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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생님의 가정방문
    유년의 기억 2006. 3. 29. 11:40

     

     

    아마 이 때쯤인가?
    그럴꺼야..그 때도 명숙이네 과수원에 복사꽃이 피였을 때 였으니 더도 덜도 아닌
    지금 요만 때 쯤이였을 것이야.


    햇살이 제일 따뜻하다고 느낄때도 지금 이 즈음이고 자주 허기가 질때도 지금
    이 즈음이기도 하지.


    나는 참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었지.
    고학년이 되면서 학기초가 되면 나는 가슴이 조마 거렸었지.
    어느날 종례시간에 누구 누구 이름을 부르고 "내일은 너희들 가정방문이 있으니
    부모님께 말씀드려라~"라고 말씀을 하시면 늘 가슴이 감자조림처럼 오그라 들었지.


    어린 마음에도 다른 사람이 장짓문을 열고 내 가난을 훔쳐보는게 싫었던 거야.
    월사금을 면제자로 칠판의 한 구석에 이름이 적히고는 했던 터라 하루에 몇 사람씩
    부르던 이름에서 내가 빠지고 매듭이 지어지면 그제서야 마음이 편해졌었지.


    1970년....
    그 때는 국민학교의 마지막 학년이 되었지.
    오..삼..X... 내가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통털어서 유일하게 기억하는 선생님의
    이름인데 그 이름석자를 유일하게 기억하는 것은 아마도 남다른 인연일 것이야.


    맞아....
    3년전..그러니까 국민학교 3학년때 그 일이 있을때도 봄볕에 고양이가 졸린눈으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에 빠져 놀던 아이들을 바라보던 이 즈음이였지.
    그때 우리학교에서 제일 엄하기로 소문난 그 분이 우리반 담임이 되셨어.
    지금 생각해보면 박정희 대통령을 무척 많이 빼닮은 분이셨고 성격도 아마 그렇게
    칼칼한 분이셨던 것 같아.
    개학을 하고 학년이 올라가고 달포가 지난 이 즈음에 선생님이 무슨 교육인가를
    받으시러 2주정도 자리를 비우셨지.


    개구리....
    그 분은 군대제대를 막해서 부임해 오신데다가 담임을 맡지 않았던 유일한 분이셨는데
    이 분이 임시로 우리반을 맡아 주신 것이야.
    그런데 이 분을 우리는 모두 '개구리'라는 별명으로 불렀지.
    '개구리샘~ 오신다!"
    누가 이러면 겅중한 키에 입을 함박만하게 벌리시고는 운동장을 가로 질러가시는
    선생님이 보이고는 하셨지.


    까르르~~ 까르르~~~ 킥킥~~ 하하하...호호호....
    개구리 샘이 우리반에서 수업을 하시는 2주동안 우리는 눈가에 주름이 생길 정도로
    웃고 또 웃었지.
    옛날 옛적 이야기를 어찌 그리 많이도 알고 계시던지....
    할매한테서 슬프게 들었던 이야기도 개구리 샘의 입만 거치면 웃음으로 걸러지곤 했지.


    2주...14일....
    보통 보름간이라고 말하는 너무 잛은 시간이 살같이 흘러가고 담임 샘이 다시 돌아오셨지.
    더 이상 웃을 일은 없었어. 샘은 조금이라도 뭔가를 가르쳐 주려고 애를 써셨지만 우리들은
    행복했던 지난 한주를 떠올리며 그 짧은 2주를 반추하고는 했지.


    봄은?.....수면제....
    그럴꺼야...봄에는 정말 잠이 마구 쏟아져서는 아직 다자라지 못한 아이들의 정수리에
    잠꽃을 마구 피워내고는 했엇지.
    잠에 당하는 장사가 어디 있겠어..그래서 봄은 졸리운 계절인게야..
    아마 그 때도 이즈음 한참 졸리는 봄이였던 것이야.


    까르르~~ 까르르~~~ 킥킥~~ 하하하...호호호....
    이번에는 바로 옆반의 대머리 선생님이 우리 담임처럼 2주간 교육을 가신것이야.
    나른해서 깜빡 잠이 들었던 것이야..내가 그 말을 짝지에게 했던게 설핏 들었던 잠이
    옆반 아이들의 까르르~ 거리는 그 소리에 화들짝 깨어서는 무심코 했던 모양이야.


    和答...
    "우리 샘 바까서면 조케따...그자?" 내가 슬그머니 짝지에게 이렇게 말했지.
    그것 뿐이였지.. 내가 한 말이라곤 단지 그 말 뿐이였어.
    "맞다카이...샘 바꾸면 조케따..개구리 샘으로~~"
    쿵쿵쿵~~~ 쾅쾅쾅~~~ 짝짝짝~~~~ 와아아~~~~


    냉정과 열정 사이던가..
    우리 딸들이 얼마전에 읽던 책에 이런 제목이 있었던거 같애.
    칠판에 열심히, 정말 열정적으로 판서를 하고 계시던 선생님의 표정이 냉엄하게
    바뀐 것이였어.
    한동안 선생님은 말이 없으셨어.
    그리고는 말씀을 하셨지.
    "내일 모두 부모님 오라캐라..한사람도 빠지믄 안된다..알았제!"


    공단치마....
    공단이라는 제법 고급인 천이 있었지..옛날에 말이야.
    그 공단으로 만든 치마는 엄마가 시집올때 밀양에서 소문난 노름꾼이였던 외할배도
    몰래 장만해서 넣어준 것이라는데 나는 내가 태어나서 엄마가 입은 모습은 처음이였지.
    우리 엄마가 그렇게 이쁘게 보였던 것도 그때가 처음이였을 것이야.
    거의 다 엄마들이 왔어.


