 추울 아이들이런저런 이야기 2006. 11. 16. 09:01
얼마전에 설악산 봉정암을 갔었다. 백담사에서 7시간 가까히 산길을 걸어서
마지막 고비라는 깔딱고개 앞에 섰다.
너무나 경사가 심해서 숨이 깔딱~ 하고 넘어갈 정도라는 뜻일게다. 그러나
아직 그곳에서 숨이 깔딱~하고 넘어갔다는 사람은 없다. 실상은 봉정암을
마지막 목표로 길을 나선 사람에게는 심리적으로 마지막 힘듬이라는 것이
더 클 것이다.
그 힘든 경사길을 부처님에게 바칠 공양물을 사각의 큰 상자에 담아서 OPP
포장용 테잎으로 어깨끈을 만들어 등에 지고 오르는 아주머니 한분이 눈이 뜨였다.
아들이 수능을 잘 치게 해 달라는 염원이 담긴 그 공물의 운반도 운반이지만
10월의 차가운 설악산의 밤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사리탑앞 노천법당에서 밤새
기도를 하는 간절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느껴졌다.
지론이 부처님에게 개인적인 소망을 간구해서는 아니된다는데 있기는 하지만
나 아닌 누구, 그것이 자식이던 남편이던 아내이던 간에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렇게 절실히 간구해본 적이 없는 나는 가슴이 짠해져 왔다.
실상은 나에게 향한 바램보다 가족, 특히 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지극한 마음이
세상의 어떤 진실보다 더 진실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나는 내 아이들을
위한 절실한 기도를 해본적이 없다. 부모를 위해서도 아내를 위해서도....
심지어는 내 자신을 위해서도 말이다.
오늘은 수능일이라고 출근하면서 스쳐 지나는 고등학교 앞에는 격문이며 찹쌀떡
장사며 따듯한 음료를 제공하는 봉사단체등이 얼려 마치 축제장 같다.
해마다 수능날만 되면 추운것이 상례인지라 올해는 시기를 좀 땡겼다고 하지만
오늘도 역시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이라고 한다. 다행히 예년처럼 얼음이 쨍하게
얼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가을을 벗어나지 못한 육신이 더 한기를 느낀다.
학교 대문에서 다섯걸음 정도 지난 학교의 벽돌담에 쪼그리고 앉은 아주머니 한분이
눈이 들어 왔다. 손에는 조금 알이 굵은 단주를 굴리며......
자식과 같이 고통을 나누려는 그 마음이 느껴져서 마음이 짠해진다.
그저 조금 추워졌다고 차에 오르자 말자 의자에 따뜻한 열선 스위치부터 넣은 내가
부끄러워 졌다. 지금은 바깥의 추위보다 몇배는 더 마음이 추울 아이들~
그들이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고개가 아니고 앞으로 닥쳐올 더 많은 고갯길을
잘 넘기 위한 작은 고비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이런저런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설(小雪) (0) 2006.11.23 심수봉의 가을 소나타 (0) 2006.11.19 우라질 놈의 첫눈 (0) 2006.11.07 삶의 시계 (0) 2006.10.30 10월 26일의 단상 (0) 2006.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