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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렸을때는 사는게 고만 고만해서 눈다래끼가 참 흔했다.
지금처럼 화장실과 목욕탕이 집안에 잘 갖추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비누나 샴푸도 지금처럼 흔치 않았던 물건이다 보니 위생적인 관리가
잘 될리 없었고 그래서 눈병이 흔했는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한쪽눈이 간질 간질거리면 눈을 비비고 거울을 보면
눈안에 몽우리가 곪는 다래끼가 생겨있게 마련이였다.
지금이야 아이들 눈만 좀 빨개져도 얼른 안과에 데리고 가지만
그때야 약국에 제일 가까운 의료시설였고 다래끼 쯤은 그냥 두면
저절로 낫는 병인줄로 알았다.
한마디로 시간이 약인 병이였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는 민방이 참 많은 나라다.
지금보면 비 과학적이라고 비판을 받을수 있는 그런 민간요법이 상당히
발달한 나라중의 하나일 것이다.
가령 배가 아프면 오래된 기와조각을 불에 데워서 배에 올려놓으면
훨씬 통증이 덜해지는데 맹장같은 경우는 치명적이 될수도 있다.
그 외에도 이런 저런 민방들이 많다.
눈다래끼가 나면 다른 사람에게 옮겨주어야 빨리 낫는다고 믿었다.
뭐 국민학교(초등학교)때니 다른 지역이야 모르겠고 내가 살던 곳에서는
그랬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다래끼가 나면 일단 발품을 팔아서 구포시장이나 동네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쓰레기장을 뒤져서 짝이 딱 맞는 조가비를 줍는다.
크면 그만큼 노출될 확율도 크므로 자그마한 재첩껍질이 제일 좋다.
그 다음에는 다래끼가 난 눈에서 속눈썹을 하나 뽑는다.
그리고 그 눈썹을 조가비안에 넣고 잘 맞추어서 사람이 잘다니는
골목길의 반반한 흙이나 작은 돌위에 놓아둔다.
지나가다 처음 그걸 툭~ 하고 차서 조가비를 여는 사람에게로
눈병이 옮아간다는 속설때문이였다.
그래서 눈다래끼가 나면 "에이~~ 어디서 내가 그놈을 차서 옮았네.."하며
한눈을 판 자신을 탓했고 남에게 전해주는 비양심을 변명했다.'유년의 기억'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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