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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할매의 요강
    유년의 기억 2006. 9. 22. 14:27


    외할매의 요강

     

     


    내가 어릴적에 여름이던 겨울방학이면 나는 늘 시외버스를 타고
    밀양에 있는 외가에 갔었다.
    외가에서는 내가 첫손자인지라 외할배와 외할매의 사랑은 끔찍해서
    방학이 되고서도 며칠 늦으면 바로 체부(우편배달원)가 전보를
    들고 달려온다.
    전화가 흔치않던 시절이니 전보가 큰 커뮤니티의 수단이였다.


    "외조부 대근래외가 학수고대"
    外祖父 大根來外家 鶴首苦待...


    젊은 시절 밀양일대에서는 다섯손가락 안에 들었을만큼 노름판을
    다닌 탓에 늙으셨으도 역시나 한 성깔을 했던 외할배의 성화에
    외삼촌이 삼천리 자전거로 20리를 달려서 수산읍까지 나와서
    글자를 줄이고 그럴듯하게 보내는 이 문구는 중학교 2학년이
    될때까지 계속 되었다.


    외가는 진영에서 수산을 거쳐 밀양쪽으로 가다가 중간쯤에 있는
    은산리라는 곳인데 제법 산세가 좋은 곳이였다.
    예전에 시골집들이 다 그렇듯이 퍼세식 변소가 있었는데
    외가의 변소는 일렬로 주~욱 늘어선 건물에 광..그옆에 소가 있는
    우사..그 다음이 새끼꼬는 기계..가마니 짜는 기계가 있는 방...
    그리고 잿간..이 잿간은 설명이 좀 필요할 수 도 있겠다.


    예전에는 퇴비를 만들어 사용하던 시절이라 짚을 쌓아두고 그 위에
    집에서 나오는 재를 덮어 퇴비를 만들던 곳이다...

     

    그리고 잿간의 위 천정쪽에는 선반이 있고 짚으로 만든 닭의 둥지도
    있었다. 외가의 닭은 알을 낳을때는 꼭 이 짚둥지에 들어가 알을 낳았고
    집에서는 구경도 못하던 계란찜이며 날계란의 고소하면서도 비릿한
    맛을 목구멍으로 느끼는 호사도 가끔은 하고는 했다.


    그리고 그 옆에 화장실이 있었는데 얼기설기한 벽으로 어떤때는
    밤하늘의 별들도 보이고 저 멀리 국도를 드문 드문 지나는 차들의
    불빛도 보이는 멋진 곳이다.


    그래도 밤이 늦은 시간에 도시에 살던 국민학생(초등학생)이 가기에는
    상당히 무섭기도 하고 힘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외가에서 제일 좋은 게 있다면 작은거를 볼때는 변소까지 갈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였다.
    외할매 방에도 외할배 방에도 요강이 하나씩 있었기 때문이다.
    자다가 소변이 마려우면 부스스 일어 나서 윗목에 있는 요강을 찾아서
    그냥 고추만 내놓고 소변만 보면 되었다.


    외할배방에는 새로 산 스텐요강이 있었는데 밤에 자다가 일어나
    요강을 끌어 당기면 얼마나 차가운 느낌이 드는지...
    외할매방에는 해당화인지 모란인지 기억이 아슴한 꽃그림이 그려진
    사기용강이 있있는데 이건 밤에 일어나 잠결에 만져도 따뜻했다.
    그 하얀색의 사기(도자기) 요강은 우리 외할매가 열여섯에 시집올때
    가마속에 넣어 온 그런 요강이랬다.


    이 요강은 외할매가 친정에서 가져온 것둥에서 유일하게 남은 것이라
    애지 중지 하셨다. 신혼초부터 노름때문에 바깥으로 나도는 외할아버지에
    대한 섭섭함도 큰딸(나에게는 이모다)이 해방 1년전 만주에서 마적의
    손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을때도 두아들(외삼촌인데..한국전쟁때 논일을
    하다가 징집차에 강제로 끌려갔다)의 전사소식에도 늘 할머니의 위안이
    되었던 물건이다.


    특히나 슬픔을 주체하지 못할 일이 생길때는 외할매는 하루에도 수십번을
    요강을 딱고 딱고 하셨다. 외할매에게 요강은 단순이 화장실을 멀리가지
    않아도 된다는 편리상 이상의 의미로 자리매김을 한듯 하다.


    외숙모도 그 외할매의 보물같은 요강을 애지중지 보살폈다. 아침이 밝으면
    제일 먼저 외할매의 요강을 비우고 씻어서 다시 방에 들여 놓으셨다.
    그러면 외할매는 외숫모가 금방 씻은 그 요강을 다시 깨끗한 걸레로
    딱고 또 딱으셨다.

     

    "할매~ 금방 씻껐는데(씻었는데) 말라고 또 딱아샀노?"


    가끔은 내가 그렇게 물으면 할매의 대답은 늘 똑같았다.

     

    "때는 시시때대로 묻는기라..그라고 마음을 못딱으께네 요강이라도
    딱아야 안되겠나...."


    지금은 기억조차도 나지 않는 어느 방학때 다시 외가에 들렀을때
    여느 날처럼 외할배방에서 화로 올려진 알밤이 익기를 기다리고 있을때
    웃방에서 할매가 부르는 소리를 따라 할매방에 갔을때 였다.
    할매방에는 낯설은 스테인레스의 차가운 빛깔의 요강이 놓여 있었다.


    "어~~ 할매...요강이 바뀟네..."
    "오야! 처리(철이)가 차가꼬 안 뿌삿삣나..."


    두살아래였던 외사촌 동생이 밤에 자다가 외할매가 역시나 애지중지하는
    고양이가 옆에서 자꾸 걸리적 거려서 그 놈을 찬다는게 그만 요강을
    깨버렸다는 것이였다.


    "아이구~~ 차바라..이노무 요강이 와이레 찹노..."


    방학 내내 나는 잠결에 외할매의 푸념인지 아쉬움인지 체념인지 모를
    한숨섞인 소리를 듣고는 했다.
    그렇게 외할매가 푸념을 할때마다 가만히 누워서 움찔대는 외사촌
    동생의 어깨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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