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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시계
지난 주는 상가에도 갔었고 결혼식에도 갔었다. 돐집도 있었지만 상갓집 문상과 겹쳐
지인을 통해 금반지 하나를 보내는 것으로 대신했다.
지난주는 결혼 19주년이 있었던 주간이라 결혼식에 하객으로 가서 새롭게 출발을 다지는
새내기 부부를 보며 19년동안의 결혼생활도 조금은 반성해 보기도 했다.
내가 돌려온 19년의 시간과 저들이 이제 막 돌리기 시작한 시간의 차이란 무었일까?
19년전에도 내가 서 있었던 떨리고 땀나고 어지럽던 그 자리 이후의 시간들도, 지금의
첫 출발하는 저들의 시간도 결국에는 어느 시점에서 멈추고 말리라는 공통점 이외에는
그다지 다를것은 없을 것이다.
같은 날 문상과 돐잔치의 초대를 받고 나는 문상은 직접 가는 것으로 돐잔치는 자그마한
정성만 보내는 것으로 했다. 그리고 상갓집을 가는 내내 태어남과 죽는 다는 것의 시간차에
대해 골똘하게 생각해 보았다.
언젠가의 글에서도 잠깐 언급을 했지만 돐이라는 것은 태어나서 일년동안 무사히 잘 자라
주었음을 축하 하는 자리이기는 하지만 기실 따지고 보면 태어나면서 받은 삶의 시계에서
1년 만큼을 돌려버린 것이다. 살아야 할 몫에서 그만큼 차감을 한 날인 셈이다.
그래고 우리가 돐을 축하하고 생일을 챙기는 뜻은 1년 365일 동안 기쁨을 주었기 때문이고
그 감사함의 표현일 뿐인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향해 달리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절대로 돌아올 수 없고
뒷걸음으로 달릴 수도 없는 이 길은 아무리 부자라도 아무리 가난해도 생명이 부여해준
삶의 시계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멈추는 시점을 절대로 알 수 없다는 것...
태어난 시간은 몇년 몇월 몇일 몇시까지 정확이 알 수 있지만 죽는 순간은 그 아무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간간히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리라는 사실을 잊어 버린다.
마치 영원히 살것처럼 모으고 지키고 하는 것이다.
어느날인가 한적한 시골로 산책을 나갔다가 버려져 멈춘 벽시계를 보았다. 따스한 가을
볕에 앙상히 말라가는 옥수수대로 만들어진 담 넘어 축축한 잡풀들속에 버려진 시계는
4시 43분쯤을 가르치고 있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다가 죽음을 맞은 후에 남은 사람들은
나를 무었으로 기억할까?. 시계는 버려졌을 망정 4시 43분을 가르키고 있다. 아마도 그
시간쯤에 이곳을 지나칠 사람들은 버려졌을 망정 잘 맞는 시계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말로그 시계인 만큼 앞뒤로 5분이나 10분쯤은 아직은 쓸만한 시계라고 생각할 것이다.
저 시계는 멈추어 있어도 최소한 하루에 두번은 들어 맞기도 하고 새로운 임자를 만나면
잘 수리하고 건전지를 갈던가 태엽을 감아주면 언제 그랬냐는듯 째깍 거리게 될 것이다.
문제는 우리들의 삶의 시계다. 시계는 태엽을 안감으면 언제쯤 멈출것이다... 건전지를
교체하지 않으면 언제쯤 멈추게 될것이다라고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우리 삶의 시계는
언제 멈추게 될런지 아무도 모른 다는 것이다.
가끔은 삶의 시계가 언제 멈출지 아는 경우도 물론 있기는 하다. 두 해 전쯤에 지인 하나가
감기가 도통 떨어지지를 않아서 큰 병원에 갔다가 폐암진단을 받았다. 이미 4기의 말기로
잘해야 6개월 산다고 했다. 남은 6개월 동안 별의별 치료를 다했지만 5개월만에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그런 의학적인 진단이 아니라면 누구도 자신의 시계는 멈추지 않고
영원히 잘 돌아갈 것이라는 착각속에 빠져 산다.
살아가면서 느낀다. 말없이 잘 돌아가는 삶의 시계라도 가끔 태엽을 감아주어야 한다는 점을
최근에야 느끼고 있다. 삶의 시계에 태엽을 감아준다고 더 오랫동안 째각거리며 잘 돌아가리란
생각은 없지만 삶의 시계가 돌아가는 소리를 느낌으로써 좀 더 삶이 현실적이 되리란 건 안다.
삶이 무었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삶을 잘 닦는 것인지 등을 가만히 생각해 보는 것이라거나
가만히 앉아서 나를 보려는 노력의 시간을 가진다는 것들이 나에게 있어서의 삶의 태엽을
감는 일이다.
가을이 깊어졌다. 이제 한해도 두어달 남았다. 계절이 바뀌는 이 즈음에는 부고도 자주 오고
결혼식 청첩장도 우편함을 매주 채우고 있다. 회사 게시판에는 OO기사의 딸 돐잔치, XX대리의
아들 백일잔치등이 한달에도 서너번 내어다 붙는다.
그럴때마다 나는 또 생각하게 될것이다. 삶이란 무었이며 죽음이란 무었인가의 문제를 말이다.
지갑은 자꾸만 비어 가겠지만 내 삶의 시계는 더 힘차게 째깍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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