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라질 놈의 첫눈
아무래도 나는 아침형 인간이 되기는 틀린것 같다. 어제는 출장 다녀온 탓도 있었지만
내일 아침에는 6시 땡하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동네 목욕탕에 가서 뜨끈한 탕에 몸을
담그고 말리라 다짐하고 평소보다 두시간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오늘 아침에도 역시
핸드폰의 모닝콜이 울리자 말자 전원부터 끄고 말았다.
부부란게 닮아 가는 탓인지 20년 가까히 살 맞대고 한 침대를 사용하다 보니 마누라도
아침형 인간과는 거리가 멀어져서 잠들기 전에 하는 "내일은 여섯시에~" 라는 약속은
번번히 공수표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도 신기한 것은 출근에 지장이 없을 만큼의 시간에 습관적으로 일어나게 되는데
그 시간이라는 게 꼭 6시 45분 경이라는 것이다. 결국은 하루중에 가장 보람있는 시간이
나에게는 핸드폰의 알람이 울기 시작한 6시 정각부터 45분간일 것이다.
'꼬끼오~~~~'
도시, 내가 사는 곳에 대한 표현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하다. 나는 행정 명칭이 市이니
도시라고 하는데 딸들은 시골이라고 한다. 이를 평균 잡아 보면 소도시라고 하면 될듯하다.
아뭏던 이 도시에서 닭 울음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저 놈이 먼저 우네요" 마누라는 잠결에
먼저 울린 알람 소리를 못들었던게 분명하다. 마누라의 머리에 깔려 쥐가 나려는 오른 팔을
해방시킬 절호의 찬스다. 나는 팔을 빼며 한마디 했다. "여섯시 지난지 한참 됐어!"
"까아아아~~~~악"
출근을 위해 머리를 빨다가 (이 머리를 빤다는 용어도 늘 딸래미들의 성토 대상중의 하나인데
아이들은 늘 감는다가 맞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어릴쩍에 늘 머리를 사분..그것도 빨래비누로
감았기 때문에 빠는게 맞다고 우긴다.) 무슨 큰일이라도 났는가 하고 후다닥 거실로 나오니
거실의 통유리에 큰 대자(大字)로 붙어서 펄쩍거리고 있다.
"누누누~~~~눈이다"
"상아야! 슬기야! 자은아! 눈이다..첫눈이다!"
마흔 후반의 마누라가 강아지 마냥 펄쩍 펄쩍 뛰는 모습을 보니 미소가 빠진 어금니 사이로
실금 실금 새어 나온다. 둘다 고향이 부산인 탓으로 눈구경이 쉽지 않았던 탓인지 눈만 오면
다반사로 있는 풍경이다. 반면에 아이들은 해마다 눈이 제법 오는 이곳에 적응이 되었는지
마누라의 채근에 슬며시 실눈을 어렵게 떠드니 피식 고무풍선 바람 새듯이 다시 눈까풀을
덮어 버리고 만다.
"와~~~ 첫눈이다!"
아이들이 모두 일어나 아침시간을 풍요롭고 기름지게 만들어 주리라던 기대는 일 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머쓱해진 두사람만 마주보고 피식 눈웃음을 주고 받고 만다. 나도 대충 머리의
물기를 닦고 밖을 내다보니 우선 길은 말짱하다. 회사가 있는 곳은 좀더 시골인데다 회사에
닿기전에 언덕을 넘어야 하는데 이 언덕은 눈만오면 항상 정체가 되는 구간이고 차체가 미끌
하는 아찔한 구간이기도 해서 눈만오면 늘 이 구간의 풍경이 먼저 떠오르는 것이다.
생활이라고 하는 것이 늘 사람을 무미건조하게 하는 힘이 있는 듯 하다. 오늘은 그나마 길은
멀쩡하지만 겨울에는 늘쌍 길이 눈으로 얼어 붙어서 아침에 눈이 와 있으면 우선은 회사까지
그 고초의 길이 먼저 생각나서 미간사이로 한가닥의 먹구름이 끼이곤 하는 것이다.
"니가 얼라가?"
이 한마디가 목젖을 타오르는 것을 억지로 눌러 내린다. 5층짜리 빌라의 꼭대기 층은 눈이
온다거나 비가 온다거나 아침시간이나 저녁시간에는 조망이 썩 좋은 편인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을 오르는 일이 파김치의 몸으로 귀환하는 식구들에게는 조금의 스트레스도 된다.
내 고집으로 장만한 꼭대기층이라 그럴때는 조금 미안함이 앞서기 때문인데 오늘처럼 눈이
내린 날 아침에는 마누라도 탁월한 선택이였음을 인정하고는 하는 것이다.
"어! 이거 무슨 소리예요?"
"무슨 소리?"
"툭... 툭... 툭... "
아뿔사! 거실 한곁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급박한 아침 시간에 이게 웬 물벼락...
많이도 아니고 한두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 때문에 아직 기상전인 반장깨우고 옥상에 올라서
살펴보고 한바탕 난리를 쳤다. 우리집 뿐만 아니고 5층에 사는 4가구가 공통적으로 조금씩
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봄에 했던 방수공사가 부실했던 모양이다. 하기는 지은지 10년을
넘겼으니 그럴법도 하련만 방수공사 했던 곳이 들떠 일어나는 것을 보니 부실공사는 확실하다.
이사 가버린 공사를 감독했던 전임 반장에게 원망을 퍼부어 놓고 서둘러 집을 나왔다.
아마추어 무선을 취미로 가진 내가 안테나 설치에 편하다고 꼭대기층을 고집했던 부분이
조금 찔려서 그 부분까지 비화되기전에 서둘러 출근을 핑계로 후다닥 나오고 말았다.
날 좋은 날 아무래도 방수액 한말쯤 사다가 발라야 겠다.
첫눈은 왜 와서 사람을 이리 심란하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우라질 놈의 첫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