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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디오스타', 추억의 단근질이런저런 이야기 2006. 10. 16. 16:41
영화 '라디오스타', 추억의 단근질
라디오...매력있는 상자
내가 처음으로 라디오를 가지게 된 것은 중학교 3학년이던 1973년 겨울이다.
당시는 제법 시골에 속했던 구포에서도 좀 떨어진 집이였는데 우리 동네를
통털어 라디오를 가진 집이 서너집, 흑백 텔레비젼을 가진 집이 한 집 있었다.
우리집에서 유일하게 자랑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엄마가 열심히 곗돈을 부어서
장만한 세이코 태엽감는 벽걸이 시계였다.
흑백텔레비야 그렇다치더라도 라디오라도 하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했다.
구포를 통털어 남자 중학교가 없던 터라 뺑뺑이를 돌려서 40분이나 차를 타고
가야하는 서면으로 중학교를 다녔는데 소풍으로 금정산을 갔다가 동래 온천장
부근에서 눈이 번쩍 뜨였다.
'광석라디오 키트'
로켓이 멋지게 그려진 사각 상자는 마침내 라디오를 가질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당시 우리집의 형편에 맞춘 내 용돈으로는 거금을... (조금의 삥땅도 있었다) 주고
사가지고 와서 공고 전자과에 다니던 앞집형의 도움을 받아가며 만들었다.
안테나와 바리콘, 그리고 광석검파기와 이어폰으로 극히 간단한 회로로 만들어진
이 광석라디오는 밤이면 골방인 내방을 으리으리한 궁궐로 바꾸어 놓고는 했다.
들리는 소리의 절반은 쉐에에~~~ 하는 잡음이였지만 처음으로 내가 만든 라디오가
토해내는 "사할린 동포에게"라는 프로를 아직도 잊지 못하게 한다.
전기도 필요없고 건전지도 필요없이 1미터쯤의 전선 한가닥을 안테나로 들리던
광석라디오... 그 이후 라디오는 내 영혼을 담아두는 상자가 되었다.
지금은 내가 제일 아끼는 물건의 하나로 자리 매김한 티볼리 라디오.저 코발트빛깔의 스피커를 통해 듣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늘 나를 풍요롭게 한다.
저 상자속의 그들은 모두 스타다. 나의 스타......
이준익... 그는 그를 좋아 한다.
'왕의 남자'로 단번에 최고 감독의 영예를 받은 이준익감독의 라디오 스타는 그의
전작과 같이 이번에도 전체를 흐르는 줄거리가 "그는 그를 좋아 한다" 이다.
그는 그를 좋아 한다라고 하면 대뜸 사람들은 "동...성...애"를 먼저 떠 올린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는 그가 그를, 그녀가 그녀를 좋아한다는 것은 판도라 상자의
비밀스러움과 같다. 좋아한다는 말이 주는 평이한 어감이 왜 하필이면 동성간에는
금기시 되는 것일까? 이준익...그는 항변중인지도 모르겠다.
안성기... 과거는 거미줄이다.
살다보면 많이 만난다. "내가 말이야 예전에는~", "왕년에 나도 한가닥했어!" 등의
멘트를 심심하면 날리는 사람들을 말이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무슨 생각이 먼저
드느냐하면 "언놈은?"
미래라는 것은 항상 안개속에 있는 이정표와 같다. 어렴풋하게 그려진 화살표를 따라
고개를 돌려보아도 역시 그 쪽도 안개속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나온 과거만은
제법 또렷하게 영상을 남기고 있기에 사람들은 항상 미래보다 과거에 집착한다.
그가 맡은 캐릭터는 과거에 집착하는 연애인의 매니져 역활이다. 극중에서 나오지만
박중훈이 맡은 가수의 역활은 그다지 실력있는 것이 아니라 매니져의 로비와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고 키워졌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우리나라 연예계의 통상적인
불합리를 어느 정도 비웃고 있다. 역시 이준익 감독의 영리함이 돋보인다.
완전이 한물간 가수의 매니져로서 그는 옛날의 영광을 재현하려고 한다. 물론 그도
그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그는 그 과거에서 떠나지 못한다.
그는 박중훈과 자신의 사이를 일정하게 테두리 쳐두고 그 속에서 만족하고 즐거워하고
괴로워 한다. 가족도 거미줄같은 일정한 영역밖에 있으므로 그에게는 버릴 수 있다.
그런 설정은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그의 아내는 그 영역에 갇혀사는
남편(안성기)를 오히려 가련하게 쳐다 본다.
이런 역에는 안성기를 따라 올 배우가 없어 보인다. 하회탈처럼 웃는 그의 눈매가
슬픔과 기쁨을 짐작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박중훈... 일벌떠난 둥지의 여왕벌.
그의 캐릭터는 늘 웃음을 유발한다. 투캅스에서도 그랬고... 그는 폭력적인 캐릭터,
즉 '친구'의 유오성이나 '태극기~'의 장동건 같은 카리스마가 없다. 우리나라 배우들
중에서 관상학적으로 두리뭉실하게 생긴 얼굴도 드물다. 한마디로 선해 보인다.
거울을 가만히 바라보니 그와 나는 같은 과(科)로 분류된다.
그는 가수왕을 한번 역임한 퇴물가수로 나온다. 그러나 그 역시도 과거의 영광에서
단 한발도 움직이지 못하는 인생을 산다. 그는 아직도 그가 가수왕으로 대접받기를
원하고 또 세상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보고 있다고 착각하고 산다.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 해본것이 거의 없다. 메니저가 밥을 먹어야 한다면 먹고
어디로 움직여야 한다면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길들여져 왔다.
이준익 감독은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연예계를 박중훈의
역활을 통해서 비웃는다.
그러나 그는 인간적이다. 대형 메이저급 연예대행사로 부터 박중훈을 위해 떠나라는
제의를 받아 그로부터 떠났을때 마침내 그는 그의 가슴속에 매니저 안성기에 대한
따스한 인각적인 의리를 느낀다. 남자로서의 믿음과 신뢰를 말이다.
라디오 스타... 다시 라디오로 돌아오다.
박중훈은 지방의 작은 방송국에서 작은 성공을 일구어 낸다. 방송을 하는 사람들은
괜스레 자신의 위치를 다른 사람보다 높여 놓는다. 가능한 방송에서는 표준말을
사용해야만 하고 비속어를 사용해서는 안되는 등.... 가수 최훈이라는 박중훈의
캐릭터는 강원도 영월이라는 다소 고립된듯한 이미지의 도시에서 그런 고정관념을
깬 방송을 해서 부활한다는 스토리다.
다방의 레지가 방송에 나와서 외상값 이야기를 하다가 엄마에게 고백하는 내용은
여기 저기서 훌쩍이는 소리를 들리게 만든다. 시골밴드는 중간 중간의 어슬픈 틈을
메우는 중요한 역활을 담당하며 방송도 결국은 인간을 위한 것이라는 메세지를 준다.
라디오는 귀로만 듣는 미디어이다. 그러나 우리는 소리를 형상화하는 충분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것이 아직도 우리를 라디오라는 미디어에 빠지게 하는 요소이다.
라디오를 듣자! 핸들을 돌려서 가장 잡음이 적은 눈금을 찾는 것도 라디오를 즐기는
하나의 매력이다. 라디오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우리들의 스타를 찾아보자.'이런저런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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