    책상을 몰아서 만든 공간에 우리는 무릎을 꿇고 손을 들고 있었고 선생님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는데 엄마들의 대답은 한결 같았지.
    "아이고 샘예...우짜든동 패서라도 사람 만들어 주이소~~"


    그래서 일단 마무리가 되었어.
    우리는 책상을 다시 정리를 했고 엄마들은 웅성 웅성 모여서 정리가 끝나면 아이와 집에
    갈려고 기다리고 있었지.
    한 성깔하기로 소문난 시장통 포목전 아지매가 냅다 자기 아들래미 머리통을 주먹으로
    갈기시더만..."이노무 짜슥이 ..대갈에 피도 안마른것들이..샘을 바꾸자꼬?"


    그놈이 얼결에 그러더만...
    "아이다...나는 아무말도 안했다 안카나...자가 그랬다 카이..대그이가 그랬다 카이"
    나는 순간 엄마 얼굴을 먼저 살폈다.
    역시나 열정과 냉정의 사이에는 경계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 엄마의 표정이 붉으락 해지고 모든 엄마들의 눈동자는 우리 엄마의 얼굴로 쏠려서
    나는 엄마의 공단치마만 바라 보았었지.


    "괘안심더..그라이께네 아들이지..다알믄 어른이지예..괘안심더.."
    모두들 떠나고 혼자 남아서 백번도 더 고개를 숙였던 엄마에게 몇번이나 선생님은 이말을
    우리 엄마에게 해주셨지만 그 날 저녁 나는 엄마에게 피가 터지도록 종아리를 맞았다.
    다음 날은 지난밤 야근으로 집을 비웠던 아버지 한테 또 종아리를 맞았다.


    그 인연의 끈이 질긴 탓인지 6학년에 다시 담임이 되셨다.
    3년만에 다시 만난 선생님은 빙긋 웃음으로 반가움을 표시 하셨지만 나는 쥐구멍을
    찾아서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지.


    아마 이때 즈음 이였을 것이야.
    소사 아저씨가 심어놓은 목련이 꽃을 피워내고 있을 때였으니 말이야.
    변함없이 가정방문 해당자가 하루에 서너명씩 이름이 불리워지고 있었지만 나는 조마한
    가슴이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집에는 여태껏 처럼 오시지 않을 것이야.하고 생각했지.
    여전히 올해도 월사금 면제자로 칠판의 오른쪽 모서리에 적혀 있었거던.
    그렇기는 해도 내마음의 한쪽에는 선생님으로 부터 가정방문을 받는 친구들이 부럽기는
    했었는지..아마 그랬었던것 같아..아직 가슴에 남아 있는것을 보면...
    올해도 역시나 마지막날이 되어서도 몇몇의 이름은 없었고 그 중에 30리도 넘는 길을
    걸어서 통학하던 여자애...배타고 대동에서 오던 친구..그리고 나도 포함되어 있었지.
    안도의 시원함과 왠일인지 모를 섭섭한 마음이 심장을 도는 정맥속으로 흘렀지.


    우리집은 학교 담 바로 아래 있었지.
    학교 보록쿠담이 있고 콘크리트 길이 있고 탱자나무로 울이 된 우리집이 있었으니
    학교와 붙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이야.
    담임선생님은 학교안에 마련된 사택에 사셨지.
    원래는 교장 선생님이 사시던 곳이였는데 교장 선생님이 시장통에 새집을 사셔서
    이사를 했기에 우리 담임선생님이 그곳에 사셨지.


    가정방문의 마지막날....
    가정방문이 있는 주에는 늘 오전수업만을 했었지. 그날도 그랬지. 내일부터는 다시금
    정상수업을 하겠지만 마지막날도 역시나 오전수업을 마치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
    엄마는 돼지우리를 청소하느라고 부산하고 동생들은 모두 놀러가고 없었지.
    동생들은 엄마의 강압에 모두 바깥으로 놀러 간 것이야. 야간을 들어가야 하는 아버지가
    주무시고 계셨거던.
    아마도 해거름 이였을 것이야. 아마도 5시쯤이였을 것이야.


    어험~
    우리 집은 대문이 없었어..길쭉한 골목길의 마지막 집이라 따로 대문이 필요치 않았거던.
    대문의 역활은 앞집담과 옆집담이 해주었지.
    무척이나 귀에 익은 기침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선생님이 웃고 계셨어.
    오..삼..X..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선생님... 그 분이 말이야.


    너무나 뜻밖이라 아버지와 엄마는 몸둘 바를 모르셨지.
    엄마는 돼지우리를 치우던 몸빼차림 그대로 아버지는 야근을 위해 입으셨던 작업복인
    그대로 나는 전혀 뜻밖의 방문에 반쯤 얼이 빠진 그대로...
    그자리에 있는 모두는 그렇게 한동안 흑백의 스틸사진이 되었지.


    급하게 밥을 하기위해 쌀을 씻는 엄마에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지.
    "괘안심더...나는 보리밥이 조십니더...그냥 김치하고 보리밥..물에 말아서 주이소"
    "아이고~~ 그래가고 돼는기요..샘요...저녁을 드셔야지예.."
    "아입니더...괘안심더...보리밥 한그릇만 주시믄 됀다카이요..그라고 대그이 시키서
    막걸리나 받아 오라카이소"


    나는 그 날 노란 주전자를 들고 5분거리의 술 도가까지 갔다오는데 자꾸 눈물이 났지.


    "우리 집에도 샘이 왔다카이~~~"
    내일은 학교에 가서 이 말을 친구들한테 반드시 해주리라..그러면서도 자꾸 눈물이 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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