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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러 김일, 그를 추모하며....이런저런 이야기 2006. 10. 26. 16:27
레슬러 김일, 그를 추모하며....낙동강이 700리 기나긴 여정을 마치고 마침내 몸을 푸는 구포가 고향이다. 그곳에서도
조금 변두리인 우리 동네는 목수집에만 유일하게 테레비젼이 있었다. 나무 케이스에다
문도 양옆으로 여는 흑백 테레비젼은 온 동네사람들을 그 앞으로 불러 모았다.
어른 키를 조금 넘는 블록담이 있고 그 담위로 감나무 한그루가 있어서 어른들에 밀려난
아이들은 담위에 감나무위에서 눈이 튀어 나올 정도로 힘을 주어야 했다. 그래도 볼륨만은
우리들을 위해서 좀 크게 키워 주었다.
이 목수집에 사람이 모이는 날에는 여자들이 주로 모이는 날과 남자들이 주로 모이는 날,
그리도 남녀노소 구분없이 모이는 날이 확연하게 달랐다. '여로' 같은 연속극이 있는 날은
여자들이 옹기 종기 모여서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를 냈고 축구같은 스포츠의 중계가
있는 날은 남자들이 주로 모여서 환호와 탄식들을 쏟아 내었다. 故 박정희 대통령의 연설
같은 것이 있는 날은 대부분 남녀의 구분없이 목수집 마당으로 모여서 깔려진 멍석의 여기
저기에 앉기 마련이였다.
그 중에서도 아이들에게 제일 인기가 있었던 푸로는 역시 프로레스링 경기 중계였다.
특히 김일 선수가 나오는 레슬링 경기는 남녀노소가 모두 환호작약했다. 처음에 밀릴때는
모두들 가슴을 조리며 한숨을 뱉다가 마지막에 나오는 예의 박치기 장면은 모든 사람들의
환호를 자아 냈고 삶에 찌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특히 그런 날은 그냥 가기에 미안한 사람들이 감자 몇 개, 고구마 몇 개, 옥수수 몇 개등으로
자신의 형편에 맞게 들고가서 목수집에 고마움을 표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여서 나는
이맘때 즈음엔 잘익은 탱자를 따서 한살 위였던 목수집 아들에게 주기도 하고 비워진 밀가루
포대로 튼실한 딱지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그래야 미안함도 들고 눈치도 덜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일본 선수들과 싸울때는 그야말로 모두가 하나가 되어서 응원을 했다. 그는 대개의
경우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로 인해 느끼는 카타르시스야 말로 선물중의 선물이였다.
가끔씩은 백인들과도 경기를 했는데 덩치에서 결코 그들에 밀리지 않는 당당한 모습으로 우리
동양인도 서양사람들과 나란히 할 수 있구나 하는 자긍심 또한 그는 선물해주었다.
그가 영면에 들었다고 한다. 그의 명복을 빈다.
프로레슬러 고 김일님.
당신은 우리들의 슈퍼맨이였습니다. 우리를 즐겁게 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당신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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